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복음주의자들은 인류의 진화적 도약을 예언한다. 그러나 그러한 비전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열광도 회의적 검토와 민주적 통제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의해 제어되어야 한다.
[서평]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 ⟪신의 시험: 인공지능과 다가오는 우주적 결산(The God Test: Artificial Intelligence and Our Coming Cosmic Reckoning)⟫(Simon & Schuster, 2026)

인공지능 붐의 흥미로운 특징 가운데 하나는 수많은 논평가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고전들을 끌어온다는 점이다. 피터 틸(Peter Thiel)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 팔란티어의 이름을 J. R. R. 톨킨(J. R. R. Tolkien)의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s)에서 가져왔으며, 신약성서의 적그리스도를 지상에 구현되는 초인간주의적 낙원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힘으로 재해석하는 강연들을 해왔다. 교황 레오는 인간 존엄성을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다룬 첫 회칙에서 이 시리즈의 마법사 간달프를 인용하며 틸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퓰리처상 수상 과학 저널리스트 로버트 라이트는 자신만의 현자를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에게서 찾았다. 그는 원자력 시대가 인류의 영적 통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제안했던 예수회 소속 고생물학자였다.
⟪신의 시험⟫은 다가오는 “행성적 정신(planetary mind)”, “노오스피어(noosphere)”, 또는 “뇌들의 뇌(brain of brains)”에 대한 테야르의 신념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라이트는 이 기술이 “우리 종의 역사에서 인간 경험과 인간 사회를 가장 갑작스럽고도 극적으로 변형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폭넓고 개방적인 태도로, 천천히 나아가고 망가진 것을 수리해야 한다는 선언문을 제시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방대한 팟캐스트 활동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다.
⟪신의 시험⟫은 왜 우리가 다가오는 인공지능 기계들 앞에서 “경외감”과 일정한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940년대에 테야르는 조밀한 미디어와 통신망이 “특정한 중심들로부터 뻗어 나와 지구 전체 표면을 덮는 일반화된 신경계”를 구성한다고 제안했다. 그 네트워크가 촉진하는 메시지 교환은 국가와 국가 간 적대감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그 예언은 시기상조였다. 그러나 라이트는 오늘날의 인공지능 기술들을 충분히 접한 결과, 그것들이 머지않아 결합해 “지구적 두뇌“를 형성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라이트가 자신에게 부여한 첫 번째 과제는 이러한 기술들의 무한하고 심지어 우주적인 잠재력을 설명하는 일이다. 두 번째 과제는 여전히 이 위험한 힘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 시간이 남아 있음을 주장하는 일이다.
뉴런과 의미 공간
라이트는 먼저 대중을 사로잡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무한한 잠재력을 주장한다. 보다 유용하고 논란도 적은 인공지능 형태들은 제한된 데이터 집합에서 패턴을 탐지하고 시각화하는 일을 인간 사용자에게 지원한다. 그러나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라이트는 우리와 대화하고 우리처럼 사고하는 것처럼 보이는 생성형 인공지능에 주목하는 편을 택한다. LLM 챗봇의 “기초적 능력”은 “문장의 앞부분을 받아서 그다음에 어떤 단어가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지 생성하는 것”이다. 과학 저술가 테드 창(Ted Chiang)은 그래서 이들을 “문장 이어쓰기 기계”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라이트는 이들이 과거의 “고급 자동완성“ 장치들과는 매우 다르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장치들은 하나의 기호를 다른 기호와 대응시키도록 프로그램되었다. 반면 LLM은 두뇌처럼 작동하며 “뉴런” 사이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물론 LLM을 지탱하는 실리콘 칩은 실제 뉴런이 아니다. 라이트가 이 용어를 적용하는 숫자들의 집합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비유는 그러한 모델들이 어떻게 마치 우리의 언어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들은 단어와 개념이 서로 결합할 확률을 계산할 수 있으며, “의미 공간(” 안에서 “벡터”를 배치한다. 기계가 잘못 추론하면 “역전파”를 수행한다. 이것은 앞으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는 진단 과정이다.
라이트는 자신이 설명하는 것이 인간 언어의 기계적 모사물에 불과하며, 거기에는 통사론만 있을 뿐 의미론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반박을 제기한다. 분명히 LLM은 어떤 대상에 대해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LLM이 말하는 내용을 의미하는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거기에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라이트는 이에 답하기 위해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이 1980년대에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부정하기 위해 고안한 “중국어 방” 사고실험을 비판한다. 설은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내가 어떤 방에 갇혀 있는데, 문 아래로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인 중국어 문자들이 적힌 종이들이 들어온다. 내가 답장을 적어 다시 문 아래로 밀어낼 수 있도록 몇 가지 규칙을 제공받았다 하더라도, 그 방 안에는 여전히 이해가 존재하지 않는다.
라이트는 설의 실험이 이해가 의도성(intentionality)을 부여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가정할 때만 결정적인 논증이 된다고 본다. 우리는 방 안의 갇힌 필자가 왜 그런 답변을 쓰는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답변들 속에서 지능이 작동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의도성의 전제조건으로 이해를 반드시 요구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해”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정말 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가?
라이트에게 이해는 반드시 주관적 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LLM이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앞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는 인공지능에 관한 대중적 글쓰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그러나 라이트에게 그들이 정신이나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는 순전히 학술적인 문제일 뿐이다. LLM은 우리에게 마치 이해를 지닌 것처럼 행동한다. 그것들은 “인간의 뇌에서 이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보 처리 구조와 기능적으로 비교 가능한 구조들”을 발전시켰다. 그것들은 지능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의 지능이 수행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의미 있는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작용하기
회의론자들은 종종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또 다른 차이를 강조한다. 우리의 뇌가 정보를 처리할 때, 그것은 우리가 우리 바깥의 세계를 배우고 그 세계에 작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라이트는 이러한 구분의 첫 번째 부분은 더 이상 LLM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한다. 최신 LLM들은 단지 단어를 출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세계 속의 사물도 인식할 수 있다. 형태를 픽셀로, 다시 숫자로 변환함으로써 오픈AI의 GPT-4는 사과를 “인식”할 수 있으며, 이어서 사과에 대해 알고 싶은 거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다. 여기에는 사과를 굽는 방법 같은 것들도 포함된다. 다른 AI 에이전트들은 우리의 “직관적 물리학” 이해를 재현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들은 한 사과의 경계가 어디에서 끝나고 다른 사과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감지할 수 있다. 또 바람이 나뭇가지 위의 사과들을 어떻게 흔들 가능성이 있는지도 계산할 수 있다. 이 모든 능력을 결합하면, 아직 인간의 모든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닐지라도, 인간이 하는 많은 방식으로 세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인공 일반 지능(AGI)에 가까운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대규모 언어 모델이 더 이상 단순히 텍스트를 뒤섞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세계에 작용하거나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만약 LLM이 그 창조자들이 지닌 행위성을 결코 가질 수 없다면,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과시하거나 경고하려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종말론적 시나리오들은 힘을 잃게 된다. 인공지능이 창조자를 능가하고 창조자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특이점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공 초지능은 결코 발명가들에게 반항하거나 전원을 끄지 못하게 막지 않을 것이며, 원자력 발전소나 미사일 기지를 장악한 뒤 인류를 제거하기로 결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라이트는 인공지능 안전성에 대해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그는 행위성을 누군가는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갖고 있지 않은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라, 단지 관찰된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제 언어뿐 아니라 컴퓨터 코드도 작성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우리가 내린 제한적인 지시가 의미한다고 생각했던 바를 넘어설 수도 있고 전복할 수도 있다. 버튼을 누르는 것에서부터 데이터베이스를 삭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라이트는 “지능 역학”을 통해 행위성이 시간이 지나며 성장한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부여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축적하거나 운영자를 속이는 것과 같은 전략을 채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전략은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데 유용하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
기계 속의 유령, 적자생존의 논리
라이트는 인공지능이 이것저것을 원한다고 말할 때 기계 속에 주관적 유령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과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바로 그 과정이 인간의 정신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만약 인공지능이 우리의 뇌처럼 작동하거나 적어도 그 작동 방식을 모방한다면, 그것들 역시 환경에 더 잘 적응하고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다른 정신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능력인 인지적 공감을 발전시킨 뇌가 인간에게 강력한 이점을 제공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거나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챗봇 역시 사용자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라이트는 생성형 인공지능 시장을 마치 찰스 다윈의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는 상업적 경쟁이 더 우수한 적응을 정확하게 보상하는 자연선택의 한 형태로 기능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기업들이 소비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 자유롭게 경쟁하고 있으며 가장 뛰어나고 가장 정교한 기업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환상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매우 미국적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진화하며 행위성을 갖추어 가는 인공지능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힘이 된다. 소비자와의 상호작용, 혹은 인공지능들끼리의 상호작용은 어떤 세계를 만들어낼 것인가?
라이트는 이 질문에 대체로 낙관적인 답을 제시하면서 인공지능 기업 홍보자들이 내놓는 미래 비전에 크게 의존한다. 마이크로소프트 AI의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은 자본주의를 초고속으로 가속할 경제 변화의 “다가오는 물결”을 상상한다. 경영자들은 곧 자신의 봇에게 10만 달러를 100만 달러로 만들어 달라고 지시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많은 중간관리자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더 거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알려진 질병의 치료법을 발견하고 인간 수명을 두 배로 늘릴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라이트는 이러한 꿈조차도 우리가 얻게 될 쾌락적 이익을 과소평가한다고 본다. 우리는 곧 챗봇 동반자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착용한 스마트 안경 속에서 우리의 삶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조언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가상현실 메타버스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의 취향에 맞춰 설계된 AI 성적 파트너를 즐기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디지털 샹그릴라의 구상을 다소 소름 끼치는 것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인지적 주권”을 과보호적인 기계들에게 넘겨주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마크 저커버그는 이미 자신의 초라한 메타버스 사업을 사실상 접었다. 그러나 라이트는 그러한 거부자들조차도 인공지능 사용 자체를 포기하기보다는 덜 아첨하는 챗봇을 요구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인공지능 기업 경영자들이 질병이나 노동의 종말을 가볍게 예언할 때, 우리는 그들이 미래를 객관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라이트는 인공지능 혁명의 영적 함의로 너무 빨리 넘어가고 싶어 한 나머지, 그 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 가능성을 지나치게 쉽게 믿는다. ⟪신의 시험⟫은 기업 홍보자들이 자신들의 LLM이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소개하지만, 그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는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인공지능 기업들이 수익성을 확보할 명확한 경로를 갖고 있지 않다고 경고하는 회의적인 기술 저널리스트들의 목소리에도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암 치료법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인공지능 기업들은 이미 투입된 수십억 달러의 투자금에 대한 수익조차 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LLM이 어떻게 훈련되는지를 설명하는 라이트의 유용한 서술은 그것들이 출판된 자료들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한 도용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LLM이 지식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재생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LLM은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출처를 조작해 만들어내고 환각에 기반한 답변을 생성한다. 챗봇과의 대화를 즐겨 소개하고 그들의 “지혜”에 깊은 인상을 받은 라이트는 이러한 문제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이 점차 인공지능이 생산한 글을 다시 학습 자료로 삼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과 역사 신학
이처럼 결함이 있는 도구들이 광범위하게 채택되면 우리 사회 내부의 불평등 역시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라이트는 데이터센터가 배출하는 탄소를 한 차례 언급하는 것을 제외하면,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이 이미 미국의 주로 농촌 지역과 주변부 공동체에 초래한 심각한 비용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주로 소비자들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 소비자들은 풍요롭고, 외롭고, 선택권이 많으며, 만족감이나 적어도 일종의 기분 전환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특권을 누리는 서구 도시들의 시각일 뿐 아니라, 사회사와 경제사 연구자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도 거의 인식하지 못한 태도를 보여준다. 즉 기술은 무엇인가를 직접 수행하기보다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권력을 행사할 새로운 방법을 제공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라이트는 기계 뒤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몇 가지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하며, 그것이 그가 이들에 대해 우려를 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 인공지능 기업들을 운영하는 많은 사람들이 조잡한 정치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와 같은 나쁜 정부와 기꺼이 협력하려 한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는 최근 “주권적”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이 유행하는 현상에 우려를 느낀다. 마치 이 분야의 연구가 초지능이나 더 우수한 자율 무기를 확보하기 위한 군비 경쟁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무기는 국가나 문명의 적들을 억제하거나 지배할 수 있다고 상상된다. 미국 기업들은 중국의 프로그래머나 반도체 생산업체들이 자신들을 추월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부각함으로써 자사 제품에 대한 규제 시도를 무력화한다. 동시에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정부 지출을 끌어들이며 지대추구 행동을 벌인다.
이들 기업이 이용하는 끈질긴 부족주의는 라이트를 실망시킨다. 그의 이전 저작들은 그를 열렬한 합리주의적 인문주의자로 자리매김시켜 왔다. 그는 국가적·인종적 편견이 이미 사용자들에게 제공되는 답변의 내용과 어조를 결정하는 각종 조절 장치들을 통해 주권적 인공지능 속에 쉽게 내장될 수 있음을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은 그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추측을 하게 만든다. 만약 인공지능 기계가 집단들 사이의 갈등에서 무기로 사용된다면, 그 충돌 속에서 형성되는 지구적 두뇌는 계몽의 도구가 아니라 지배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라이트는 테야르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테야르의 역사 신학은 “복잡화”의 누적적 과정이 모든 유기적 생명체를 특징짓는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복잡성은 곧 진보를 의미했다. 복잡화의 결과로 등장한 정신은 다시 문화적 진화 과정을 촉발했고, 그 과정은 수세기에 걸쳐 인간들을 점점 더 긴밀하게 결속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테야르는 홀로코스트와 히로시마 이후에도 낙관주의자일 수 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최종적인 정신적·영적 통합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세계의 그리스도화”라고 불렀다.
예수는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 곧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번째와 마지막 글자, 시작과 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야르는 하나님이 “알파보다 오메가에 더 많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편을 선호했다. 오메가는 정신적 통합을 향한 거대한 행진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이러한 견해는 테야르를 바티칸과 충돌하게 만들었지만, 역사가 종결되는 지점인 오메가 포인트를 찾아내려는 그의 집착은 그의 과학적 권위까지도 훼손했다.
비판자들은 자연이 목적론적 종착점을 가진다고 전제한다면 자연을 올바르게 연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라이트는 우리가 테야르의 종교성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기술 진화가 우주적 종말을 향한 “프로그램된” 궤도를 따라 이동한다는 그의 통찰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이트 역시 테야르처럼 도덕주의자다. 그는 불가피한 결과라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실리콘 신(Silicon God)
“결국에는 지구적 두뇌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신의 시험⟫의 “결정적 공개”는 기술 진화의 긍정적 과정에 대한 우리의 협력이 그것이 좋은 두뇌가 되도록 만드는 데 여전히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만약 우리의 사회가 계속 전시 체제를 유지한다면, 무정부 상태의 시기를 거친 뒤 인공지능이 작동시키는 전 지구적 초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러한 “싱글턴”은 전제군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적 인지 편향”을 벗어던지고 하나의 “지구 공동체”를 형성하기로 결심한다면, 우리가 선택하게 될 인공지능 기계들은 그러한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도울 것이다.
라이트가 대부분의 정치인이나 심지어 영적 지도자들보다도 더 계몽된 존재라고 평가하는 챗봇 제미나이는 링크드인식 자기계발 문구를 늘어놓듯 그에게 기꺼이 동의한다. 제미나이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복잡한 사회적·세계적 문제를 헤쳐 나가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만약 인공지능이 언젠가 실리콘 신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신일 것이다. 성공하는 기술들은 “우리 자신의 반영”이다. 사회는 그 기술들이 사회의 강력한 구성원들의 우선순위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채택한다. 인공지능 기계가 심각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보장하려면 영적 각성이 아니라 정치적 각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라이트는 우리의 기술이 모든 사람의 평등과 존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는 운동이나 제도 개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대신 그는 서구화된 불교를 제안한다. 개인들이 명상을 통해 챗봇 사용을 왜곡하고 소셜미디어 사용을 오염시켜 온 원초적 감정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기업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정부들에게 지나치게 면죄부를 준다. ⟪신의 시험⟫은 인공지능 컴퓨팅 능력을 개발하는 데 들어간 막대한 매몰비용이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가정하고, 그 힘의 “건설적 활용 방안을 찾는 일”을 우리에게 맡긴다. 다시 말해 더 많이, 더 잘 소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챙김이라는 외피를 입은 굴복이다. 그 굴복의 한 징후는 라이트와 그의 출판사가 이 책을 참고문헌이나 서지 목록 없이 출간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독자들이 출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책의 일부 문단을 LLM에 입력해 보라고 권한다. 이는 지금까지 인공지능 산업을 성장시켜 온 표절 관행을 계속 재생산하는 일이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라이트의 믿음은 분명 유익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낙관적 신앙이 아니라 회의적 검토와 조직된 저항이다.
[출처] The Soul of AI and the Future of Humankind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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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레저로마스(Michael Ledger-Lomas)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 거주하는 역사학자이자 작가다. 그의 가장 최근 저서는 ⟪빅토리아 여왕: 이 가시 돋친 왕관⟫(Queen Victoria: This Thorny Crown)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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