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29일 ∼ 1999년 12월 5일 : 제316호
탐 방 풀뿌리 시민단체 –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어려움 함께 나누는 이웃들
가족의 추억담긴 ‘보물’ 판매행사도
재정형편으로 더 많은 사업 못하는 게 아쉬워
회사·학교에서 바쁜 삶을 이어가는 우리에게 동네는 잠자리 말고 더
이상 특별한 의미가 없다. 산업화에 주거불안까지 겹쳐 지역공동체는
사실상 깨어지고 있다. 이렇듯 내 집 말고 이웃은 모르는 세태속에서
도 이웃사촌의 따뜻한 정을 나누는 단체가 있다.
강북구 수유전철역. 네온사인을 헤치고 10여분 쯤 걸어가니 주택가와
이웃한 빌딩 2층 창에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녹색여성모임,
회장 정외영<사진>)’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빼
곡하게 들어찬 옷가지며 신발들이 손님을 맞는다. 이 모임이 열고 있
는 녹색가게다. 필요하지 않은 생활용품을 서로 바꿔쓰는 녹색소비의
장이다.
책꽂이에는 주민들이 집에서 가져온 1천5백여권에 달하는 책들이 가지
런히 꽂혀 있고 테이블에는 귤과 떡이 놓여있다. “매일처럼 아이들이
숙제방에서 놀고 공부하니까 간식거리가 떨어지면 안되죠.” 정미현
총무의 말이다. 이 곳에서는 저소득·맞벌이 가정의 초등학생 자녀들
을 방과 후 ‘열린 숙제방’에서 돌보면서 수화·태권도·한자 등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어린이 봉사단을 스스로 꾸려 마을 청소도
한다.
“수다를 떨던 동네 주부 예닐곱명이 만들었다”는 정 총무의 말처럼
살아가며 느끼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고 만든 이 모임은 주민들의 요
구에 근거한 생활운동을 벌이고 있다. 모임을 만드니 마땅한 계기가
없어 묻어 두었던 많은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청소년 봉사단 ‘나누리’는 점수따는 봉사활동을 거부하는 청소년모
임으로, 지하철역에서는 길안내를 하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지
하철 길눈이’로, 숙제방에서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언니·오빠로, 녹색
가게에서는 점원으로 일한다. 2년동안의 활동으로 올해 전국자원봉사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생활 속 환경운동도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3년전부터 연례행사로 치
른 주민재활용축제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 상설 가게로 만들자는 주민
들의 바람은 녹색가게를 열게 했다. 이제는 인근 벽산 아파트에도 또
하나를 차릴 만큼 녹색가게는 주민들의 삶속에 정착했다. 골목마다 녹
색가게를 여는 것이 이들의 소망이다.
여성 모임답게 섬세함을 느끼게 하는 점들도 많다. 한달에 한 번은 보
물창고가 열리는데 필요하지 않지만 소중한 추억이 담긴 가족의 ‘보
물’들을 주민들에게 공개 판매하는 행사다. 어렸을 때부터 재활용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하는 어린이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
고 다시쓰는)장터도 열린다.
평범한 여성들이 자신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지역 사회발전의 중추
로 나서는 것을 돕는 여성지도자교육과 문화강좌도 열린다. 삶의 주인
인 자신을 새롭게 깨닫고 새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또
아나바다 교육도 동별로 돌아가면서 열고 있다.
저소득가정이나 홀로 사는 노인들과 함께 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활동 중 하나. ‘짝꿍봉사자’가 일주일에 한 번은 안부전화를 드리고
한 달에 두 번은 목욕탕나들이를 한다. 온천 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
서 할머니들이 “우리들 대접해 주는 우리 나라가 좋은 나라”라며 애
국가를 합창해 봉사자들 코끝이 찡했던 적도 있었다.
재정상 어려움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행사나 사업을 많이 못하는 것
이 가장 안타깝다. 지역운동을 하는 실무자 교육도 아쉽다. 그러나 음부터 서로 어려움을 나누며 성장해왔듯 이런 문제들도 하나 둘 해결
해 갈 구상이다.
“지역운동은 백화점식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주민들이 함께 사는 곳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도 다양하기 때문이죠.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보물이에요.” 정 총무의 말이 무너지는 지역공
동체에 새 희망을 가져올 날을 기대하게 한다.
<강상헌 기자 lafalafa@kng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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