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22일 ∼ 1999년 11월 28일 : 제315호

언론도 언론인도 없다

기자라는 직업이 부끄럽다. 공정보도를 요구하다 해고된 지 3년 째 접

어든 나를 지탱해 준 유일한 버팀목은 ‘도덕적으로 필요한 생명의

공기’니 ‘사회의 목탁’이니 ‘정의의 사도’니 하며 추켜 세워주

는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배려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과분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한쪽에서 열심히 물을 풀 때 반대편에서 물을 빼는 자가 있으면 결코

연못의 물은 채워질 수가 없다. 해고까지 당하며 공정보도와 편집권

독립, 언론의 사명을 지키려 애쓰는 기자들이 있는가 하면 가짜기자들

의 정체가 드러나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나는 이번에 드러난 문일현 차장과 이도준 차장은 중앙일보나 평화방

송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사와 방송국에도 있다고 확신한다. 단지 그들

은 발각됐을 뿐이다. 그 구체적인 예로 나에게도 비슷한 제의가 있었

음을 공개한다.

대선 직후, 당시 나는 해고된 상태에서 파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

선배가 정권인수위원회 고위관계자의 부탁이라며 ‘언론개혁 리포

트’를 거론했다.

나와 동료들은 당시 세계일보 이상회 사장의 편파 왜곡보도를 항의하

다 부당 전직, 불법 해고, 부당노동행위 등 불이익을 당하고 있던 상

태에서 그런 언론사 사주는 구속시켜야 하고, 불법을 일삼는 언론사는

퇴출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터여서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

다.

그러나 나는 비록 ‘언론개혁’의 당위성과 일부 언론사주 물갈이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왠지 현역기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

과 싸움의 상대자이자 패자를 다스리기 위해 승자에 붙는 행위를 양

심의 가책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더욱이 곧이어 본격화된 세계일보 파업사태에 주력하면서 ‘리포트’

를 잊었다. ‘리포트’는 차장급 선배가 다른 기자의 도움을 받아 제

출했다고 후에 들었다. 이번에 ‘문건’이 공개됐을 때 난 ‘그 문

건’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최근엔 언론관련 다른 부처에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들

었지만 외면했다. ‘한국신문필화의 성격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나

로서는 ‘자본’과 ‘권력’은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언론통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정부가 국민

들의 마음을 살 수 있게 정책을 잘 펼치면 그 보다 좋은 국정홍보는

없다고 충고했다. 인위적인 언론통제는 탄압빌미와 오해만 부를 뿐이

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 조정진(세계일보투위 위원장, 시사통일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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