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직장문화] 나간 사람 몫까지 “업무 눈덩이” –

1999년 한국의 직장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다.

구조조정의 칼날을 간신히 피하자, 과중한 업무와 경쟁 그리고 혹독한 평가

가 직장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형 인간」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흘러나왔지만, 회사 내에서는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풍

토가 오히려 강화됐다.

그래서 늘어난 직장인의 과로사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IMF전에는 1인당 12∼15건을 처리했다더군요. 지금은 20∼25건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초 한국감정원에 입사한 이모(29)씨는 『야근을밥먹

듯 하지만, 급여는 IMF 이전보다 크게 떨어졌다』고 했다.

그의 회사생활이 힘겨워진 것은 구조조정 때문이다. 2년 전 1200명이었던 직

원이 25% 감축됐다. 「나간 자」들의 일은 남은 자들에게 그대로 넘겨졌다.

지난 6월 업무도중 과로사 한 롯데기공 해외영업차장 김모(51)씨는 IMF가 낳

은 살벌한 경쟁의 희생자. 간염증세에도 14년간 단 한번 결근한 적이 없던 그는

사고 당일 병원에 가보라는 부인의 권유를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가 세상을 떠났

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빨리 회사 가야하는데 』였다

신분보장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공무원들도 변화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19년만에 6급 주사로 승진했다가 감원 바람에 밀려 지난해 9월 대기발령을 받고

고민하던 서울시 공무원 문모(50)씨는 신문배달을 하며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

하던 중 올 2월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다 쓰러졌다.

근로복지공단이 이달 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97년

222명이었던 과로사 직장인 수는 98년 239명으로, 올해 8월까지 158명으로 증가

추세다. 그 가운데 40∼50대는 부동의 랭킹 1위다.

쓰러지는 동료들을 목격하면서도 직장인들은 일터로 나간다. 부산에서 대학

을 나와 97년 10월 삼성생명에 입사한 백모(28)씨는 『워크홀릭(일 중독증)이

돼야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결혼 전에는 아내가 집에 있기를 바랐죠. 두달 전 아내가 전공을 살려 음

악학원을 차렸을 때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마디로 「총력전 체제」가

된 것 같습니다.』

직장이 생존을 위한 전쟁터로 변하면서 직장인들은 옆의 동료를 돌아볼 마음

의 여유를 잃었다. 당연히 동료와 부하,

『지난해 8월 다니던 은행이 다른 은행과 합병한다는 소문이 돌 때 였어요.

동료들이 저보고 「너는 서울대 출신이니 나가도 되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듣

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직장생활을 했나 후회가 되더군요.』

보람은행에 다니다 지금은 모 증권회사로 전직한 박모(30)씨의 말이다.

가족(대우)-인화(엘지)-팀워크(삼성) .

IMF 직전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내건 슬로건들은 「구조조정」 「세

계 경쟁」이라는 IMF시대의 구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성도는 그 어느 때보다 희박해졌다. 회사는 충성을 요구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이달 초 과장 1명과 대리 1명이 스스로 나갔어요. 임금도 회복됐고, 경기도

좋아져 해고위험도 없었는데 . 그들은 「자기를 지켜주지 못할 조직에 대한 회

의가 들었다」고 하더군요.』

서울대를 졸업한 뒤 SK케미칼에 입사한 박모(27)씨는 『자기사업을 한다면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말은 영

화제목이 아니라 우리 직장의 현실이 된 것이다.

(* 문갑식기자 gsmoon@chosun.com *)

(* 나지홍기자 willy@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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