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Vox’ 칼럼에서 보르도(Michael Bordo)와 맥컬리(Robert McCauley)는 외국 중앙은행들이 더 이상 미국의 대외 적자를 주도하지 않으며,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이 제기한 트리핀 딜레마의 부활에 대한 우려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칼럼은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트리핀 논리(기축통화 발행국은 전 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해야 하지만, 그 적자가 쌓이면 결국 기축통화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논리)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글로벌 금융의 구조적 진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더 이상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미국의 경상수지에 달린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이제 그 지위는 미국 제도의 신뢰성, 시장의 깊이, 그리고 글로벌 달러 시스템을 지탱하는 인프라의 견고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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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Vox 칼럼에서 마이클 보르도와 로버트 맥컬리는 우리가 더 이상 ‘트리핀의 세계(Triffin land)’에 살고 있지 않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그들은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스티븐 미란이 트리핀 딜레마를 다시 제기한 것에 대응하고 있다. 이 딜레마에 따르면, 미국은 글로벌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서 세계에 안전한 달러 자산을 공급해야 하며, 그 대가로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하게 되고, 이는 결국 산업 기반과 금융 주권을 침식시킨다.
미란의 핵심 명제는 익숙하다. 외국 중앙은행들은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고 무역 흑자를 누적하기 위해 미 달러를 매입한다. 이 달러는 미국 국채에 재투자되며, 이는 달러 가치를 과대 평가되게 유지시키고, 미국 제조업을 약화시키며, 미국 노동자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잃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지속적인 대외 적자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와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만든다고 주장된다.
이 주장은 직관적으로 매력적이며, 특히 경제 민족주의가 부상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글로벌 통화 역학에 기반하고 있다. 보르도와 맥컬리는 외국의 공식 기관들이 더 이상 미국의 대외 적자를 주요하게 금융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은 평균 GDP 대비 2.8%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외국 공식 기관의 미국 자산 매입은 GDP의 단 0.16%에 불과했다. 이는 2000년대와 비교해 큰 폭으로 감소한 수치다.
실제로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국 국채 비중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0% 이상에서 2024년 말에는 16%까지 급감했다. 이러한 실증적 현실은 미국이 여전히 트리핀식 제약하에 있으며, 세계에 안전한 달러 자산을 공급하는 것이 외부 균형을 저해한다는 주장을 결정적으로 반박한다.
그러나 더 깊은 이야기가 있다. 설령 외국 중앙은행들이 여전히 대규모로 미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트리핀 틀은 오늘날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는 적합하지 않다. 보리오(Borio)와 디시아타트(Disyatat, 2011)의 통찰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유동성과 금융 불안정성의 진짜 원인은 경상수지 불균형이나 공식 자금 흐름이 아니라, 고도로 탄력적이고 민간 주도로 중개되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가능하게 한 총자본 흐름의 규모와 구조다.
과거와 현재의 트리핀 딜레마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이 1960년대에 제시한 원래의 우려는 다음과 같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적으로 기록해야 하며, 이러한 적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당 통화의 장기 가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트리핀의 경고는 1971년에 현실이 되었다. 그해 미국은 달러의 금 태환을 중단했고, 브레튼우즈 체제를 종식시켰다.
스티븐 미란은 이 고전적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하면서, 금 태환 대신 전 세계가 달러를 안전한 자산으로 신뢰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의 서사에 따르면, 흑자를 내는 국가들이 달러를 수요함으로써 달러는 구조적으로 과대평가되고, 미국 산업은 공동화되며, 궁극적으로 지정학적·금융적 리스크가 초래된다. 이 관점에서 달러의 패권은 파우스트식 거래다. 미국은 저렴하게 스스로를 금융화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외부 의존성과 내부 쇠퇴를 감수해야 한다.
이 틀은 기축통화 지위의 대가에 대한 오래된 우려를 반영하지만, 오늘날의 글로벌 금융 구조와는 점점 더 괴리되고 있다.
보르도와 맥컬리가 정확히 짚어낸 점
보르도와 맥컬리는 미란 주장의 핵심 인과 논리에 도전한다. 이들은 오늘날의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주로 외국 중앙은행에 의해 금융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신,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케이맨제도 같은 금융 허브를 통해 활동하는 기관투자자들과 같은 민간 주체들이 미국 자산의 주요 매입자가 되었다. 이들 투자자는 거시적 준비 동기보다는 수익률, 위험 선호, 규제 차익에 따라 움직인다.
경상수지와 공식 자본 흐름 간의 이러한 탈동조화는 트리핀식 서사의 실증적 토대를 약화시킨다. 외국 중앙은행들이 더 이상 미국 적자의 주요 금융 공급자가 아니라면, 미국의 대외 포지션이 공식 준비 축적의 부산물이라는 주장은 힘을 잃는다.
그러나 트리핀을 반박하는 논거는 단순한 데이터 수준을 넘는다. 글로벌 유동성 창출의 메커니즘 자체가 변했다.
희소성에서 탄력성으로
트리핀의 세계에서는 기축자산이 희소했으며 국가가 이를 발행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유동성이 탄력적이며, 대부분 민간 부문에 의해 창출된다. 보리오와 디시아타트는 현대 글로벌 금융의 지배적 역동성은 공식 경로를 통한 흑자 재활용이 아니라, 과도한 차입에 기반한 금융기관들에 의한 총자본 흐름의 폭발적 증가라고 설명한다.
이 점은 특히 달러 기반 국제 통화 시스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은행, 자산운용사, 그림자금융 기관들은 담보 전환, 만기 불일치, 파생적 레버리지를 활용하여 달러 표시 자산을 창출한다. 이들 관행은 글로벌 유동성을 경상수지나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에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으로 확장시킨다.
그 결과, 달러 유동성은 더 이상 미국의 경상수지나 국채에 대한 공식 수요에 의해 제약되지 않는다. 대신, 환매조건부채권 시장(repo market), 외환스왑(FX swaps), 역외 달러 대출, 담보 재사용 등을 통해 생산된다. 이는 오늘날의 금융 취약성이 준비금 부족보다는 유동성 과잉,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 신용 배분 왜곡에서 더 자주 나타남을 의미한다.
전체 흐름을 봐야지, 남는 것만 보면 안 된다
보리오와 디시아타트의 또 하나의 주요 통찰은 총자본 흐름의 중요성이다. 대외 불균형에 대한 많은 논의는 여전히 순자본 흐름—즉 한 국가가 저축하는 것과 투자하는 것의 차이—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총자본 흐름—국경을 넘나드는 모든 금융 자산과 부채의 규모—은 순흐름보다 훨씬 더 크며, 불안정성을 더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유럽의 은행들은 미국의 모기지담보부증권(MBS)에 투자하기 위해 미국 달러 도매 자금 시장에서 대규모 차입을 일으켰다. 이 흐름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훨씬 상회했으며, 무역 불균형이 아니라 자금 조달 차익(Funding arbitrage)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이 흐름은 체계적 금융 취약성을 유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경상수지 균형만으로는 금융 리스크의 복잡성과 집중도를 설명할 수 없다. 어떤 국가는 경상수지가 균형 상태일지라도 글로벌 불안정성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처럼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국가도 심층적 시장, 법적 안정성, 정치적 신뢰성이 유지된다면 여전히 안전자산 피난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진짜 위협은 외부에 있지 않다
미란은 지속적인 미국의 적자가 결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은 잘못된 것이다. 달러 패권에 대한 진짜 위협은 외부 불균형이 아니라, 달러 기반 금융 시스템 내부의 불안정성에서 나온다.
트리핀의 시대에는, 미국이 글로벌 유동성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 우려였다. 오늘날에는, 글로벌 금융 시장이 과도한 차입, 불투명성, 안전성의 착각을 통해 과도한 유동성을 만들어내고, 결국 위기 속에서 그 유동성이 증발해버릴 수 있다는 점이 우려다.
이런 맥락에서, 취약성의 핵심은 미국이 ‘반드시’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이 달러 부채를 과잉 생산하고 그것이 위험 인식의 변화로 인해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에서 벌어졌고, 2020년에도 반복되었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글로벌 달러 유동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개입해야 했다.
결론: 우리는 더 이상 트리핀의 세계에 살지 않으며, 돌아갈 일도 없다
보르도와 맥컬리는 옳다. 고전적 의미의 트리핀 딜레마는 더 이상 미국의 대외 포지션이나 국제 통화 시스템의 작동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탄력적 금융, 민간 중개, 방대한 총자본 흐름이 부상한 덕분에, 우리는 단순히 트리핀의 세계를 떠났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에 도달했다.
미란이 제기한 미국 제조업과 국가 경쟁력에 대한 우려는 현실적인 문제다. 하지만 그것을 부활한 트리핀 딜레마라는 틀로 설명하는 것은 문제를 오진하는 것이며, 진짜 취약성의 근원을 흐릴 위험이 있다. 그것은 즉, 경기 순환에 취약한 과도하게 탄력적인 글로벌 금융 시스템, 그리고 노동자, 혁신, 산업역량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온 국내 정책체제다.
우리는 더 이상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미국의 경상수지에 달린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 지위가 미국 제도의 신뢰성, 시장의 깊이, 글로벌 달러 시스템을 지탱하는 인프라의 견고함에 달린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단지 트리핀의 세계를 떠난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지도 너머로 나아갔다.
[출처] Not Triffin, not Miran: Rethinking US external imbalances in a new monetary order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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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조 보쏘네(Biagio Bossone)는 국제 금융과 통화 정책, 중앙은행 제도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이탈리아 출신의 경제학자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이탈리아 중앙은행등 여러 국제기구와 중앙은행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