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아침햇발] /분배악화, 일시작 현상인가/이경/논설위원

지난 10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민중대회는 격렬한 시위로 큰 뉴 스거리가

됐다. 시위대와 경찰이 정면 충돌하면서 다친 사람만도 학생과 농민 경찰 등

200여명이나 됐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정부 들어 뜸하던 과

격시위가 왜 이 시점에서 되살 아난 것일까.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

만여명이 모여 분 노의 함성을 지르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해답은 민중

대회 가 내건 고용안정 보장, 노동시간 단축, 농가부채 해결 등의 구호 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삶의 질이 크게 악화된

현실을 반영한 구호들이다. 실직과 감봉 등으 로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고 중산

층마저 크게 줄어든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결국 민중대회는 분배문제가

우리 사회의 핵심현 안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안이한 현실인식

그렇다면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민중대회에 이틀 앞

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 내용을 보면 궁금증이 풀린다 . 재정경제부·기획예

산처·복지부·노동부 장관 등이 참석한 이 날 회의 주제는 `최근 소득분배 상

황과 대응방향’이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은 “아이엠에프 위기 극복 과정에서

소득분배가 다소 악화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구조적인 것이 아닌’ 급격한

경기 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며, 경기회복이 본격화하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분배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소리들이 많지만 그렇게 심

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가 문제를 이렇게 보고 있으니 새로운 대

책이 나올 리 없다. 이날 회의는 이 미 발표한 `중산층 및 서민생활 안정대책’

등을 열심히 추진하기 로 하는 선에서 끝났다. 정부의 분배문제에 대한 인식과

처방이 안이하기 짝이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최근의 분배상태 악화가 `구조적인 것이 아닌, 일시적 현상’이라 고 진단하

면서 정부가 내세운 근거는 이렇다. 소득 불평등도를 나 타내는 지니계수와 상

하위 20% 계층의 소득배율이 지난 2분기 이 후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고 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들 수치가 아이엠에프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려면 한참 멀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진단은 너무 낙관

적이 반면, 상류층은 유가증권 투자 등을 통해 자산을 불리는 게 훨씬 쉬워지고 있

다. 분배상태의 악화가 일시적이 아닌, 구조 적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다. 장기호황을 누리면서도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미국의 경험을 되새겨 볼 필

요가 있다.

국가적 의제로 설정해야

빈곤층 추계를 둘러싸고 보건복지부와 시민단체 사이에 벌어진 논란은 분

배문제에 대한 정부의 일그러진 시각을 드러내주는 또다 른 사례다. 참여연대

는 얼마 전 한달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빈곤선 이하 인구가 올해 1분기

1030만명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 빈곤선 이하 인구가 외환위기 이전인 96년

의 763만명은 물론, 지난해의 921만명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는 주장이다. 유

엔개발계 획(UNDP)의 용역을 받은 참여연대가 전문가들을 동원해 끌어낸 이

런 연구 결과에 대해 정부는 즉각 `잘못된 추계’라고 반박하는 등 흠집내기에

바빴다.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재반론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단체의 추계가 크게 잘못됐다

고 하긴 어렵다. 세계은행 도 97년 9%에 그쳤던 한국의 도시빈민 인구가 98년

에는 그 두배가 넘는 19%로 급증했다고 발표하지 않았는가.

정부의 분배상황 대처방식에 커다란 허점이 있다. 문제의 심각성 을 철저히

깨닫지 못하다 보니 대응책도 소극적이다. 상황을 호도 하기에 급급한 경우도

적지 않다. 분배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사회적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도 꾀할 수 없다. 정부의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분배문 제를 국가적 의제로 삼고 근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막

연하게 경기가 회복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 다.

이대로 새 천년을 맞을 수는 없다. klee@hani.co.kr

◐ 99년12월15일18시26분 한겨레 http://www.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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