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사기꾼: 트럼프주의의 설계자, 노먼 빈센트 필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은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출세지향적 자기애주의자들의 설계도를 만들어냈다. 그들 가운데는 젊은 시절의 도널드 트럼프도 포함된다.

도널드 트럼프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누리는 인기는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그는 그들이나 그들의 신앙 체계를 존중하지 않으며,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기독교적 가치를 체현하지도 않는다. 또한 조지 W. 부시가 빌리 그레이엄과 연관되었던 것처럼 특별히 좋아하는 복음주의 설교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에게는 평생 가장 좋아한 목사가 한 명 있었다. 그는 2015년 그 목사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실제 삶의 상황들, 현대의 상황들을 설교에 끌어들였다. 그래서 하루 종일 그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교회를 떠날 때면 설교가 끝났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은 트럼프의 첫 번째 결혼식을 집례했고, 트럼프를 정직함과 겸손함을 깊이 지닌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노먼 빈센트 필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조차 그의 사상에는 영향을 받아왔다. 그의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인 1952년작 ⟪적극적 사고방식의 힘⟫(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은 성공적이고 더 충만한 삶을 사는 방법에 관한 그의 전매특허식 진부한 격언들을 수백만 미국인들에게 소개했다. “과거의 실수는 잊고 미래의 더 큰 성취를 향해 나아가라.” 이는 전형적인 예였다. “마음이 구상하고 믿을 수 있으며, 가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당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행복할 것인가, 불행할 것인가. 그저 행복하기를 선택하라.”

전후 미국은 필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학계의 심리학자들, 신학자들, 사회학자들이 아무리 그를 비웃고 비판해도 그의 성공에는 전혀 흠집을 내지 못했다.

필의 가볍고 낙관적인 긍정적 사고 프로그램은 트럼프와 그의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좋아할 만한 종류의 것으로 들린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필의 듣기 좋은 상투적 설교에는 언제나 이면이 존재했다. 그것은 돈이나 존경, 성취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삶에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특히 매력적이었다. 그들은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단지 끈기 있게 밀고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핵심은 부정적인 생각을 무시하고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자기계발 저작들은 대체로 정치 문제를 외면하려 했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그가 생각한 세력들을 제거하는 데 거의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무신론자들, 공산주의자들, 뉴딜 민주당원들, 자신을 비판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 그리고 사실상 사회정의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영광스러운 국가적 과거를 끊임없이 소환했다. 이것은 극우 사상과 파시즘적 사고방식의 전형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필은 오하이오에서 태어났고, 광란의 1920년대가 한창이던 1924년에 감리교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5년 뒤 대공황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지만, 필은 당시의 사회복음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감리교 지도부 내부에서 진행되던 자유주의적 전환도 거부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신사상 운동이었다. 이는 기독교과학파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는 사조로, 질병을 포함한 모든 장애물을 사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필은 이러한 틀의 일부 요소들을 재구성해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시키는 실천적기독교를 만들어 냈다. 라디오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그는 1935년부터 NBC에서 주간 프로그램 <삶의 기술>(The Art of Living)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1989년까지 이어졌다. 그의 초기 저서 몇 권은 판매 실적이 좋지 않았지만, 아내가 몰래 ⟪적극적 사고방식의 힘⟫(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 원고를 한 편집자에게 보냈고, 그 결과 이 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이 성공으로 필 부부는 부자가 되었다.

이 책의 격언과 일화들은 성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필은 성경을 특히 강력한 치료적 가치를 지닌 책이라고 묘사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하워드 L. 헌트(Howard L. Hunt), J. C. 페니(J. C. Penney), 월터 티글(Walter Teagle) 같은 저명한 기업인들과 교류했던 차세대 번영복음 전도사들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들 기업인 가운데 다수는 스스로도 강경 보수주의자이거나 심지어 극우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사업가들은 필의 철학에서도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긍정적 사고와 기도의 힘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대표적 사례로 등장한다.

필에게 성공은 언제나 규칙적인 기도로 귀결되었다. 종교도 결국 사람들에게 팔아야 하는 것이라면, 왜 사람들이 삶에서 원하는 물질적 성취와 함께 포장하지 않겠는가? 그의 메시지는 노골적으로 개인주의적이었다. ⟪적극적 사고방식의 힘⟫에 등장하는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사회나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돌려주지 않는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이나 노동계급이 사실상 등장하지 않는 일종의 사회적 기독교였다.

1960년대 초 맨해튼의 마블 칼리지에이트 교회에서 십 대의 도널드 트럼프를 만났을 때, 필은 이미 보수 진영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는 1960년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출마를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전국적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미국 문화가 위태롭다. 케네디가 당선되더라도 미국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예전의 미국이 아닐 것이다.” 그는 가톨릭보다 무신론자를 더욱 싫어했다. 그는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사회 제도의 진정한 적이라고 말했다. 거센 역풍이 불자 그는 반가톨릭 발언을 철회해야 했다. 그러나 뉴딜에 대한 그의 맹렬한 공격을 누그러뜨리라는 압력은 받지 않았다. 그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자신이 의장을 맡았던 헌정질서 수호 위원회를 시작으로 뉴딜을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필은 평생 복지국가를 비판하는 공개적 논객으로 남았으며, 공화당의 충실한 동맹자 역할을 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리처드 닉슨이 궁지에 몰렸을 때도 필은 저명한 지지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의회에 대통령을 괴롭히지 말고 수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필이 오랫동안 대중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 아는 감각과, 공격적인 사상을 듣기 좋은 수사로 포장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1943년 그가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 엘리자베스 딜링(Elizabeth Dilling)과 같은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사과하며 그의 견해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조합을 공산주의자들의 도구라고 비판했지만, 노동자 친화적으로 보이기 위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상화한 것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살아가던 개척 시대 미국이었다. 그가 상상한 미국과 미국 역사는 철저한 재구성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발행한 잡지 <가이드포스츠>(Guideposts)하나님이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하며, 이 위대한 국가는 하나님과 그분의 법에 대한 믿음 위에 세워졌다는 위대한 사실을 가르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이 지녔던 복잡하고 다양한 종교적 배경은 지워졌다. 그 자리는 기독교가 국가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라는 관념이 대신 차지했다.

필은 20세기 미국의 자기계발 문화와 극우를 연결하는 고리를 만든 유일한 인물이 아니었다. ⟪깨어나 살아라!(Wake Up and Live!)의 저자 도로시아 브랜디(Dorothea Brande)는 미국의 저명한 파시스트였던 수어드 콜린스(Seward Collins)와 결혼했다. 필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의지력 자체에 거의 신비주의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을 문자 그대로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해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 조던 피터슨(Jordan Peterson) 같은 인물들의 주장 속에서 더욱 종말론적인 형태로 살아남아 있다. 그의 자기계발 메시지는 진보적 정체성 정치, 이른바 ‘워크(woke) 문화’와 자유주의 전반에 대한 비판과 결합되어 있다.

트럼프는 필의 가장 나쁜 사상들을 완전히 흡수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는 자기성찰이나 자기비판의 감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란을 공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것이 과연 나쁜 생각일 수 있는지 잠시 멈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실수를 인정할 능력이 없으며, 어려움 자체를 인정하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최근 그가 미국인들의 경제적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무심코 말한 일도 그 사례다. 궁지에 몰리면 그는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성공을 끊임없이 기대하고 모든 부정적인 요소를 부정하는 태도는 결국 원한과 분노를 만들어내는 공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한은 극우적·반동적 사고의 중요한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다. 트럼프는 이런 태도를 필에게서 배웠을 수도 있다. 필은 사소한 불만이나 의견 충돌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개입하곤 했다. 엘리너 루스벨트가 금주법은 젊은이들이 책임감 있게 술을 마시는 법을 배울 기회를 빼앗았기 때문에 실수였다고 말하자, 필은 즉각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나는 공개적으로 한 여성을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차기 퍼스트레이디가 될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그런 사람이 일어나서 모든 소녀가 어린 시절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럼주를 마실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의 미국에 대한 지식은 허드슨강 서쪽으로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미국인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 부잣집 딸이 이런 발언을 하고 있다. 그의 남편이 그보다 훨씬 낫다고도 말할 수 없다.”

파시즘이 성조기를 두르고 십자가를 들고 미국에 올 것이라는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의 유명한 말은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것은 또한 기독교와 결합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으로 포장되어야 한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만 하면 좋은 것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영적 판매 전략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미국의 전통에서 자라나야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WASP)식 예절과 결합해야 했다.

필은 공허한 탐욕, 자기과시, 외국인 혐오, 편협함의 문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는 쉽게 원한으로 빠져들며 실제든 상상이든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 필은 생전에 언론과 다른 성직자들로부터 광범위한 비판을 받았다. 일부 감리교인들은 ⟪적극적 사고방식의 힘⟫이 거의 이단에 가깝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가장 자주 제기된 비판 가운데 하나는 필의 가르침이 자기애적 성향을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작가 에드먼드 풀러(Edmund Fuller)는 필의 가르침이 병들고, 적응하지 못하고, 불행하거나,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을 오도하며, 종종 환멸을 안겨주고, 그들로부터 기독교의 진정한 현실을 가려 버린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보다 이 비판을 더 잘 입증하는 사례가 또 있을까?

[출처Confidence Man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젭 라슨(Zeb Larson)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역사학자다. 그는 2019년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내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연구했다. 그는 사회운동, 역사, 음식, 음악에 관해 글을 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