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근면을 최고의 선(善)으로 여기는 노동관을 재검토하자

미국 노동자들, ‘단란한 가족시간’을 요구하다*

===================================================<편역자 주>

새 천년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다시 ‘신경제학'(New Economy)에 대

한 논쟁이 불붙고 있다. 미국경제는 컴퓨터 등 정보기술의 발달로 노

동생산성이 크게 증가했고, 그 결과 9년째 장기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기순환이 없어졌고, 새 천년의 장밋빛 번영을 약속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화려한 미국경제의 이면에 미국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글은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유럽의 다른 선진국들과는 정반

대로 더욱 늘어나고 있고,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현실

을 폭로하고 있다. 새 천년을 앞두고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퍼뜨리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번역·전

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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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시장세력의 요구에 의해 [노동자 가정의] 사생활 침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생활 침해는 [개인용 컴퓨터 등] 신기술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미국의 주요 경제지들은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노

동자 건강에 미치고 있는 악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노동자의] 현실은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 동안

언론 매체는 미국의 피고용인들이 [장기호황과 낮은 실업률로 인해] 자신의 노

동조건에 관한 요구를 상당한 정도로 고용주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도

해 왔던 것이다. 특히 [미국 노동자들의 이러한 현실은] 노조가 무력화된 것에

그 진정한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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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헌터(Mark Hunter)**

인터넷 붐과 그에 따른 스톡옵션제(최근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성과급제의

일종이다. 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자사 주식에 대한 우선 구입권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 주가가 오르면 떼돈을 벌게 된다. 특히 MS 등 인터넷 관련

회사에서 경영진 및 일부 노동자 상층이 이 스톡옵션제로 인해 벼락부자가 되고

있다 : 역주) 의 행복한 수혜자들이 미국에서 새로운 백만장자층을 형성하고 있

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소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지난 10년 간의

지배적인 추세는 변하지 않고 있다. 미국 고용주들은 칼 마르크스가 묘사하였던

“산업예비군”(실업자군)을 또다른 예비군으로 대체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

다. 즉 [가족 생계비를 벌어야 한다는] 경제적 압박과 가정생활을 양립시킬 수

없어서 항상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과잉고용된 노동자들'(the

over-employed: 실업자와 대비되는 용어로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부부가 맞

벌이를 해야 한다거나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미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표현하

는 용어이다 : 역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 줄리에트 쇼어(Juliet Schor)의 추산에 따르면, 실질 구매력이 감소

함에 따라 “1973년의 생활수준을 누리기 위해서는 [미국 노동자들은] 연간 245

시간 또는 6주간 이상을 더 일해야만 한다.”*주1) 여러 연구의 결과가 항상 일

치하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노동시간이 전반적으로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에 있

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노동시간은 1980년의 연

간 1,883시간에서 1997년에는 1,966시간으로 증가했다.*주2) 동일한 기간 동안

스웨덴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들에서 노동시간은 감소했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

우 1,809시간에서 1,656시간으로, 일본의 경우 2,121시간에서 1,889시간으로,

노르웨이의 경우 1,512시간에서 1,399시간으로 감소했던 것이다.

18세 미만의 자녀를 가진 미국의 기혼남성의 경우,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거의 51시간에 달하고 있고, 그들의 여성배우자의 노동시간은 41.4시간에 달하

고 있다. 뉴욕의「가정 및 노동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노동시간은

1977년과 비교해 볼 때, 남성의 경우 주당 2.8시간, 여성의 경우 주당 5시간 늘

어난 것이다.*주3)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줄이고 싶어하는 미국

인의 비율이 왜 1992년의 47%에서 [1997년에는] 64%로 증가하게 되었는가는 쉽

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더 많이 일하고 있는가? 조사에 응답한 사람들의 20%가 그

들이 다니는 회사가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리고 응답자의 46%는 가계부를 맞추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한다고 답변하고 있다.

특히 줄리에트 쇼어가『과로노동하고 있는 미국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1980년대 초반의 경기후퇴 이후, 다수의 기업들은 [경기후퇴 때 대량 정리해고

했던] 노동자들을 재고용하는 데 따른 비용 때문에 재고용을 피하고 대신에 [고

용 노동자들에게] 초과근로를 시켰다.” [그래서] 노동자 다섯 중 한 명 꼴로 사

전 통보 없이 매주 연장근로를 강요당하고 있다. 또 둘 중 한 명 꼴로는 매달

연장근로를 강요당하고 경영진 역시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1980년대 초에는 경영진 다섯 명이

필요했던 일을 이제는 세 명이 담당하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대체로 주당 70

시간을 근무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이제 보다 일찍 시작하고 보다 늦게 끝나고 있다. 수많은 10대들

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식사, 수면 및 학교수업에 쏟는 시간을 줄여야만 했

다. 그래서 국가조사위원회(National Rearch Council)는 청소년 고용을 보다 엄

격하게 규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55세 이상의 노동자들 수는

2006년 경에는 6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주5)

하루는 2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여가와 사적(私的) 관계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노동할 권리’로 인해 희생되어지고 있다. 사회가 사회적 교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들이 점점 늘

어가고 있다. 예컨대, 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화의 양과 질이 떨

어지고 있고,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편의식품을 점점 더 많이 먹게 되고 있

고, 가까운 친구들 및 가족과 함께 보내는 ‘단란한 시간'(quality time)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다(단란한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

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강박관념으로 나타나게 된다 : 역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가정생활에 “매우 만족하게 느끼는” 미국인의 수가 1977

년의 55%에서 1997년에는 39%로 급감했다.*주6)

가정과 일 사이의 경계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시장조사 연구가 주디쓰 랑

거(Judith Langer)는 수백 명에 대한 인터뷰를 요약하면서, “사람들은 그들이

근무 중에 하도록 요구받는 것―〔예컨대〕독서, 자신의 근무분야의 최근 추세

를 파악하는 것, 전자우편과 음성우편에 항상 대기하는 것―이 근무시간 이외의

나머지 생활 속으로 넘쳐 들어오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가정의 절반은 이제 개인용 컴퓨터(PC)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개인용

컴퓨터가 이처럼 일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즉 업무가 사무실에서 가정으로

몰래 들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라는 잡지의 한
독자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종국에는 미화된 작
업도구에 불과한 전자-장난감(컴퓨터 등 정보기술 매체 : 역주)을 구입하기 위
해 더욱 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이 도구들의 구입비용
을 지불하기 위한 돈을 버는 데 이 도구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주7) 달리 말
하면, 개인 컴퓨터는 하나의 덫인 것이다.

결혼생활이 불안정한 시기에 사생활에서의 우발적인 사태(예컨대, 가족 구성
원이 질병에 걸린다든지, 사고를 당한다든지 하는 등 : 역주)를 회피하려는 바
램, 또는 경기가 붐일 때 돈을 벌 기회를 활용하려는 바램이 [노동시간이 증가
하고 가정과 일의 경계가 사라져 가는 추세의] 부분적인 원인일 수 있다.
왜 수많은 노동자들이 가족휴가가 부여되어도 이를 거부하는가를 파악하려고
시도하면서, 사회학자 애리 혹쉴드(Arlie Hochschild)는 “일(work)이 ‘가정’의
형태를 띠어 가고 있고, 가정이 ‘일’로 되어가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녀
는 수많은 피고용인들이 이제 자신의 가정보다도 사무실을 “더 감사하게 생각하
는, 사적(私的)인 종류의 사회세계”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
의 가정에서는 “정서적 요구가 더욱 더 충족되어지지 않고 복잡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주8)

매스컴은 노동자의 91%가 자신의 직업에 매우 만족하거나 꽤 만족해하고 있다
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수잔은”(Suddenly Susan)과 같은
TV 인기드라마는 사무실을 우애와 낭만이 일보다 우선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
다. 일(work)을 자기표현의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은, 거칠고 역설적인
가치 전도(顚倒)라는 점에서, 1960년대 “저항문화”(counter-culture)의 주요 관
념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일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노동자가 기업의 이해관계
를 자신의 이해관계와 동일시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됨으로써 [본래의 의
미는] 끝장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가정은 노동시간이 증가하는 것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20년 전에는 돈이 부부 갈등의 주요 원인이었던 반면에, 지금은 시
간의 부족이 부부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의 근원이 되고 있다.*주9)

또다른 중요한 변화가 있다. 노동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상징
인 “스트레스”는 주로 남성 [노동자]에게만 해악을 끼치는 고통으로 간주되어
왔다.*주10) 그런데 “일이냐 [가정]생활이냐 하는 딜레마”(work-life dilemma)
(요즘 사용되는 은어(隱語)로 표현하자면)는 이제 양 당사자 모두의 결혼생활에
짐이 되고 있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Babycenter.com)에서는 2,000명의 임산부에게 아이를 출
산한 후 곧바로 직장에 복귀할 것인지 여부(미국에는 출산휴가가 거의 없다)를
알아보기 위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셋 중에 두 사람은 출산 후 곧
바로 직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처럼 결정한 사람 가운데 그
결정을 “어쩔 수 없이 강요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정말 만족스럽게” 여기는
사람보다 두 배나 더 많았다.(미국의 기혼 직장여성의 다수는 일에 대한 자기성
취 등 때문이 아니라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나 또는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산 후 곧바로 출근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
역주)

남성 역시 자신의 사생활이 잠식당하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안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잘해야 남편의 부족한 구매력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는데, 봉급생활자들에게 요리, 청소 및 애 돌보기 등 가사노동의 짐
만 더 늘려주었다.*주11) 그런데 1980년대 이래로 하나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
다. 이제까지 가사 및 가정 문제에 있어서 일부 제한된 역할만을 담당해 왔던
남성이 이제 가사노동에 평일에는 4.5시간, 주말에는 11.5시간을 투여하는 것으
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은 여전히 여성보다는 두 시간 더 적은 것이지만, 남성
이 그 이전에 했던 것에 비하면 두 시간 더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결과, 여권주의자들이 예견했던 바와 같이 [여성이] 가
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남성, 여성 모두에게 [가사노
동의] 짐을 더 늘어나게 했을 뿐이다.

“[자본에] 충성스러운 출세자들”(loyal winners)이라는 특권층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는 [지금까지는] 봉급과 [그에 따른] 소비의 즐거움에
대한 기회가 주어지느냐 아니냐 하는 것에 의해서만 좌우되어 왔다. 새로운 2단
-변속의 미국사회(특권적 노동자층과 그렇지 않는 층 등 두 가지 길밖에 없다는
것을 2단-변속이라는 말로 상징하고 있다 : 역주)에서는 그러한 양극화는 이제
자신의 [노동]시간을 배치하는 방식에 대해 얼마나 통제력을 가질 수 있느냐 하
는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고 있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새로운 특권층에는, 높
은 보수를 보장하지만 녹초가 되도록 혹사당하는 일자리를 아니라, 둘 다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노동조건에서 일정한 융통성을 요구할 수
있는 결혼한 커플들도 포함된다.
뉴욕에 근거지를 둔 여권주의 재단 카탈리스트(Catalyst)는 이러한 특권층에
대해 “[자본에] 충성스러운 출세자들”(결혼한 커플 전체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해 정
의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에 매우 만족하고 있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회
사를 추천하며, 통상 요구되는 것 이상으로 근무하고, 성과급에 의한 승진이나
보상을 받으며, 자신의 고용주와 장기간 함께 일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권적 노동자층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경
력과 자유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봉급을
별도로 치면, 그들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상급자를 원하고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기를 원한다(72%). 그들은 또한 생산성 기준(작업량 : 역주)을 스스로 설
정할 수 있기를 원하고(67%), 자신의 근무계획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기를 원한
다(58%). 그들은 특히 가족휴일 때, 집에서 근무할 것과 애 보는 비용을 고용주
가 지불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요컨대, 기업 [위계]구조에서 노동자들이 더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그들은
사생활을 할 권리―다른 노동자들은 하기 어려운 요구인―를 더욱 더 많이 요구
하고 있다.*주12) 그들의 자격증이 그들을 대체 불가능하게 하면 할수록, “충성
스러운 출세자들”의 요구는 수용될 가능성이 더욱 더 커질 것이다. 비록 그들의
고용주들은 업무에 전적으로 헌신적인 피고용인들을 더 선호하겠지만 말이다.
더구나 “충성스러운 출세자들”은 종종 자신의 가정을 위해 두 사람의 상당한
액수의 봉급을 은행에 예치하기 때문에, 만약 그들의 두 고용주 가운데 한쪽에
게만 〔사생활을 할 권리를] 요구한다면 [설혹 그러한 요구 때문에 한쪽이 해고
된다고 하더라도 대비가 되어 있으므로] 그들에게 크게 위험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업률이 하락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여전히 그러한 모험(사생
활을 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 : 역주)과 관련해서 잘못되었을 경우의 위험부담을
매우 잘 알고 있다. 10년 이상 근속하고 있는 피고용인의 비율―고용 안정성에
관한 훌륭한 지표인―은 1979년의 41%에서 1996년에는 35.4%로 감소했다.*주13)
다섯 중 거의 두 명 꼴로 노동자들은 [기존 직장과] 똑같은 보수와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너무 비관주의적이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미국의 현실이 실제 그
러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1993년 노동부의 추산에 따르면, 해고
되어 정부가 지원하는 직업훈련을 받았던 노동자들 가운데 20%만이 해고 전에
받았던 봉급의 대략 80% 수준을 주는 일자리를 구했다(나머지 80%는 그보다 못
한 수준의 일자리밖에 못 구했거나 아예 일자리를 못 구했다는 의미 : 역주).
[또한] 일시해고는 여전히 기록을 갱신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일시해고가 이
처럼 많이 이루어지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기업합병과 산업 구조조정 프로그램―
종종 주주들을 위해 “가치를 창출할”(주가를 끌어올릴 : 역주) 목적으로 이루어
지는―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월스트리트(Wall Street) 소득은 매우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
다. 평균적인 보통 가정은 199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989년에 누렸던 수준의
생활수준을 회복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상위 10%의 가정은 막대한
주식거래 이윤의 85.8%를 차지하고 있다(다우존스 지수는 1991년 4월의 3,000에
서 1999년 5월에는 11,000까지 올랐다).

잘 나가고 있는 수백만 미국인들(20% 이하의 특권적 노동자층 : 역주)은 일
(work)에 의해 전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가정]생활(life)에 우선순위를 부여하
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당분간은―그리고 바로 예측가능한 미래에는―그들의
성공은 그들의 동료 시민들과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을 것이다(20% 이하의 일
부 노동자층만이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역주).



□ 주 ———

*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1999년 11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 언론인이고,『인간의 열정: 스트레스 시대의 노동과 사랑』(The Passions of
Men: Work and Love in the Age of Stress)(New York, Putnam, 1988)의 저자
이다.
1)『과로노동하고 있는 미국인: 예기치 못한 여가시간의 감소』(The Overworked
American: The Unexpected Decline of Leisure), Basic Books, New York,
1992, 79-82쪽.
2) 국제노동기구,『1999년 노동시장 주요지표』, Geneva, 1999, 166쪽.
3) 제임스 T. 본드(James T. Bond) 등,『노동력 변화에 관한 1997년 연구』(The
1997 Study of the Changing Workforce), 가정 및 노동 연구소(the Families
and Work Institute), New York, 1998, 8쪽.
4) 앞의 책, 74쪽.
5) 노동통계청(Bureau of Labor Statistics), “1976년, 1986년, 1996년 및 2006
년 예상 성별, 연령별, 인종별 및 히스패닉계의 노동력 참여율”, <월간노동통
계>, Washington, 1997년 11월호, 표4, 28쪽.
6) {노동력 변화에 관한 1997년 연구}, 위의 책, 60쪽.
7) 프랭크 홉킨즈(Frank Hopkins), ‘독자의 편지’, , 1999년
9/10월호, 8쪽.
8) 애리 혹쉴드(Arlie Hochschild),『시간 접합: 일이 가정으로 되고 가정이 일
로 될 때』(The Time Bind: When Work Becomes Home and Home Becomes Work),
Metropolitan Books, New York, 1998.
9) 시간 부족이 부부 갈등 사례의 56%를 차지하고 있다.『두 사람의 직업인, 하
나의 결혼: 일터에서 업무에 성공하기』(Two Careers, One Marriage: Making
it Work in the Workplace), Catalyst Foundation, New York, 1998, 23쪽을
보시오.
10) 여권주의적 시각에 자의 마음: 아메리칸 드림과 의무로부터의 도피』(The Hearts of Men:
American Dreams and the Flight from Commitment), Doubleday, New York,
1983.을 보시오.
11)『노동력 변화에 관한 1997년 연구』에 따르면, “취업한 어머니들은 직장에
보다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서 동시에 근무하는 날에도 자신의 애들에게 취업
하기 이전과 똑같은 시간을 계속 쏟았다”. 위의 책, 38-41쪽.
12) 커스틴 S. 웨버(Kirstin S. Weber),『가정과 병가(病暇)법』(The Family
and Medical Leave Act), Radcliffe Public Policy Institute, Cambridge,
1996.
13) 로렌스 미쉘(Lawrence Mishel) 등,『미국 노동계급의 상태』(The State of
Working America), Cornell University Press, Ithaca,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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