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시애틀을 넘어 WTO를 거부하는 전 세계적 민중투쟁으로!

박찬식

결렬된 ‘밀레니엄 라운드’ 각료회의

지난 며칠간 바다 건너 미국 시애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전개되었

다. 특히 지난 11월 30일 미국과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5만 명의 시위로 인구

50만의 시애틀은 마비되다시피 했다. 미국에서는 60년대 반전시위 이후 가장

큰, 그리고 가장 격렬한 시위였다고 한다. 급기야 군이 동원되고 통행금지가 발

령되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세계무역기구의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이른

바 ‘밀레니엄 라운드’―의 의제를 채택하기 위한 각료회의 개막식은 비상사태가

선포된 속에서 예정보다 다섯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열릴 수 있었다. 이렇게 개

막식부터 파행으로 시작되더니 곧 타결될 것이라던 협상은 끝내 결렬로 막을 내

렸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보잉 등 미국이 자랑하는 초국적 기업들의 본거지인

항구도시 시애틀, 바로 이곳에서 ‘밀레니엄 라운드’의 닻을 올리고 우렁찬 고동

소리와 함께 새 천년의 항해를 시작하려던 미국과 초국적 자본의 기도는 일단

실패로 끝났다. 우르과이 라운드와 IMF 신탁통치를 거치면서 미국과 초국적 자

본의 위세와 횡포를 뼈저리게 체험했던 우리로서는 모처럼 만에 통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협상이 결렬로 막을 내리게 된 일차적인 이유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자

기이해를 관철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경쟁력을 가

지고 있는 농업과 서비스에 대해서는 보조금 철폐와 전면개방 등을 강력히 요구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반덤핑 조치의 남용문제를 의제로 넣는 데 반대하고,

노동과 환경기준을 무역에 연계시키는 의제를 강력히 밀어붙임으로써 공산물 수

입을 억제하려 하는 이중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그로 인해서 미국은 한편으로는

농업분야를 중심으로 유럽연합과 부딪쳤고, 노동-환경 연계와 반덤핑 문제로 발

전도상국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특히 반덤핑 문제의 경우 135개 회원국 중 미

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의제채택을 지지했음에도 미국은 “반덤핑을 의제로 채

택하면 협상 전체가 깨질 수 있다”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미국이 과도하게 자신

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고 하면서 유럽연합과 약소국들 사이에 일종의 연합전선

이 형성된 셈이다. 여기에 이른바 비정부기구(NGO)라고 불리는 전 세계의 다양

한 사회운동세력들의 저항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민중의 삶과 민족주권을 위협하는 WTO 뉴라운드

이렇게 해서 뉴라운드 의제설정을 위한 시애틀 협상은 일단 결렬되었다. 그러

나 이것으로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멈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우

루과이 라운드에서 넘어온 의제인 농업분야와 서비스 분야, 무역관련 지적재산

권 분야에 대한 협상은 시애틀 회담의 결렬과 무관하게 내년 1월부터 시작된다.

나머지 의제들에 대한 협상도 내년 3∼4월께 제네바에서 재개될 예정이다.

이번에 시애틀 사태를 통해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우리 노

동자들에게는 뉴라운드니 밀레니엄 라운드니 하는 이야기들이 ‘강 건너 불’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밀레니엄 라운드는 ‘강 건너 불’처럼 보고만 있을

문제는 결코 아니다. 바로 우리 노동자·민중의 삶과 민족의 주권에 대해 직접

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이 협상의 도마에 올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루과이 협상이 진행될 때에만 해도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르과이 라운드와 그 결과로 만들어진 WTO 체제가 우

리에게 가져온 결과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심대한 것이었다. WTO의 전신인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는 자유무역을 내세우긴 했지만 주로 공

산품에 한정되어 있었고 ‘관세 인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우루과

이 라운드부터는 농산물과 서비스 분야까지도 포괄하게 되었고,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장벽’까지도 협상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상하수도, 교통, 통

신, 교육, 보건 등은 우리 생활에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하는 공공서

비스들까지도 자유화(사유화 혹은 상업화)와 개방의 대상으로 되었다. 국민경제

적·사회적 필요에 의해 민족국가가 채택해 온 정책들, 예컨대 농업보호 정책

(쌀 수매 등)이나 국내 산업 육성 정책 같은 것들이 모두 ‘자유무역’에 위배되

는 ‘비관세 장벽’으로 취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WTO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

정’, ‘무역관련 투자조치협정’과 같은 것들을 통해 단순히 ‘무역’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경제·사회적인 문제들을 광범위하게 포괄해 나가고 있다. 더

욱이 GATT 체제와 달리 WTO는 협정을 위반하는 국가들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분쟁해결 절차를 가지게 됨으로써 민족국가의 주권을 제약하는

‘범지구적 권력기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번 WTO 뉴라운드는 바로 이러한 WTO 체제를 배경으로 해서 우루과이 라운드

당시에 다음 협상에서 다루기로 했던 의제들―농산물협정, 서비스협정, 무역관

련 지적재산권 협정―과 이번에 제기된 바 있는 ‘무역과 노동·환경기준 연계’

‘무역과 투자’ ‘정부조달 투명성’ 문제 등 새롭게 추가되는 의제들을 다룬다.

농산물 분야의 경우 미국과 농산물 수출국 그룹은 농산물도 공산품 교역 수준

으로 자유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대해 유럽연합이나 한국, 일본

등 수입국들은 농업이 식량안보, 환경보전 등 다원적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

에 공산품처럼 교역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협상의 추세

를 볼 때 농산물 관세의 대폭적인 인하, 보조금의 추가 감축 등이 불가피할 것

으로 보인다. 농산물 개방이 확대될 경우 농업에 미치는 파장은 새삼 거론할 필

요가 없을 것이다.

서비스 협정의 경우 우리나라는 이미 우루과이 라운드 당시에 11개 분야 155

개 서비스 업종 중 8개 분야 78개 업종에 대해 시장개방을 약속했다. 여기에는

금융, 통신서비스, 시청각서비스(영화 및 비디오 제작·배급, 음반 제작·배

급), 환경(하수서비스, 폐기물처리), 전문직 서비스(공인회계, 세무, 도시계획

및 조경설계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정부가 WTO에 제출한 서비스 협정 제안서에 보면 “모든 서

비스 분야를 협상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원칙을 수용하면서 다만 세부협상에

서 국내 기반이 취약한 부문(영화 상영업, 교육, 의료, 법률 속도를 최대한 늦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속도를 늦춘다고 하고 있지만 기

본적으로 교육이나 건강 같은 기본적인 공공서비스조차도 개방대상으로 포함시

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포기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컨대 미국인이 설립하여 영어로 수업하는 초·중등학교가 생길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또 ‘선택의 자유’를 내세워 공공의료보험에 대한 의무

가입을 없애버림으로써 돈 많은 사람들은 민간의료보험을 통해 훨씬 좋은 혜택

을 받고, 가난한 사람들은 공공의료보험 재정이 고갈되어 최소한의 의료혜택조

차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생명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이 적

용되면 종묘업체가 씨앗에 특허를 내버릴 경우 농부들은 자기가 농사지은 것을

가지고 씨앗으로 쓰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WTO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준비하자!

몇 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았지만, WTO의 새 협상이 우리 노동자·민중들의

삶에 미칠 해악은 참으로 엄청나다. 그것은 결코 협상을 잘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노조나 환경단체들은 노동기준이나 환경기준을 포

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언뜻 보면 이것이 제3세계에서 노동기본권을 강화하고

환경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제3세계 정부나 자본은 노동-환경기준을 무역에 연계시킬 경우 수출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서 그것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런 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

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WTO 체제하에서 이루어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국

적 자본에 의한 경제식민지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공공서비스의 해체 등 노동

자·민중의 삶과 권리를 원천적으로 짓밟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이다. 또

앞으로도 그런 경향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렇게

현실에서 인간다운 삶이 계속 파괴되어 나가는 상황에서 종이 위에서 보장된 노

동권은 아무런 의미도 실효도 없다. 예컨대 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 ‘사회조항’을

집어넣었지만 그것은 멕시코 노동자·민중들의 삶이 수렁으로 빠져드는 데 아무

런 보호막도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WTO 뉴라운드, 나아가 WTO

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WTO 뉴라운드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과 초국적 자본의 전지구적 지배를 더

욱 확대하고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시애틀 시위에서 보여

졌듯이 그것은 오히려 WTO 체제와 미국-초국적 자본의 전 지구적 지배에 맞서

는 세계민중의 저항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미국 노동총동맹-산

업별회의(AFL-CIO)의 시위도 처음에는 상층 노동관료들이 클린턴 정부와 야합하

여 노동-환경기준을 포함시키라는 요구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시위가 격화되면서

대중적으로는 WTO 자체를 반대하고 제3세계와 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한

다. 그리고 이처럼 시위의 성격이 통제를 벗어나 반(反) 초국적 자본의 성격을

띠어가자 미국 정부는 강경탄압을 지시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지금까지는 농민운동을 비롯한 일부 운동단체만이 이 문제에 관

심을 가지고 대응해 왔다. 그러나 WTO 협상은 결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행히 이번 시애틀 각료회의를 거치면서 협상은 다소 지연되었고 일반 민중들

의 관심도 높아졌다. 뉴라운드 협상은 앞으로 3년 혹은 그 이상 계속될 예정이

다. 이제부터라도 각 노동조합이나 단체에서 교육·선전 활동을 집중적으로 강

화하자. 그리하여 WTO 뉴라운드를 미국-초국적 자본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거부하는 대중적 투쟁, 전세계적 연대투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만들어 나가

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