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6일 ∼ 1999년 12월 12일 : 제317호
원영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국제기획실장
“WTO에 NO라고 말하라”
한국 민간운동의 지평 넓힐 소중한 기회
‘시애틀 대전’이 벌어졌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의 비정부기
구가 시애틀에서 한판 승부를 벌인 것이다. WTO 각료회의에 반대하
는 수만명의 비정부기구들은 단결된 힘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투자협정·‘WTO 밀레니엄라운드 반대 민중행동’ 대표단으로 시애
틀에 간 원영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국제기획실장이 현지 소식을
전해왔다.
○…11월 30일 이른 아침 시애틀 시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전날인 11월 29일 일부 시위대가 시내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여, 다
음날의 격전을 예고했지만,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시위대가 WTO
개막식과 본회의가 열리는 패러마운트 극장, 워싱턴주 컨벤션 센터 주
위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경찰저지선을 향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
했다.
한편 시내 북쪽에 위치한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는 2만여명의 노동조
합원들이 모인 가운데 AFL-CIO(미국노총)가 주최하는 노동자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후, 중심가를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다른 한편, 학생과 직접행동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대오는 이미 이른
아침부터 중심가에 도착하여, 경찰과 대치하면서 인간사슬로 WTO 공
식대표단의 출입을 봉쇄하였다. 오전 10시 30분경부터 경찰은 최루가
스와 폭음탄을 시위대에게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시위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부 폭력이
발생한 곳은 제3세계 아동노동을 포함한 노예노동으로 악명높은 맥도
널드·나이키 등 5∼6개 다국적기업의 상점에 국한됐다. 공포분위기와
폭력은 주로 경찰측에 의해 유발된 것이었고, 시위와 행진은 평화적으
로 진행됐다.
AFL-CIO의 행진대열이 시위대에 합류하고, 또 제3세계 민중운동 중
심의 ‘민중회의’ 대오가 합류하면서 시위대의 사기는 드높아졌다.
거리 곳곳에서 집회가 진행되고, 다양한 퍼포먼스도 연출됐다. 특히
민중행동의 북·꽹가리 연주는 시위의 흥을 돋구는 데 결정적인 역할
을 했다.
그러나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4∼5시경) 시내 전역에서 최루탄과 폭
음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부분적으로 저항하면서 서서히 해
산하기 시작했다. 산발적인 시위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고, 역사상 최
대의 시위에 놀란 시애틀 시민들은 “잠못이루는 밤”을 맞아야 했다.
저녁 7시에 시애틀 경찰당국이 연방군의 투입을 요청하면서 7시 이후
시내 통행금지를 선포해 시애틀 전역을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었다.
12월 1일에도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됐다. 클린턴 대통령의 시애틀 방
문을 의식한 경찰측의 과잉진압이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오후에
는 도심 전역이 마비되고 시내버스의 도심진입이 전면적으로 중단되
기도 했다.
○…한편 ‘투자협정과 WTO 뉴라운드 반대 민중행동’(이하 민중행
동)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유상욱 사무총장, 스크린쿼터감시단 양기환
사무국장, 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 등 6명의 대표를 시애틀 현지에
파견하여,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다.
특히 ‘WTO에 NO라고 말하라’ 민중회의에 참여하여, 우루과이라
운드 이후 가속화된 자유화·개방화 정책이 민주주의·노동·환경·
인권 등에 미친 영향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은 채 새로운 협상이 출범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시애틀 도심 전역을 완전히 마비시킨 11월 30일 투쟁은 WTO 뉴
라운드 출범에 반대하는 전세계 민중의 의지를 알리기에 충분한 ‘세
기의 투쟁’이다. 시애틀의 경험은 한국민간단체 대표들이 신자유주의
적 지구화와 WTO체제에 대항한 투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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