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은 우금치
지난 주말 광화문에는 다시 수십 만의 시민들이 모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탄핵소추안 가결은 시작일 뿐’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오직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외침만이 뒷걸음질 치는 것만 같은 세상을 뒤흔들고, 윤석열‘들’을 몰아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광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여성이, 청소년이, 성소수자가, 투쟁하는 노동자와 농민이 비상계엄 이전부터 이미 ‘계엄 상태’에 놓여 있던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했고, 이런 모순들이 사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민들이 끌고 온 트랙터가 경찰에 의해 가로 막힌 상황을 알리면서 “갑오년 동학농민군이 끝내 넘지 못한 그 우금치가 바로 남태령”이라면서 시민들의 연대를 호소했다. 그러자 그날 밤, 1만여 명의 시민들이 남태령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농민들과 시민들은 오래도록 기억될 밤을 보냈다. 집회 현장과 온라인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튿날, 더 많은 시민들이 남태령으로 모이고 야당 정치인들이 조력하자, 경찰은 트랙터에 길을 터줄 수밖에 없었다. ‘연대’가 만든 승리였다.
거꾸로 가는 정치
광장의 시민들은 서로를 가로지르며 앞으로 가고 있는데, 윤석열 잔당은 뒤로 가고 있다. 지난 25일 윤석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2차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 검찰 출석 요구 불응까지 합하면 벌써 네 번째 조사 거부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총리는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을 임명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민주당은 좌고우면하며 판단을 미루다가 잔당들이 제멋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넓혀주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지역 가면 욕도 먹겠지만 각오하고 얼굴을 두껍게 다녀야 한다”고 결기를 다졌다. 윤석열 잔당들이 다같이 뻔뻔해지기로 작심한 셈이다.
국힘이 이처럼 시간을 끄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 당의 다선 의원 윤상현이 말했듯, 이들은 “국민들이 1년쯤 지나면 다 까먹는다”고 본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총을 겨눴고,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파괴될 뻔 했음에도 이를 전혀 중요하게 사고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국힘 소속 의원들 다수는 시간을 끌다보면 정국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 올 수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3년 뒤 치러질 총선에서 의원직을 이어가려면 경선에서 투표권을 가진 핵심 당원 여론만 신경 쓰면 되기 때문이다.
26일 오후, 내란 방조자 한덕수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한다”는 내용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했고, 민주당은 예고한대로 한덕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정족수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 불복 여론을 조직하고, 상황을 혼돈으로 빠뜨리려 하고 있다. 결국 광장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더 많은 동료와 함께 거리로 나서야 한다.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지자 민주당은 ‘내란극복 국정안정’을 기치로 내걸었다. 차기 정권을 수권할 수 있는 세력으로서의 면모를 뽐내려 했던 듯하다. 하지만 상황은 민주당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한덕수는 ‘윤석열 없는 윤석열 체제’의 대통령 행세를 하고 있다.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제는 김건희 특검과 내란 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도 점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정안정’은 고사하고 혼돈은 연말까지 지속되고 있다.
공은 용산에도, 국회나 헌법재판소에도 있지 않다. 여전히 광장에 있다. 시민들이 ‘어떻게’, ‘무엇을 향해’ 투쟁하느냐가 이후 정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변화의 향배를 가늠지을 것이다.
남태령 투쟁은 우리에게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첫째, 농민들과 조선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를 통해 우리 모두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를 바꾸는 운동으로 진전시켰다. 둘째, ‘퇴진’ 구호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순들에 함께 맞서야 한다는 점을 드러냈다. 셋째, 윤석열을 퇴진시킬 수 있는 힘이 국회나 헌재가 아니라 여전히 거리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들, 일상적으로 이동권을 제약받는 장애인들, 데이트 폭력에 의해 고통받는 여성들,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는 이주노동자와 자녀들 등을 호명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은 빠르게 퇴진시켜야 마땅하지만, 그것을 해낼 힘은 국회나 헌재가 아니라 광장에 있다. 더구나 대통령 하나 몰아내는 것에서 그쳐서도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윤석열은 같은 자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일상에서는 끊임없이 불평등과 착취, 혐오를 강화하는 우리 사회를 바꾸는 운동들을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색깔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주 내내 전국 주요 도시들에서 열린 크고 작은 집회들은 이를 잘 보여줬다. 한국 최초 여성 용접공이자 노동운동가 김진숙이 항상 외치듯, 웃으며-끝까지-함께 나아가자!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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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윤석열 퇴진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흐름을 만드는 공동대응 네트워크(가)'에서 제휴 받은 기사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