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나활동가] 이데올로기 시대가 끝났다고?

87년 6월, 정원철(29)씨는 폭발할 것처럼 타올랐던 민주의 거리 에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서 고련)의 일원으로 명동

성당과 서울역 광장, 시청 앞 광장 따위를 누볐다. 그해 12월에는 명동성당에

서 한주 동안 ‘부정선거 규탄 농성’을 했다. 학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잘리

진 않았어요, 공부 를 좀 하는 편이었거든요.” 고3 때에도 ‘직선제 학생회

쟁취’ 등을 과제로 내세운 서고련 활동에 주력했다. 대입 준비에는 관 심도 없었다. 그해 겨울 그와 함께 활동했던 친구 6명은 졸업 뒤 바로 공장에 취직

해 현장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집안문제 도 있고, 역할분담에 따라”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공공부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공부하려고 대학

들어간 게 아니었거든 요.” 전국교지편집실연합 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98

년 8월, 입 학한 지 13학기 만에, 8년6개월동안 달고다니던 대학생 딱지를 뗐

다.

그해 10월 그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공채로 들어갔다. 고등 학생 때부

터 줄곧 ‘좌파운동’을 해온 그가 ‘공공선’과 ‘중산 층운동’을 내세운 경

실련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입만 살 아있는 선배들이 보기 싫었어요.

실존사회주의권 붕괴 뒤 공장에 갔던 선배들의 상당수가 학교로 돌아와 ‘도

서관파’가 됐죠. 그 냥 ‘나도 좀 살아야겠다’고 하면 그만일 걸, ‘세상은

달라졌다 , 이제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며 열심히 사는 후배들의 가

슴에 찬물을 끼얹은 게 몹시 못마땅했어요. 뭐라도 당장 해야겠다 고 마음먹었

죠. 꼭 경실련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말보 다 몸이 앞서는 사람이

다.

경실련 정책실 소속인 그는 올해 ‘무자료거래’ 실태를 잇달아 파헤치며

조세정의 실현을 촉구했다. 여름엔 가전제품, 9~10월엔 화장품, 그리고 최근

엔 의약품 무자료거래 실상을 고발했다. 자 원활동가들과 함께 공장 잠입, 집

단상가 녹취, 설문조사 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무자료거래 실태를 뒤쫓

다보니 재벌의 부도 덕성, 도소매상의 탈세,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 따위가 뒤

엉켜있더 라구요.”

그는 여전히 시민운동보다는 “계급운동의 성격이 강한” 노동운 동에 관심

이 많단다. “지금은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일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민참여형 운동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등 제 나름의 힘을 기른 뒤 뭘할지 다

시 생각해볼 참입니다.”

글·사진 이제훈 기자

◐ 99년12월14일19시24분 한겨레 http://www.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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