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22일 ∼ 1999년 11월 28일 : 제315호

매춘·실직 여성 희망 여무는 요람

때밀이교육·숙식제공 자립의지 키우기 지원

풀뿌리의 존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름드리 나무가 쓰러지고 골

짜기가 무너지는 물난리가 나 봐야 대수롭지 않던 풀뿌리들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물에 쓸려간 곳 십중팔구는 작은 풀뿌리들이 흙을 엮

어주지 않아 풀풀 날리는 성긴 땅이다. 큰 나무뿌리는 육중한 자기 몸

뚱아리를 지탱하는데도 힘들어, 주변 흙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큰 단체들이 ‘시민없는 시민운동’을

화두로 번민하고 있을 때, 이름모를 작은 단체들이 IMF로 좌절한 민

초들에게 환한 등대가 된다.

회원이 다섯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작지만 시민들에게 주는 영향력은

큰 풀뿌리시민단체들. 본지 발행 <시민단체총람 2000>을 보면 이런

작은 단체들이 1만개가 넘는다. 명망가가 없고, 언론에도 실리지 않지

만 소외된 지역주민에게 탄탄한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 풀뿌

리단체를 본지가 찾아 나선다. /편집자 주

이름난 백화점들의 휘황한 네온사인과 유곽의 음울한 백열등이 공존

하는 영등포. ‘소비해방구’라 불릴만큼 씀씀이가 헤픈 곳이지만 아

무한테나 문을 열어주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서민들에게 영등포는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영등포의 또다른 이름, ‘노숙자 천국’. 더 이상 잃을게 없는 이들의

한풀이 같은 것일까. 집과 함께 희망마저 잃은 노숙자들은 말없이 영

등포로 모여든다. 환락의 도시 한가운데 서있는 매춘여성들은 이들에

게 동병상련의 연민을 느낀다. 희망을 잃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자립지지공동체’(대표 김미령)가 애초 영등포에 자리잡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환락을 유지하는 매춘여성들과 살기위해 흘러들어온 노숙

여성들이 넘치지만, 이들이 누구보다 이 곳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사실

은 아무도 모른다. 공동체가 이들을 도왔다. 매춘·가정폭력·실업으

로 위기에 몰린 여성들은 그래서 공동체를 ‘희망의 집’으로 부른다.

김미령(사진)대표는 “IMF로 인한 대량실업, 가족파괴, 성 상품화 때

문에 이 시대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매매춘에 노출돼 있다”며 “정부

의 실업대책이나 시민단체의 구호사업도 위기에 몰린 여성들을 구제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공동체가 안 매춘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조공동체(self-help그룹)를 눈여겨

보았던 김 대표가 귀국 뒤 국내 매춘여성의 열악한 현실을 피부로 느

낀 직후다. IMF 외환위기가 전국을 휩쓸던 때여서 실직여성, 남편 폭

력을 피해 도망친 주부, 원조교제 뒤 버림받은 소녀, 갈 곳 없는 여성

노숙자들도 받아들였다. ‘자립할 때까지’ 눌러앉아 있게 했다. 공동

체를 거쳐간 여성은 지금까지 10여명.

김 대표는 “인원보다 중요한 건 세상에 버려졌다고 느끼는 여성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공동체가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새로 온 식구가 정신적인 안정을 되

찾을 때까지 식구처럼 함께 자고 먹는 것. ‘그냥’ 함께 살면서 각자

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알게 됐고, 그만큼 자립심도 커갔다.

독립이 그 다음 목표이니만큼 경제력을 갖추는 일도 중요했다. 공동체

식구들의 돈벌이를 위해 김 대표가 착안한 건 ‘때밀이’ 교육. 소외

여성 대상으로 대부분 복지관이 제빵·미용 같은 ‘고상한’ 교육에

치중해 온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일이었다.

“일단 옷을 벗으면 모두가 평등해지죠. 우리 식구들은 때를 밀면서

몸과 마음의 때는 물론, 세상에 대한 증오와 편견도 버려요. 깨끗해진

몸처럼 인생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는 희망을 새기게 되는거

죠.” 김 대표의 ‘때밀이론’이다.

수입도 괜찮았다. 조금만 분발하면 하루 10만원, 한달 2백만원도 거뜬

했다. 식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목욕탕에 내는 자릿세(2백만원)도 갚

고, 후배들 교육에도 열성이었다. 경제문제가 해결되면서 식구들은 공

동체 살림에 돈도 보탰다. 김 대표는 ‘실습용’ 고객이 되기 위해 틈

만 나면 목욕탕에 가서 옷을 벗었다. 남편이 ‘레스비언 되는 것 아니

냐’고 농을 건낼 정도로. 하지만 그만큼 식구들의 자립속도는 빨라졌

다.

지금 남은 식구는 3명. 십수년동안 유곽을 맴돌다 공동체에 들어온 미

경(가명),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뛰쳐나온 태현(가명), 아버지뻘

되는 어른과 원조교제를 하다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경은(가명)이다.

태현은 식당 주방일을 하고 다른 두사람은 때밀이를 하며 자립의지를

키우고 있다. 아쉽지만 얼마 안가 모두 독립할 사람들이다.

“자꾸 떠나야지요. 자기 인생을 찾아, 보람을 찾아 자꾸 떠나야 해요.

그게 우리 공동체가 추구하는 바니까요.” 김 대표는 얼마전 공동체를

도봉산 자락 쌍문동 넓은 집으로 옮겼다. 이를테면 ‘확장이전’인데,

실제로 공동체 문호도 크게 확대된다.

“활력을 잃은 사람들 모두 환영입니다. 시민운동 하다 슬럼프에 빠진

활동가들, 직장생활이 지겨워진 월급쟁이, 집안일이 넌덜머리가 나는

주부 등 삶의 전기가 필요한 사람들은 다 오세요. 더 나은 인생, 더

나은 사회가 어떤건지 머리를 맞대보자구요.”(문의 02-2637-4233)

<배영환 기자 hansae@kng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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