인디 = 공짜 인식 심어줘
기획력부재 개성있는 공연 못내놔
트라이포트록페스티벌·새천년청소년문화축제·독립예술제·거리미술전·쌈지사운드페스티벌·소란 등 올해 열린 내노라하는 대규모 공연의 주인공은 단연 인디밴드. 백화점 개장행사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패션타운에서 빠짐없이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개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히 ‘언더의 지상점령’이라 할만하다.
이런 크고 작은 공연들이 클럽 중심으로 활동하던 밴드들을 지상세계로 끌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는 반면 수는 많아졌지만 모두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공연주제나 출연진 면에서 나름의 특성을 갖는 축제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물론 올해 열린 행사들이 모두 ‘천편일률’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광화문 열린광장에서 열린 새천년청소년문화축제 ‘놀자콘서트’의 경우, 인디밴드들이 처음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 공개적인 무대에 섰다는 점에서 새로운 활로를 뚫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홍익대 미술대학이 주최한 홍대앞 거리미술전 야외공연은 진행미숙 등의 문제점도 있었지만 인디밴드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홍대’지역의 특수성을 살린 공연기획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23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려 1만7천명이 관람한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의 경우, ‘신인밴드’ 발굴이라는 기획으로 주목을 받았다. 다만 실제 공연장에서 신인밴드의 공연이 무대정리를 위한 ‘시간때우기’ 수준에 머물러 실망스러웠다는 평.
△인디 는 공짜?= 각각의 공연이 나름의 기획과 의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디음악계 관계자들은 밴드들의 공연문화에 ‘문제있다’고 말한다.
거리미술전 야외공연을 기획한 김작가씨는 지금까지 열린 인디밴드들의 대규모 야외공연을 ‘떼거지 무료공연’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무료냐 유료냐를 따지는 일보다 공연의 완성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무료공연이 인디=공짜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성토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 ‘떼거지 무료공연’의 장점이 있지만, 어디가나 공짜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을 애써 다시 찾는 사람이 없다는 점은 문제다. 고정팬들을 제외하곤 이들의 음악을 즐기기 위해 클럽을 찾거나 음반을 사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공연 활성화가 인디밴드들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는커녕 재생산한다는 비판이다. 4회를 맞은 ‘소란’이 올해부터 유료로 전환한 것도 이런 인식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소란 기획자이자 음악평론가인 신현준씨는 “돈내고 보는 건 바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무료공연은 관객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관객들이 뮤지션을 찾아 적극적으로 공연을 보기보단 주최측이 관객을 동원하는 식이 된다는 말이다.
땀흘려 만든 음악을 듣는데 망설이지 않고 대가를 지불하는 관객, 돈내고 들어온 관객에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무대를 보여주는 공연이 필요하다.
△기획자가 없다= ‘밴드하려는 사람은 많아도 기획하려는 사람은 없다’. 인디음악계 공연이다 ‘거기서 거기’인 것은 전문적인 기획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독립예술제 음악 프로그래머인 공윤영씨는 “공연을 왜 하느냐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니 똑같은 공연이 반복된다”며 이제까지의 공연에 대해 “의도와 내용에 대한 고민없이 밴드들을 모아 무대에 올리기만하면 끝이라는 식”이라고 비판한다. 돈을 얻는 것도 이름을 날리는 일도 아닌 탓에 기획에 나서는 이가 선뜻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제대로된 공연을 위해서는 안목있는 전문기획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작가씨는 “기획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작년에 독립예술제 했던 사람들이 다음에 무슨 행사기획하고 올해 독립예술제하고 또 다른 행사하는 식으로 반복된다”며 특색있는 공연을 만들려면 기획자의 폭이 더 넓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힙합과 펑크, 랩과 국악 등 장르간 교류라든가 지역적 특성에 기반한 공연기획 등 참신한 기획이 이뤄지면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한편 인디밴드와 TV스타들의 합동공연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트라이포트록페스티벌이나 새천년청소년문화축제 등의 행사에서 인디밴드들은 찬밥취급 당하기 일쑤. 관객들은 신화와 김현정 등 TV스타에 열광하고 가리온이나 마이앤트메리 등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시작되면 잠잠해진다. 매니아층이 있다지만 아직 ‘인디문화’를 접하는 일이 쉽지않은 현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 공연의 성격을 흐리는 ‘잡탕’출연진은 결국 무작정 관객을 많이 모으려는 발상 때문이다.
인디밴드들이 야외에서 대규모 공연을 하는 것은 작년만 해도 흔치 않았다. 작년에는 설 무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지만 올해는 아니다. 이벤트회사에서 얼렁뚱땅 만들어내는 공연이 인디밴드들 합동공연의 전형으로 남지 않으려면 시작부터 단단히 고삐를 죄야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