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김충현의 동료들, "죽음의 발전소 멈추는" 파업 예고

용산 대통령실 앞, 요구안 전달하려는 노동자들 경찰이 막아서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 고 김충현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지 일주일째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달라진 것 없는 발전산업 현장의 구조적 문제가 참담한 비극을 반복한 원인이라며,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9일 오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한 명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죽음의 발전소, 이제는 끝장내자". 참세상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는 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즉각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올 여름 전력피크 시기에 전국적인 공동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발전비정규직연대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2018년 고 김용균의 사망 이후에도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지속된 외주화와 현장인력 부족, 안전시스템의 공백이 한 젊은 노동자를 기어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고인이 소속된 한전KPS 하청업체는 6개월, 1년 단위로 계약이 변경됐고 잦은 업체 변경 등으로 인한 고용불안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안전보장을 위한 요구들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면서 "고용안정과 안전한 일터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제시했다.

이들은 "지금도 전국의 발전소에는 고 김충현 동지와 똑같은 조건 속에서 유사한 업무를 하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며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이유로 현장의 부족한 인력이 채워지지 않고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업무강도가 강화되고, 안전의 위협을 받으며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도 짚었다. 

김영훈 한전KPS비정규직 지회장은 "한전KPS는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것처럼 일을 시키면서도, 법망을 회피하며 책임은 미루고 하청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위험의 외주화'를 지속하고 있었다"고 환기했다. 김 지회장은 또한 "우리는 모든 증거와 정황 자료들을 수집했고, 원청에 대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과 함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원청을 단죄하기 위해 이번 죽음의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면서 "더 이상 고 김충현 노동자의 명예를 실추하는 일이 없고, 유가족들의 한을 풀 수 있도록 한전KPS 비정규직지회와 발전비정규직연대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상표 금화PSC지부장은 "우리 발전 노동자들은 우리의 땀과 노동으로 전기를 만들고 싶다, 우리 발전 노동자의 피로 전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고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지부장은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차별받고 더 위험한 곳으로 생명을 내맡기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서 "김충현의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진심 어린 사과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죽지 않고 안전하게 싸울 것"이라 이야기했다. 발언을 맺으며 송상표 지부장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이다!"라고 절규했다. 

이에 발전비정규직연대 노동자들은 △고 김충현 노동자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할 것 △2인 1조 작업 의무화와 안전장비 전면 설치 등 실효적 안전대책 수립 △한전KPS 하청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 △발전소 폐쇄에 따른 노동자 총고용 전면 보장을 핵심 요구로 내걸고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강성규 공공기관사업본부장은  "우리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발전소에서 죽음의 사슬을 끊기 위해,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 불안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 죽음이 철저히 조사되고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 오늘 선언한다"면서 "올 8월 전력피크 시기에 전국의 발전소를 멈춰 세우겠다, 이제 더 이상 죽지 않겠다,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 불안에 시달리지 않겠다, 김용균 특조위의 약속대로 정규직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올여름 우리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힘 주어 말했다. 

바리케이트 앞, 대통령실의 요구안 수령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참세상
노동자들을 가로막은 경찰의 바리케이드. 참세상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무리하고 요구안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용산 대통령실로 향했다. 그러나 경찰은 '미신고 행진'을 하고 있다며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노동자들을 가로막고, 민원실에 요구안을 접수하고 가라는 말만 거듭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 집행위원장은 바리케이드 앞에서 경찰 관계자에게 "삼천포, 하동, 강원, 태안 등 전국에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안을 전달하기 위해 새벽부터 이곳에 올라왔다"면서 "이들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이 대통령실에서 직접 나와서 받지도 않을 만큼 가벼운 것인가, 현장 당사자들이 찾아왔는데 요구안조차도 받으러 나오지 않는 것이 이재명 정부인가, 정말 실망했다"고 소리 높였다. 

또한 "이재명 정부가 얘기하는 민생이 진짜 이런 민생인지 몰랐다, 고 김충현 노동자가 사망한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인선 등을 핑계로 정부의 관계자 누구 하나 조문도 오지 않았다"면서 "이 죽음을 밝히고, 더 이상 일터에서 죽지 않고, 김용균이 죽은 자리에서 김충현이 죽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서, 꼭 죽지 않는 노동 현장을 우리 노동자 힘으로 만들겠다고, 정부를 못 믿겠다고, 이재명 대통령도 왼쪽 팔에 산재를 당하셨지만, 정말로 노동자의 아픔을 이야기하신다면 우리하고 만나야 한다고, 그렇게 꼭 전해달라, 그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추라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민원실에 휴지조각처럼 쌓여가는 봉투로 요구안을 전달할 수 없다"면서 "직접 나오실 때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을 당당하게 말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돌아섰다. 

발전비정규직연대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대통령실에 수차례 요구안 수령을 타진했으나, 어떠한 답신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9일에는 서울역 인근에서 추모문화제를 마치고 용산 대통령실로 행진해온 노동자들의 요구안을 강훈식 비서실장이 직접 나와 수령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 이 정부에서만큼은 노동자가 더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으나, 이날 기자회견에는 대통령실 관계자 누구도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 요구안 수령 이후, 대통령실의 문제 해결을 위한 공식 입장도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한편, 이날 오후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고를 당했다. 오후 1시 32분경 태안화력발전소 제2옥내 저탄장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가 전기 케이블 작업을 하던 중 쓰러진 것이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노동자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호흡은 되찾았으나 아직 의식은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 역시 고 김충현 씨와 같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옥내 저탄장 공사를 하청받은 HD현대삼호중공업의 하도급 업체인 이엔티파워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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