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다시 전태일 열사를 생각하며····
이영수
IMF 신탁통치 2년, 정부와 언론에서는 마치 경제가 회복되고 실업자가 줄어든
것처럼 떠들어댄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자는 갈수록 줄어 하루하루 고용불안에
떨며 이중의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
의 절반을 넘어 53%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한 켠에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실업자가 줄을 잇고 있으며, 노숙자도 다시 다른 한편에서는 잘 나간다고 하는 미국계 은행지점장이 신자유주의적 경영방식
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강화
되는 노동통제와 노동강도, 그리고 인간을 파편화하고 소외시키는 양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보다 많이 가진 자들이 약자를 죽이고 먹어 치우
는 약육강식의 원리 속에 노동자는 쓰레기 인간으로 취급되고, 과연 이 사회의
정의는 어디에 있으며 노동자의 삶의 방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는 혼란
스러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렇게 인간이 파편화되고 물질화되는 위기의
시대에 전태일 열사의 사상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과 목표를 재점검해 볼 때다.
전태일 열사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평범한 노동자였지만 이 사
회의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스스로 모색하고 결단
하였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
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
을 증오한다.”
“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
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 할 것이다.”(전태일 열사 일기 중)
전태일 열사는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라고 했듯이 자신은 굶어가면서도 굶주린 어린 여공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참모습과 인간의 존엄성을, 인
간의 희망을 지켜내는 삶을 실천해 나갔다. 자본과 권력의 증오하고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 현실의 장벽을 무너뜨리고자 온 몸을 던져 싸웠
다.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과 긍지를 지키고 인간이 인간에 의한 더 이상의 지배
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 투쟁했던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고 지키고자 했던 것은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는 이 사회의 현실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모든 민중이 소중
한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중심사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역
설하는 것은 우리를 파편화시키고 있는 이 이 아니라 모두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일기 속에 많이 나오는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 ‘나의
또다른 나’, ‘자기의 소중한 전체의 일부’라는 표현들은 인간은 결코 고립된 존
재로 살아갈 수 없다는 데 대한 열사의 처절한 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 인간이 인간성을 풍부하게 하는 과정은 좁은 자아의 환상을 버리고 그 껍
질을 깨고 자신과 이웃 세계에 대한 참되고 순수한 관심의 햇살이 비치는 곳을
향하여 나오는 과정이다. 참된 소망, 참된 사랑, 참으로 순수한 그리움만이 인
간을 구원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투쟁을 통해 향후에 실현하고
자 하는 인간다운 삶 즉 실현가능하지만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삶을 지금의 시
점에서 미리 실천하는 것이다. 참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으로써 무장한다는 것은
아직은 미처 실현되지 못한 인간다운 생활을 지금 현 시점에서 실천하는 것이
다.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지향이 자본과 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유린되고 파괴
되는 현실에서 존엄성은 그에 맞서는 투쟁 속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인간다
운 삶, 존엄성을 살고자 하는 지향을 굳건히 해 나가면서 그것을 가로막는 것들
에 대해 거부하고 싸워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 노동운동의 참된 의미이며, 바로
그것이 진짜 투쟁이다.
전태일 열사는 몸소 이것을 실천하였으며 온 몸을 불살라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세우고 지키고자 했던 전태일 열사의 노동해
방, 인간해방 사상은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파편화되고 이기주의적으로
물질만능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경종이며, 출세주의와 대세주의
가 판치는 우리 운동의 풍토와 현실에 대한 새로운 해답이다.
이번 주는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주간이다. 주말에는 노동자 대회도 열린다.
그러나 단순히 집회에 참가하고 돌아가는 것만으로 전태일 열사가 남긴 뜻을 이
어받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새로운 천년이 다가오고 있는 시
기가 아닌가? 전태일 열사의 주기를 계기로 전태일 열사의 삶과 사상에 비추어
우리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현실과 노동운동의 모습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 보자.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 나름대로의 다짐을 가지고 다가
오는 새 천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 보자. 이러한 성찰과 다짐들이 쌓이고 모
일 때 우리 노동자와 노동운동도 새 천년의 희망을 일구어 나갈 수 있지 않을
까.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