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6일 ∼ 1999년 12월 12일 : 제317호

다국적 기업과 초국적 금융자본의 힘에 대항한

강력한 연대의 장 마련

2000년을 한 달 남짓 앞둔 지금, 미국에서 60년대 반전시위 이후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도시가 있다. 감미로운 로맨스 영화 ‘시애틀

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무대였던 시애틀이 바로 그곳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주최하는 제3차 각료회담이 벌어진 이 도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 만명의 시위대들이 벌이는 반대시위가 격화되

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위대들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춘 방송 화면만으로는 WTO의 뉴 라

운드가 무엇이기에 이런 격렬한 반대를 야기했는지 짐작하기 쉽지 않

다. 더욱이 WTO가 “인간의 얼굴을 한 지구촌 경제”(global

economy)를 일궈가고 있다는 클린턴 대통령의 찬사와 시위대들은

“치매에 걸린 공산주의자”들에 불과하다는 무어 WTO사무총장의

비난이 곁들여지면 뉴라운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하기가 더 어

려워진다. 언뜻 보기에는 보호무역주의 대 자유무역주의라는 단순 도

식이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지만 뉴라운드는 그 이상의 함의를

갖고있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우리는 ‘지구화’(globalization)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여기고 있다. 죽의 장막을 걷고 중국이 WTO에 참여

한 것이라든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테크놀러지의 눈부신 발전으로

전 세계가 동시 생활권으로 묶인 것은 그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하지

만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지구화’인가를 따져보면 변방에서 들

리는 외침 같은 뉴라운드 반대자들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다.

지난 95년 1월 WTO가 탄생한 후 5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른바 ‘지

구촌 경제’는 전례 없는 경험을 해야 했다. 자본의 전 세계화라는

고전적인 명제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것이다. 다국적 기업과 초국적

금융자본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우리도 IMF를 거치면서 뼈저리

게 경험한 바 있다. 그럴 듯 하게 포장된 이 ‘지구화’의 논리는 한

민족의 생존권과 직결되었기에 근본적으로 보호될 수밖에 없는 농업

을 쉽게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산물을 공산품

과 똑같이 취급해서 전면 자유화하려는 이 뉴라운드가 무슨 결과를

초래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 더 우리의 근심을 자아내는 것은 뉴라운드 협상이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환경문제에 대한 고려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99년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출의 3분의 1이 미국과 유럽의 다

국적 기업에 의한 것이었다. 이런 독점의 양상은 이른바 21세기형 첨

단산업에서 더 두드러진다. 10대 다국적 기업에 의해 통신시장의

86%, 컴퓨터산업의 70%, 제약업의 35%가 장악돼 있다. 이것만이 아

니다. 3대 다국적기업의 자산이 48개 극빈국의 총 자산을 능가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1불 미만으로 생활하는 최극빈층의 인구가 87년도에 비해 2억

명이나 늘어난 것은 누가 해명해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WTO는 그

간 장미빛으로 치장된 ‘지구촌 경제’의 전도사였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모두가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만 퍼뜨렸을 뿐 수혜자와 피

해자는 철저히 가려왔던 것이다.

한국의 80년대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시위가 계속되는 시애틀은 주방

위군까지 투입되고 통금이 실시되면서 안정을 찾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회담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주최측은 천명했고 뉴 라운드 협

상은 예정대로 마무리 지어졌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모여든 시위대

가 뉴 라운드 협상 일정에 맞추어 진행하고자 했던 포럼의 주제들을

보면 이 협상에 무엇이 빠져있는가가 분명해진다.

그 포럼의 의제들은 다음과 같다. 환경과 건강, 노동과 인권, 여성, 민

주주의 그리고 발전, 식량과 농업정책. 다국적 기업과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의 맞선 인간. 이것이야말로 새 밀레니엄의 세계 무역체계를

규정짓게될 뉴라운드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이는 시위대에 의해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부서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비춰준 미국의 방송이

나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대표단의 준비부족과 무능을 탓하는 것으로

일관한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뉴라운드의 본질적인

모습인 것이다. 언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반대시위를 계속한

전 세계에서 모여든 운동가들과 노동자들을 보면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외침이 예언자의 목소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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