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22일 ∼ 1999년 11월 28일 : 제315호
서갑숙 읽기, 모호함을 넘어 다양성을…
남성중심 성담론 질서에 도전한 책
여성의 공감대 짚어내고 이해해야
탤런트 서갑숙씨가 쓴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
다」라는 책이 판매되면서 시작된 헛소동(?)은 한 편의 코미디를 방불
케 한다. 서갑숙씨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을 견
디다 못해 책을 볼 수밖에 없었던 여성단체 실무자들과 각 분야 전문
가들의 인터뷰는 연일 신문과 TV를 장식했고, 그 대대적인 홍보효과
에 힘입어 50만부라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자랑하는 베스트셀러가 되
었다.
이 과정에서 논의의 초점은 10대 청소년이었지만, 실제 독자들은 30∼
50대의 아저씨와 아줌마들이었다. 솔직히 이 책은 선정적이거나 음란
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난리법석일까? 검찰
의 내사가 종결된 이후에도 지속되는 소동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고, 그래서 여성들끼리 모여 ‘침묵하지 않는 자의
즐거움’이란 이름의 작은 토론회를 열었다.
이 모임에서 우리들은 책에 대한 사회적 반향과 여성들의 반응을 주
로 이야기했다. 실제 10대와 20대 여성의 무관심, 30대 여성의 우호적
반응, 40∼50대의 열띤 구매와 비판적 반응은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책의 구매동기는 독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갑숙씨와
같은 386세대 ‘30대 여성’의 우호적 반응은 결혼 전후의 자기 경험
을 재해석하는 과정이며, 이미 ‘정사’나 ‘애인’ 등의 드라마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결혼과 성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지는 가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징후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편 20대의 경우, 멀티 오르가즘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낭만적이며
관능적인 30대 의 불행했던 삶이 M에 의해 자기를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 전환하게 되는 과정은 낭만적 사랑이 가미된 쾌락의 궁
전으로 초대받은 신데렐라에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데렐라가 그
후에 진정으로 행복했는지 알 수 없듯이 왕자를 만나는 것만으로는
여성의 주체적 행복찾기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여성의 성경험 드러내기가 안고 있는 위험성과 영향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이루어졌다. 탤런트가 실명으로 자신의 삶을 드
러내는 책을 쓴 것이 이전의 익명 ‘성고백 수기’들과 무엇이 다른
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빨간 책’ 등에 실리는 성고백 수기들이 숨기고 싶은 비밀이라면,
그의 책은 자신의 삶 전반에 걸쳐 담담한 목소리로 성을 이야기한다.
더욱이 담담함을 넘어서 죄책감이나 자괴감이 아닌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긍정성을 담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의 책은 남성중심의 성담론이
주도하는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뛰어난 출판 마케팅 전략, 연예인들의 수기 출판 붐, 성고백서 출판 유행 등을 고려해 볼 때 이 책의 긍정성만을 논할 수는 없다. 사
실 이 책은 선정적인 제목, 자기합리화로 포장된 금기에의 도전, 프리
섹스주의와 순애보 등의 모순이 뒤섞여 있는 출판 기획의 탁월한 성
과이다.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많은 일반 여성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지점들을 짚어내고 읽어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검
찰이나 언론, 정신과 의사들, 문화평론가들이 만들어내는 책읽기가 아
니라 독자들도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담론은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갑숙씨의
책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며, 앞으로도 독자 개
개인의 책읽기와 자기 해석에 따라 그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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