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6일 ∼ 1999년 12월 12일 : 제317호
우리 손으로 문화재를 지킨다
병산서원을 지키는 시민의모임, 서원주변 건축물 공사 저지 나서
문화재 주변 관광지 개발에 쐐기
병산서원을 다녀온 이라면 누구도 잊지 못한다. 통나무를 깍아 걸친
나무계단으로 만대루에 올라서서 바라본 찰랑거리는 낙동강물과 그
뒤로 위엄있게 펼쳐진 병산, 그리고 강가에 늠름하게 자라난 소나무숲
을 말이다. ‘청천절벽(晴川絶壁)’, 말그대로 맑은 물에 우뚝 솟은 절
벽같은 산을 마주하고 있으면 절로 자연에 취하기 마련이다.
올해 봄 고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답사에 나선 사람들은 병산서원 주
변에 공사 중인 건축물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만대루에 올라서면 한눈
에 들어오던 병산과 낙동강의 흐름을 끊고 건물공사가 한창이었던 것.
대학교수, 건축가, 사업가 등 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
이 병산서원 지키기에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병산서원을 지키는 시
민의모임’(공동대표 김원 외 2인)을 결성하고 안동시와 풍천면을 상
대로 진행중인 건물공사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했다.
병산서원 일대는 준농림지역으로 연면적 2백㎡ 이상이거나, 3층 이상
인 건축물을 지을 경우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건물은 연면
적 2백47.41㎡, 최고높이 5.5m에 이르지만 안동시는 이 건물이 사전승
인이 필요한 건물이 아니라며 합법이라는 답을 보내왔다. 1동당 연면
적이 2백㎡ 미만이기 때문에 하자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문화재관리법
상으로도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을 지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답을 보내
왔다.
시민모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문화재파괴, 환경오염 가능성을 들어 환
경부·건설교통부·문화재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환경부, 건설교통
부에서는 경상북도로, 경상북도는 다시 안동시로 이관했다. 이런 와중
에 공사는 80%가량 진행돼 벌써 완공을 앞두게 됐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화재청이 지난달 20일 안동시 앞으로 시정지시를
내린 것이다. 문화재청은 신축건물이 서원 일대 전통건축물과 어울리
지 않고, 건물고가 높아 현재의 경관을 훼손한다는 시민모임의 진정서
를 받아들여 사적지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안동시
에 요구했다. 시민모임의 진정서가 작은 빛을 발한 것이다.
시민모임의 황평우씨는 “‘벌써 다 지었으니 어쩌란 말이냐’ ‘대
안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며 “하지만 사유재산보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못박는다. 그는 또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세수확보를 위해 무분별한 규제완화를 행한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이
있다”며 앞으로 문화재 관리를 위해서는 “국민신탁운동(National
Trust)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안동시는 문화재청의 요구를 받아 주변경관 보호방안을 검토하
고 있는 중이다. 안동시 담당자는 “현재 공사가 거의 진행된 상태이
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며 “시정방안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 최완기 교수는 “병산서원은 사당, 강당, 동재, 서재, 누각
등을 갖춘 1자형 서원 건축의 대표적인 예”라며 “원형 그대로 보전
돼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크다”고 설명한다. 최 교수는 또 “주변경관
이 좋기 때문에 자칫하면 불국사 등 전국 유명 사찰들처럼 시장판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완공을 앞둔 건축물, 시민의 손으로 병산서원을 지킬 수 있을까.
<이소영 기자 sylee@kng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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