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애틀 세계무역기구 각료회담이 결렬되고 미국 대표와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이 자신들의 애초 태도를 뒤바꾸자 우리는 이를 고소하게 지켜봤다. 그들은 시애틀 총회 전날까지 밀레니엄 라운드가 성공리에 개막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라운드가 열리지 못한다면 세계무역기구 자체는 물론, 국제무역과 경제성장 등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라운드가 결렬되자 겨우 며칠만에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절반의 실패’ `잠깐의 휴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회원국간 견해차가 좁혀질 것이며 다음달께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시애틀에서 미국과 세계무역기구가 완패한 것은 분명하다. 다국적 기업에 유리했던 세계화 논리도 패배했다.

시애틀 사건에서 세가지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시민사회진영이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둘째 개발도상국 진영이 달라졌다. 셋째 미국의 경직성이 도전받았다. 시민사회진영의 힘은 개막식 전날부터 모든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수천명의 시위군중이 도심을 장악했고, 개막식이 열리는 총회장 입구를 나흘간이나 인의 장막으로 봉쇄했다. 지난해 다자간투자협정 무산 때처럼 이번에도 시민단체가 대거 활동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시위군중 대부분이 비정부기구나 노동조합 구성원으로서 각자 다른 요구를 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것은 세계무역기구 회의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모였다는 점에서 게임의 룰을 따른 것일 뿐이다. 다만 세계무역기구가 이제까지는 다국적 기업의 의견만 고려했는데, 앞으로는 새로운 견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게다가 시민사회진영에서 주장했다는 다양한 의견은 실제로는 세계무역기구가 불어넣었던 환상이었다. 모든 비정부기구와 노조는 겉으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했지만 결국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것은 세계무역기구의 세계화 논리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개도국들도 더 이상 부국 앞에 침묵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국제회의에서 개도국들이 이번처럼 중요한 구실을 하기는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 등은 일부 강대국에 개방된 `그린 룸’제도를 성토했다. 세계무역기구 이전의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가트) 체제에서는 비슷한 취향과 목적을 가진 부국들이 모였기 때문에 합의하기도 쉬웠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에선 회원국이 135개국으로 늘었고 국제무역에 관한 규칙을 엄격히 적용하려 하기 때문에 동일한 절차와 논리에 따른 합의가 어려워졌다. 그 시점에서 미국 대통령이 외교상 믿기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개막식 다음날 연설에서 근로기준을 안 지키는 나라에 대해 제재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개도국들을 더욱 강하게 연대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미국 대표부의 경직성도 시애틀 라운드를 결렬시킨 중요한 요인이었다. 농업문제와 관련해 유럽과 일본, 한국은 공동대응을 했는데, 미국 대표부는 몇달 뒤 있을 선거 때문에 어떤 양보도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미국의 각성”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은 “자국의 이익 수호를 위해 미국이 의장권한을 포기했다”고 적었다. 미국의 전략은 “협정 아니면 결렬”로 매우 단순했다. 개도국에게 근로기준을 지키라고 하면서 반덤핑법에 대한 논의는 거부했다. 국제무대에서 정치·경제적 지도자를 자부했던 태도와 어울리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지난번 포괄핵실험금지조약에 대한 미국 상원의 비준 거부에 이어 국제무대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후퇴를 맛보았다. 클린턴 행정부는 국내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어도 국제사회에서는 난처한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번 시애틀 사건을 다국적 기업 위주의 세계화가 패배한 것으로 본다면 이는 세계 민주주의의 진전이다. 시애틀 총회의 결렬은 세계무역기구가 변화해야 하며 결코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기능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웠다. 국제무역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우쳐 줬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