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늘 사람이 문제다. 본인의 입맛대로 통계를 만드는 것도, 그리고 통계를 해석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같은 통계를 놓고 정반대의 주장이 나올 수도 있는 것, 그게 바로 통계다.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 등장한 어떤 통계들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통계에 대한 ‘분석’이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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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최민희) 주최로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방안 마련 토론회>가 열렸다. 말도 말고 탈도 많았던 ‘방송3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다수결로 밀어붙였던 민주당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에 눈을 돌렸다. 이미 시간표도 나왔다. 추석 전 법안을 처리(25일)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여전히 법안의 얼개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려는 셈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셔 나온 통계들
이날 토론회 발제는 채영길 교수(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가 맡았다. 채영길 교수는 발제문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서 가장 큰 논란으로 제기되는 정치·경제 권력자에 대한 위축효과(Chilling effect)는 실제로는 크지 않을 수 있음을 추정케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근거로 제기한 게 통계들이다.
채영길 교수는 언론중재위원회가 공개한 ①언론 관련 소송 169건(2023년)의 원고 유형을 분석한 결과 –단체 50건(29.6%), 개인 119건(70.4%)-를 바탕으로 ②공적인물 유형별 청구비율을 대입해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런 방식이다. 공적인물(개인)이 언론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중 정치인은 17건, 공직자는 13건이다. 채영길 교수는 ①번의 표에서 개인이 제기한 119건으로 계산, 언론에 소송을 제기한 개인 중 정치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0.05%, 공직자는 7.69%라고 도출한다. 그러고는 “이 둘을 합치면 17.74%”라면서 “공적 인물의 손해배상 청구가 예상만큼 높은 비율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정치인과 공직자의 비율이 17.74%라는 수치를 우리는 ‘밖에’로 해석해야 할까, 아니면 ‘이나’로 읽어야 할까. 언론중재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개인 청구인 119건 중 일반인은 39.1%, 공인은 31.3%였다. 채영길 교수의 발제문에도 명확히 표기된 이 수치가 곧 답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이후 단추도 모두 어긋나게 된다. 채영길 교수의 발제문은 그 모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채영길 교수는 연이어 ③청구인 유형별 손해배상 승소율 및 인용액과 ④공적인물의 손해배상 승소율 및 인용액 표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다.


위 통계에 따르면, 일반인이 언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승소율은 53.9%였다. 반면 공적 인물은 31.9%, 기업은 26.9%로 그보다 낮았다. 공적 인물만 따로 떼어 보면, 정치인의 승소율은 26.1%, 공직자는 26.7%에 그쳤다.
채영길 교수는 이를 두고 “정치인의 손해배상 승소율이 가장 낮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라면서 “권력자일수록 언론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일반 시민보다 불리한 결과를 마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결국 정치·경제 권력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의 비판을 위축시킨다는 주장은 분석 자료와 판례에 따르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적시했다. 한마디로 ‘정치·경제 권력자에 의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의 비판을 위축시킨다는 주장은 틀렸다’라는 말이다.
틀린 건 누구인가. 이 통계는 오히려 정반대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권력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이유가 꼭 승소와 금전적 보상에 있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통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괴롭힘.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인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수 있다. 언론이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해왔던 이유다. 일반인들의 승소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시간과 비용에 비해 얻을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승소 가능성이 확실하거나 억울함이 명백한 경우에만 소송을 제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이렇게 보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지 않을까.
졸지에 스카이데일리 사태를 키워온 게 돼 버렸다
“한국사회에서 언론자유 담론이 갖는 정치적 성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를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2021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언론자유담론은 순수한 자유담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언론개혁 담론 자체를 사회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봉쇄담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중략)… 문제는 이러한 언론개혁의 좌절이 단순한 입법 실패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론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전략적 봉쇄담론은 언론 권력을 은폐하고 왜곡시키면서 한국 사회에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의 사례는 극단적인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한국 언론권력과 지배적 언론자유담론의 키워온 필연적 사태이다.”_채영길 교수 발제문 중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위 발제문에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반대했던 입장이, 졸지에 순수한 ‘언론자유’가 아닌 것이 돼 버렸다. ‘정치적’ 성격을 갖고 손해배상액 현실화를 비롯한 여러 언론개혁을 봉쇄하고 있는 게 돼 버렸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윤석열 내란 당시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 기사로 극우 세력의 땔감을 제공한 스카이데일리를 키운 데 일조한 게 돼 버렸다.
왜곡이다. 당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반대했던 이들 역시 언론 피해자가 충분한 손해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정정보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 반대한 사람도 없었다. 문제는 방식이었다. ‘징벌적 배상제도’가 도입될 경우, 소규모 독립언론에도 똑같이 적용돼 공익적 보도가 위축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위자료액 현실화’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더불어 언론의 감시 기능을 옥죄어온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폐지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었다.
이제 공은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 과연 이날 토론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가 제시됐는가.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의견수렴이 이뤄졌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를 바탕으로 추석 전 「언론중재법」 개정을 밀어붙여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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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