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6일 ∼ 1999년 12월 12일 : 제317호
올해의 인권영화상 「열대야」
현실의 아픔을 담아야한다는 의무감에서 출발했죠
제4회 인권영화제는 올해 신설된 한국영화 경쟁부문 ‘올해의 인권영
화상’에 이근호 감독의 「열대야」를 선정, 수상했다.
「열대야」는 98년 여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현장을 기록
한 1백95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 이 다큐멘터리에는 흔한 나레이션
하나 없다. 정리해고에 처한 노동자들이 내뱉는 목소리만으로 3시간이
넘게 진행된다.
회사의 정리해고 발표가 있은 뒤 휴가를 받은 사람들과 가족의 불안
한 심정을 그린 1부와 희망퇴직하라는 회사의 압력이 있은 뒤 철야농
성에 들어간 노조의 투쟁과정을 보여주는 2부로 구성돼있다.
‘올해의 인권영화상’ 수상이 결정된 1일 여의도에서 이근호(31) 감
독을 만났다. 첫 번째 다큐멘터리로 한국독립단편영화제 현실과 판타
지 부분 최우수상을 받고 이어 올해의 인권영화상까지 수상한 그는
아직 얼떨떨한 모습. “각각의 의미가 있는 인권영화 중 하나를 골라
상을 주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선정된 이상 사회적인 책
임을 느낀다”는 말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열대야」는 어떤 영화인가.
△지난해 여름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있었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기
록한 다큐멘터리다.
-평소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았나. 찍게된 계기는.
△IMF가 닥치고 98년 내내 직장인들은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에 시달
렸다. 나도 부산방송 PD로 있다가 2월에 사표를 썼다. 겉보기엔 희망
퇴직이었지만, 사실상 정리해고였다. 얼마 뒤 울산에서 대규모 정리해
고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동운동의 메카라 불리는 곳, 사무직이
아닌 ‘블루칼라’들은 정리해고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했다. 한
국 노동시장에서 정리해고가 수용되느냐 아니냐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퇴직금으로 카메라와 장비를 마련해
울산으로 갔다.
-결심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부산방송에서 고발프로그램을 연출했다. IMF직후 노숙자, 실직자들
이 넘치고, 지방 노동청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방송인으로써 현실의 아픔을 담아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결국 그
런 것을 알리기 위해 방송국에 들어갔던 것이니까.
-첫 영화로 두 개의 상을 받았다. 「열대야」의 어떤 점 때문인가.
△완성도가 뛰어나지는 않다. ‘기록’이라는 다큐의 원칙에 충실했다
는 점을 높이 산 것으로 본다. 방송국에서 찍는 다큐에는 ‘구성’이
있다. 나레이션으로 내용을 축약하기도 하고 인터뷰가 들어가는 식으
로. 그런 것 없이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현장에서 채취한 소리와 이야
기만으로 내용을 끌고 가자고 결심을 했다. 나레이션없이 3시간을 보
여주는 힘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지겹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론 혼자서 해냈다는 점이 뿌듯하다.
-올해의 인권영화상에서 준 상금은 어떻게 쓸 생각인가.
△비밀인데. 그 돈을 어떻게 받겠나. 다음 해를 위해 인권영화제에 도
로 내놓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받은 상금 1천만원은 앞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라고 준 돈이다. 영화를 찍을 생각이다. 다큐멘터리냐 극영화냐
형식을 규정할 생각은 없다.
<이소영 기자 sylee@kng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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