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특수강 고용승계투쟁 3년
“고통스런 투쟁, 그러나 후회는 없다”
고법에서 승소, 곧 대법판결…승리 확신
대통령 약속에 노정합의 “끝까지 간다”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고용승계투쟁이 오는 12월15일이면 만 3년을 맞는다.
지난 96년 12월16일 삼미특수강이 강봉·강관공장을 팔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세 번째 맞는 겨울인 셈이다.
삼미특수강 고용승계대책특별위원회(의장 김현준·고용특위)는 올해 10월5일부터 통산 8번째 상경투쟁을 벌이고 있다. 1백50여명이 2개조로 나누어 1주일씩 번갈아가며 서울로 올라오고, 건강이 극도로 안 좋은 조합원 20여명과 나머지 절반은 창원특수강 앞에서 매일 출근투쟁을 벌인다.
현재 숙소는 금속산업연맹 사무실이 있는 서울역 뒤편 태호빌딩 3층이다.
12월4일 토요일 저녁. 농성장에서는 갖가지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7∼8명씩으로 조를 짜서 세끼 모두 조별로 해결하고 있는데, 마침 저녁밥을 먹는 시간이다.
김창남 고용특위 부의장이 농성장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한술 뜨라며 부르는데, 김 부의장이 찾아 앉은 곳은 유난히 좋은 냄새가 난다. 이틀 전 최문호 조합원의 마흔두번째 생일을 그냥 넘긴 조원들이 못내 아쉬워서 삼계탕을 끓인 것이다. 음식솜씨에서 3년 농성의 경력이 묻어난다. 자기가 한 턱 낸 것이라며 은근히 자랑하는 김규남씨(31)는 고용특위에서 홍보차장을 맡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당번들이 설겆이를 하는 동안 김차장한테서 지난 3년의 이야기가 술술 흘러 나온다.
지난 3년에 대한 기억을 묻자 그는 ‘고통’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환갑 넘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큰아이 백일잔치를 치르고 상경투쟁을 시작해 3년이 지난 것이다. 아이가 아빠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때는 어머니와 처자식에게 가장의 도리를 다 못하고 있는 게 미안할 뿐이지만 ‘고집’ 하나로 버티고 있다는 김차장. “투쟁이 끝나면 가족에게 그 동안 못한 만큼 봉사하겠다”는 그는 도리어 “연세가 드신 형님들이 흔들림 없이 따라주는 게 고마울 뿐”이란다.
지난 3년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은 김차장 뿐만이 아니다.
삼미특수강에서 주는 휴업수당 50∼60만원이 수입의 전부인 조합원들은 투쟁기금으로 매달 5∼10만원씩을 내고, 남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꼬박꼬박 들던 적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그나마 깬 지 오래다. 3년 동안 농성·노숙투쟁으로 집에서 잔 날이 절반도 안되다 보니 지난 10월 원진녹색병원에서 실시한 건강검진(<노동과 세계> 76호)에서 정상판정을 받은 사람은 10명도 채 안 된다. 가족들 중에는 투쟁 때문에 고소고발 당해서 벌금을 낸 사람도 있다.
사실 지난 3년 동안 할 수 있는 투쟁방법은 다 써봤다. 노숙투쟁은 물론이고 97년 10월에는 44명이 집단적으로 장기를 기증하고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올 6월에는 고등법원에서 복직판결을 받았지만 창원특수강이 복직을 시켜주지 않는 바람에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이광수씨가 고통스러운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다락방에서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다. 때론 아내가 떠나기도 했고, 부모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세월만큼 풍파도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전부는 아니었다. 방석부 전 부위원장을 비롯해 5명이 투쟁기간 동안 ‘열애’ 끝에 결혼했고, 조합원 신상진씨(30)는 오는 26일 창원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또 조합원 모두가 가족 같아서 경조사에 일손이 모자라지 않는다. 집안의 농사일도 몰려가서 해낸다.
짧지 않은 3년. ‘자산매매형식’을 빈 편법적이고 위장된 정리해고를 막아내는 마지막 버팀목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이 고용보장투쟁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년 1월22일이면 고등법원에서 전원 복직판결을 받은 지 1년이 지난다. 김창남 부의장은 “이번 상경투쟁으로 곧 열릴 대법 판결에 압력을 가할 것이며, 지난 해 6월 노정합의에서 마련된 포항제철-정부-금속산업연맹-노조간 교섭틀의 연장선으로 정부와 포항제철을 상대로 해서 항의집회를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2월2일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상용 노동부장관에게 “포항제철 회장과 노동부장관, 그리고 민주노총 위원장이 만나 해결하자”고 촉구한 바 있다.
현재 농성대오는 오전에 포스코, 자민련, 노동부, 포항제철 유상부 회장 집 등을 항의방문하고, 오후에는 다른 사업장의 집회나 일정에 결합해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다.
“긴 투쟁이었던 만큼 힘들었지만 후회도 없고,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다”는 김창남 부의장은 “중노위와 고등법원에서 복직판결이 난만큼 우리 투쟁의 정당성도 입증됐고, 자신도 있다”고 말한다. 김규남차장은 “만에 하나 대법에서 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최고 사법기관에서 그런 판결이 나는 것은 권력과 자본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짓밟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약속과 노정합의는 여전히 우리가 계속 싸워나갈 근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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