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13일 ∼ 1999년 12월 19일 : 제318호
기/고
최병한 (대한소아과학회서울지회 부회장)
약의 오남용에서 어린이를 구하자
우리는 지난 30여년 동안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 국민생활
수준과 위생환경이 현저히 향상되었다. 그러나 어린이의 건강에 대한
문제는 다른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밖에 놓여 있다.
보건경제학적 통계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아사망률(출생아 1천명당
분만부터 돌까지의 사망률)인데 우리나라는 9.9명으로 일본 등 선진국
의 4∼5명 정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1∼4세 어린이 출생아 1천명당 3.0명(선진 30개국은 출생아 1천명당 1.0)으로, 일반적
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나쁜 상태에서 아기들을 키우고 있다.
높은 영아사망률과 가족구조의 변화,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로 육아와
건강증진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으나, 국가는 이
모든 것을 개인들에게 일임하고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어린이의
건강보호와 의료서비스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시기다.
의약분업은 약의 오남용을 막아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의약분업안을 보면 어린이의 경우에는 반대로 의
사의 처방없이 약을 사용할 수 있는 폭이 커져 더욱 심한 약의 오남
용이 우려되고 있다. 어린이가 사용하는 약물의 85% 이상이 일반약품
으로 분류돼 의사의 진찰없이 약사가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됨으
로써 약의 오남용을 막겠다는 취지와는 반대로 커다란 위험에 노출되
었다.
아기건강을 약사에 맡길 수 없다
지난 10년간 실시해 온 ‘약국의료보험’을 개발할 당시만 해도 보건
복지부는 적어도 ‘3세 이하의 어린이에 대한 진단 없는 투약의 문제
점’을 인식해 약국의료보험 대상에서 이들을 제외함으로써 미리 위
험을 피하는 상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의약분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행위원과 시민대표들은
3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 처방되는 약물의 대부분을 약사의 임의조제
가 가능한 일반약으로 분류함으로써 우리 아기들을 무방비상태에 놓
이게 했다.
더구나 자기의 증상을 표현할 능력이 없고 가장 중요한 증상인 체온,
혈압, 맥박, 호흡의 변화가 심해 간단한 감기에서 폐렴이 된 경우도
많아 어린이는 항상 응급환자를 보는 기분으로 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약물의 복약지도도 환자의 상태는 물론 모유, 우유, 이유식의 단계 및
육아상담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약물의 개발은 성인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어린이가 사용하는
약물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으며 약의 설명서에도 ‘임산부와 6세
이하 어린이는 의사와 상의하여 투약하라’는 내용이 흔하다. 우리는
임산부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어린이를 임산부에 준
해 주의깊게 약을 선택하고 치료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이 시기의 어린이는 대부분 시럽제나 분말약을 복용하게 되는데
여기에도 문제가 많다. 일반적으로 시럽제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
지만 실제로 이에 대한 논의가 한번도 없었고 단지 제약회사가 신고
한 내용을 아무 생각없이 인정, 분류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환각체험
을 위해 먹는다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계속적으로 위해성을 보도하고
있는 덱스트로메트로판이 들어 있는 소아용 시럽이나 복합제도 많이
있으나 일반약으로 분류돼 함부로 팔리고 있는 상태다. 분말약은 환자
에게 정말로 그 약이 투여되었는지, 약물이 적게 들어갔는지, 너무 많
이 들어갔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약화사고시 책임소재도 불분명
하다.
어린이 건강 걱정하는 65만명 서명
이 시기의 어린이는 화학적 성분이 같고 생물학적 동등성이 입증된
약물이라도 색깔이나 맛, 냄새, 농축도 등의 차이에 따라 약에 대한
순응도 및 편이도의 차이가 커서 이 같은 문제에 얼마나 적절히 대처
하느냐에 따라 약물 투여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어린이의 건강을 걱정하는 많은 분들과 소아과학회와 소아과개원협의
회가 중심이 돼 전개한 ‘의약분업에서 어린이를 구합시다’라는 1백
만인 서명운동에 흔쾌히 동참했다. 지금까지 64만5천명의 절대적인 호
응을 받아 ‘의약분업 대상에서 3세 이하 영유아를 제외해야 한다’
는 건의를 국회에 제출했고 지금도 서명용지가 계속 답지하고 있다.
이같은 성원은 아픈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약국으로 찾아다니며 주사
라도 맞을라치면 2중 3중의 번거로움을 겪어야 하는 불편함 때문이기
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이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로 부모들이
선뜻 협조해 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기를 잘 길러 건강하고 반듯한 성인을 만들고 싶은 것은 단지 부모
들만의 욕심이 아니고 사회전체의 바람이지만, 아기를 잘 기르는 것은
쉽지 않다. 적게 낳아 간다운 삶을 살게 하자는 것이다. 의사가 없는 후진국처럼 약사의 손
에 아기를 맡기는 것이 지금의 잘못된 의약분업안이라는 사실을 알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불편, 시간과 경제적인 부담
을 갖고 시작하는 제도의 개혁은 삶의 질을 높이고, 의료의 질적 향상
도 도모하고, 약의 오남용을 막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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