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6일 ∼ 1999년 12월 12일 : 제317호
물빛 꿈을 간직한 사람들
매춘여성 8명 용기내 출연
악몽같은 현실과 꿈에 관한 이야기
매매춘근절을위한한소리회 제작
원하는 곳은 순회상영 진행할 터
사창가, 환락, 빨간 불빛, 매매춘, 휘청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윤락여
성…. 텔레비전에서 모자이크로 처리되고, 경찰에겐 단속의 대상이며,
비수처럼 내꽂히는 따가운 비난을 감내해야하는 사람들.
이 여성들이 어디에서도 속 시원히 드러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
놓았다. 카메라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성노예로 살아가고 을 털어내며 마치 제 몸의 누더기로 남아있는 낡은 옷들을 한꺼풀 한
꺼풀 벗어내려는 듯한 이들의 이야기를 숨죽여 고스란히 담아냈다. 성
매매 거리에서 쓴 다큐멘터리 「꿈에 관한 보고서」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데 말은 안나오는 거야. 목에는 고무같은 게 꽉
막혀 있는데 당기면 늘어나기만 하고 빠지지는 않고….” 10년 동안
똑같은 악몽을 꾸어온 명희(27). 남자들의 성적학대와 배고픔을 견디
다 못해 사창가를 탈출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생활을 시작했
지만 그것도 잠시. 차용증을 갖고 나타난 포주의 빚 독촉과 협박에 시
달리고 있다.
환각제를 먹지 않으면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자옥(44). 12살 때 아버지
가 돌아가시고 19살 때부터 시작한 매춘생활. 어느새 스물다섯해라는
세월을 흘려보냈다. 약에 취하지 않으면 “돈을 천만금 준대도 싫다”
는 자옥은 앞으로 2∼3년만 이 생활을 할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다.
“비록 이런 데 있지만 맑은 물처럼 바르고 정직하게 살자는 뜻에서
수정이라고 했어.” 자신을 버린 엄마를 가슴에 담아두고 사는 수정
(44). 윤간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매춘생활에서 번 돈을 사회단체에
후원하고, 장애인을 돕는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꿈에 관한 보고서」는 ‘창녀’로 불리는 8명의 여성들의 일상과
꿈에 관한 기록이다. 매매춘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회장 이옥정)와 다
큐멘터리 제작공동체 ‘장수하늘소’가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지난 5월부터 7개월 동안 작업해 지난 1일 공개상영회를
가졌다.
「꿈에 관한 보고서」에서 8명의 여성들은 악몽같은 현실을 토로한다.
“우리에게도 인격과 자존심이 있다구” “경찰서에서 ‘너희가 인간
이냐’ 하는데 정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갈 데가 없더라구,
사창가밖에 머물 곳이 없었어, 아무리 찾아봐도…” “창녀란 소리 듣
기 싫어. 이 생활 안하려구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두(눈물).”
악몽같은 현실은 악몽으로 이어진다. 끝없는 길로 쫓겨 내몰리는 꿈,
살려달라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데도 ‘단골왔다’는 포주의 말
한마디에 벌떡 잠에서 깨어나는 꿈…. 이들은 꿈에서조차 지옥같은 매
매춘의 일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카메라에 잡힌 이들의 모습은 더러운 창녀, 불법 윤락행위의
주범, 타고난 ‘끼’ 때문에 사창가로 흘러 들어간 ‘그런 여성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린 시절 꿈 많던 소녀, 바로 우리의 모습과 다르
지 않았다. “느이들이 알어? 우리 같은 여자들한테도 꿈이 있다는 걸
아냐고.”
이들에게는 조심스레 가꿔온 꿈들이 남아있다. 소연은 분식집을 차리
고 싶어하고, 자옥은 공부가 하고 싶고, 숙현은 면사표를 쓰고 싶어하
는 물빛 꿈들. 그 꿈을 위해 모두들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꿈에 관한 보고서」는 매춘여성들을 성노예로 전락시킨 사회구조에
그 책임을 묻고 있다. 남성의 배설구로 여성의 성을 도구화하는 사회
구조, 현실에선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법, 인권유린과 성착취
로 배를 불리는 업주와 그에 기생하는 직업소개소, 단속을 빙자해 뇌
물을 챙기며 매매춘을 방치하고 있는 경찰들….
한편 술자리에서 남자들은 방석집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쇼를 안주삼
아 소주를 털어넣는다. 끼와 게으름 때문에 매춘을 하는 여성들은 동
정의 가치가 없고, 남성의 성욕을 풀려면 매춘여성이 필요하다고.
“매매춘, 누구도 이것에 마침표를 쉽사리 찍지 못하고 악순환의 고리
를 끊지 못했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이야기하고자 한다. 매매춘이 사라
지는 세상, 그래도 가야할 길에 대해서.”
<서정은 기자 punda@kngo. 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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