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비인간화’와 ‘반(反)교육’을 거부하고
투쟁으로 떨쳐나선 재능교육 노동자들
이성경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져 매서운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영하
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1월 29일 낮 12시 서울역 광장에는 ‘민주노조 쟁
취’의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모여 앉았다. 총
파업투쟁 35일째를 맞는 재능교육 노조 조합원들과 이날 파업에 돌입한 재능교
육 교사노조 조합원들이다. 직원과 교사,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는
서로 다른 처지에도 불구하고 평소 동고동락하며 쌓아온 굳은 의리와 끈끈한 정
으로 공동투쟁에 나선 것이다.
서울, 경기, 강원, 부산, 창원, 대전,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재능교육
노조의 300여 조합원들은 전기와 스팀이 끊긴 서울 도곡동 재능스스로마트 5층
복도에서 힘겹지만 꿋꿋하게 농성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신규노조라 투쟁
기금도 바닥이 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더 많다. 그러나 교사노조의 조합
원들도 곧 농성에 합류하기로 해 그 동안 외롭게 투쟁해온 재능교육 노동자들에
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지국장과 전산업무를 담당하는 여성노동자 60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재능
교육 노조는 지난 6월 5일 노조를 결성해 8월 4일 신고필증을 받고 단협을 진행
해 오던 중 회사측의 교섭회피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86.3%의 찬성으로 파업에
들어갔다. 8500여 명의 교사 중 2,500명의 조합원이 가입한 재능교육교사 노조
는 아직 신고필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능교육 노조의 파
업투쟁이 승리하는 길은 교사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학습지를 돌리지 않는 것이
라 생각하고 연대파업을 단행했다. 교사노조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권익보다는
지국장과 업무사원들이 하루빨리 돌아와 예전처럼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연대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고학력 노동력 착취의 온상, 학습지 시장
IMF 이후 학원비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자녀를 학습시키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힘입어, 또 고학력 실업자에 대한 초과착취를 통해, 학습지 업계는 엄
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업계 1위인 대교(눈높이)의 경우 98년 당기 순이익이
749억 원이었으며, 현재 200만 명의 학습지 회원을 두고 있다. 월 회원 수가 80
만 명이 넘는 (주)재능교육도 지난 97년 1,300억 원이던 자산이 98년에는 1,848
억 원으로 늘어나고 창출된 이익 잉여금이 887억에 이르는 등 성장가도를 달려
왔다. 746억 원에 이르는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놓고 있는 박성훈 회장은 IMF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빌미로 7000여 명의 교사들로부터 1인당 150만 원의 관리
예탁금이라는 것을 받아 챙기기도 하였다.
이에 반해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지난 2년 동안 임금이 동결되고, 매일 13∼15
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혹사를 당하면서도 1시간 분의 수당 외에는 시간외 수당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연월차, 생리휴가 등 법정휴일이나
수당조차 적용받지 못하였다. 더욱이 올 1월부터 회사는 교사모집 광고조차 내
주지 않아 지국장들이 직접 자신의 돈을 써가며 구청이나 시의 취업알선센터나
대학교, 용역업체로 뛰어다니면서 교사모집활동을 해왔다. 또 만약 교사가 아이
들 회비를 다 받지 못하였거나 휴회(회원이 학습지 받지 않는 것)가 많아 돈이
모자랄 경우 지국장이 대납을 하거나 빌려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과
술자리 등 조직관리에 들어가는 비용도 사비로 충당해야 한다. 그로 인해 대다
수 지국장은 임금의 50%정도도 손에 쥐지 못해, 부인들이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사들의 경우, 89년도까지만 해도 정규직 사원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당시
결성된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난 후 학습지 업계로는 최초로 교사를 계약직으로
전환해버렸다. 교사들에게 소위 ‘위탁계약서’라는 현대판 노비문서를 작성하게
하여 언제라도 회사가 마음대로 쓰고 마음대로 자르기 쉽도록 만들어놓은 것이
다. 그러나 그들은 정규사원과 똑같이 출퇴근하고 지각이나 결근 시 시말서를
제출해야 하고, 실적이 부진하거나 윗사람 눈밖에 나면 오전 7시 30분까지 출근
해야하는 등 정규직과 똑같은 통제를 받고 있다.
교사들의 70∼80%는 IMF 이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30대 가정주부들
이다. 그러나 육아문제는 전적으로 교사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모성보호
도 외면되고 있다. 오전 9시에 출근하여 전단지를 돌리는 홍보활동을 하고 실적
을 올리는 방안과 관련한 교육을 받는다. 대개 하루종일 15∼20여 군데의 회원
집을 방문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면 밤 10시를 넘기기가 일쑤다. 서둘러 보고
서를 작성해 놓고 퇴근하는 주부교사들에겐 또다시 잔뜩 밀린 가사노동이 기다
리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받는 한 달 월급은 고작 70만 원 안팎이다.
97년 말부터 교사는 관리예치금이라는 명목으로 150만 원씩을 회사에 내고 입
사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아이들의 회비를 100% 다 받지 못했을 경우, 교사가
대납해야 하고 또 입회 실적이 저조하거나, 가입보다 휴회가 많을 경우, 차이나
는 부분을 교사들의 임금에서 공제하는 ‘휴회제도’라는 것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렇게 나가는 돈이 적게는 월 15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학습지 교사는 말이 허울좋은 선생님이지 실제로는 ‘실적’과 ‘위탁계약서’의 쇠
사슬에 묶여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재능교육 노조와 교사노조의 요구는 너무나 소박하고 정당하다. △노조활동
보장 △부당노동행위 근절 약속과 책임자 처벌 △손미승 위원장을 비롯한 해고
자 원직복직 △노조규약에 따른 조합원 자격 인정 △교사들의 정규직화 △관리
예치금 환불 △휴회제도 폐지 등이다.
그간 재능교육의 노동자들은 참되고 올바른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성품이 아
닌, 오로지 회원가입을 목적으로 한 실적위주의 영업만을 강요하고 강요당해 오
면서 인간성 파괴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따라서 이러한 비인간적 환경을
타개하고자 떨쳐나선 재능 노동자들의 바램은 바로 ‘영업을 강요하거나 강요당
하지 않으면서 더불어 일할 수 있는 민주직장 만들기’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는 무엇보다 ‘민주노조’를 기필코 사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뼈저린 경험 속에서 터득하고 있다.
지금도 재능교육 자본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지국장의 조합원 자격 시비를
트집잡아 시간을 끌면서 치밀하고도 계획적으로 노조파괴 공작을 자행하고 있
다. 집요하고 노골적인 노조탈퇴 공작, 정치적 목적의 파업이니 불법파업이니
하는 이데올로기 공세, 용역깡패를 동원한 무자비한 폭력탄압, 집회방해, 부당
해고, 비인간적이고 치졸한 농성장 단전단수까지 전근대적인 방식의 노조탄압
수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투쟁은 재능 교육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다.
국내 학습지 업체의 고용규모는 약 10만 명에 이르며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정
규직의 3∼5배 정도이다. 특히 이러한 학습지 교사들의 경우 ‘노동자’로서 인정
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대교의 경우, 88년 노조가 설립됐으나 회
사측의 탄압으로 휴면노조화 했다가 98년 다시 노조가 결성되었다. 그러나 노조
결성초기 600여 명에 이르던 조합원이 또다시 자행된 회사측의 탄압에 의해 현
재 30여 명으로 줄어든 상태이다. 이번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순한 기
업의 차원을 넘어 이들 10만 여 학습지 노동자들 전체의 운명을 건 투쟁으로 되
고 있다. 재능교육 노동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이번만큼은 어
떤 일이 있어도 물러설 수 없다는 사명감과 각오를 다지면서 한겨울 시멘트 바
닥의 냉기를 투쟁의 열기로 녹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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