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역사의식이 없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역사의식이 없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역사의식을 기준으로 대통령후보를 결정해서 함께 가기를 바라며 쓴 것이다.

[논평] 민주노총, 정말 비리 사슬 끊을 의지 있나

[논평] 민주노총, 정말 비리 사슬 끊을 의지 있나

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은 정말 이런 험한 꼴 더 안 보고 싶다면, 진정 '비리 수사', '구속', '사과'의 악순환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 싶다면, 스스로 제도적인 것을 포함한 실질적인 혁신 조치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FIFA refuse Corea.

FIFA refuse Corea.

네트워크 중립성이라는 말이 잇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떠한 이유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한 권리가 차별되어서는 안된다.” 라는 원칙이다. 대표적인 예로 인터넷 종량제나, 접속순위나 정보의 통제 등을 말할수 있다. 현재 네트워크 중립성에 사항은 야후,이베이,구글 등 인터넷 사업자들과 인권단체의 지지를 받고 잇으며, 5월에 미국상원에서 네트워크 중립성에 관한 법률 상정이 통과되엇다. www(월드와이즈맵)의 창시자인 버너스 리 역시 네트워크 중립성에 관해서 통신업체들의 차별화 방안에 대해 “미국의 어떤 업체들은 네트워크 중립성을 훼손하려 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이것이 룰이다” 라며 네트워크 중립성을 훼손하려는 불순한 일부 통신업체의 움직임에 일침을 가했다. 새삼스럽게 월드컵이야기에 쌩뚱맞게 웬 네트워크 중립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냐고 하실지 모르나 나를 비롯한 우리 대한민국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피파에의해 피파 싸이트 접속 차단을 당했다. 나 역시 피파게시판에 접속을 해보려고 시도를 해보았으나 피파 홈페이지 자체가 한국아이피 자체가 차단되어 있어 몇일내내 접속을 하지 못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와 한국 국민은 피파로부터 네트워크 중립성을 침해받았다. 또한 피파회원국의 국민으로서의 권리 역시 침해받앗다. 나는 피파 회원국의 국민의 한사람의으로서 피파홈페이지에 접속해 현재 축구에 관한 내용을 열람할수도 있으며, 피파의 행사에 대해

[평화를 택하라]대추리의 빕집을 꾸미자.

[평화를 택하라]대추리의 빕집을 꾸미자.

다 같이 평택에 가서 빈집을 꾸며요.   7월에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 강제철거가 시작될 거 같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요. 가서 빈집을 꾸며요. 그리고 강제철거를 막아요.   I’ll light the fire You place the flowers in the vase That you bought today Staring at the fire For hours and hours While I listen to you Play your love songs Allnight long for me Only for me 난 불을 지피고, 당신은 오늘 사 온 꽃들을 꽃병에 꽂도록 하세요. 몇 시간이고,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날 위해 당신이 연주하는 사랑 노래를 들을거에요. 나만을 위한 사랑 노래를.. Come to me now And rest your head for just five minutes Everything is done 모든 일이 끝났으니,이제 내 곁으로 와서 5분만이라도 머리를 기대어 보세요 Such a cozy room The windows are illuminated By the evening sunshine through them Fiery gems for you Only for you Our house is a very, very, very fine house With two cats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후 3년, 내 이야기 2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후 3년, 내 이야기 2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 최지영 둘. 2차가해자 박장근, 대표되다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당시 피해자들은 분노를 경험하지도, 표현하지도, 그리고 행동에 옮기지도 못했다. 어쩌면 분노할 권리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해자에게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의 분노를 부정하고 왜곡시켰다. 그러나 치유과정이 진행되면서 분노의 대상을 정확히 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했던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다음 명확하게 가해자에게 책임과 분노를 돌렸다. 그리고 정서적인 지지가 함께 곁들여질 때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폭력피해 치유의 관점과 방법론⌟ 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 노힘 여성활동가들과 함께 여성세미나를 한다. 세미나 장소를 정하며 그녀들은 나를 배려해 늘 노힘 사무실을 제외했다. 나는 노힘 사무실 근처에도 가기 싫어했다. 그리고 특정인물 몇몇에 대해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노힘 사무실에 들락거리는 게 괜찮아졌다. 왜 그럴까. 무슨 변화일까. 대표가 바뀌었다. 2차가해자 박장근에서 내 사건을 지지했던 장혜경 집행부로. 단지 그 이유였다. 나도 몰랐다. 나는 노힘을 탈퇴하며 노힘에 대한 내 상처가 김원호 성폭력사건만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만약 내가 탈퇴하지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후 3년, 내 이야기 1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후 3년, 내 이야기 1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 최지영 하나. 김원호 사법처리 2003년 3월. 오래전 일을 다시 들춰낸다. 노동부장으로 상근활동을 했지만 늘 모자란 내 역량에 자괴감을 갖고 활동에 적응하지 못했던 난 결국 상근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활동을 정리, 잠수했다. 6개월 만에 조직국장이었던 김원호를 만났고 난 그에게 나의 힘겨움을 토로하며 조직탈퇴의사를 밝혔다. 그날 정신없이 술을 마셨고 정신없이 울었다. 그리고 만취한 난 성폭행 당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자에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에, 활동을 정리한 이후 아무도 안만나다 운동을 정리하겠다는 고민을 얘기하려고 만난 자리였기에, 그만큼 신뢰했던 선배였기에 그자가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김원호가.. 그 상황의 내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인간적 신뢰가 깨지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성폭력 사건의 70%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고, 운동권에선 그 빈도가 더 높다는 걸,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는 걸,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왜곡된 성인식이 내면화된 것이라는 걸 머리론 이해했지만 내 사건으로 돌아오면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게 04년, 05년을 보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노힘 상근시절 그나마 따뜻하게 배려해줬던 그자의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후 3년, 내 이야기’를 올리며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후 3년, 내 이야기’를 올리며

이 글은 내가 노동자의 힘 기관지를 통해 기고하고 있는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입니다. 성폭행사건입니다. 만취한 여성에 대한 강간사건. 그에 대한 2차가해 발언은 “동의하에 했다더라”, “피해자에게 회피노력을 물어야 한다”, “30대 여성의 성 에네르기”, “폭력이라는 것은 물리력이 가해진 것을 의미한다”, “원래 성적으로 문란하다”, “왜 공개했냐” 등등입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의 피해경험을 ‘공개’합니다. 내 ‘실명’을 걸고 내(김원호) 사건을 말하고, 그냥 묻혀버린 내(김원호) 사건의 ‘2차가해자 박장근, 김상복’을 ‘공개’하고, 내가 몸담았던 ‘조직’의 가부장성을 폭로합니다. 내가 노힘 기관지를 통해 김원호 성폭력사건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내 지지자들과 불특정 다수가 아닌 김원호 성폭력사건의 2차가해자인 박장근, 김상복과 2차가해를 저지르고도 지목되지 않은 자들. ‘그들’을 향해 말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노힘 기관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내가 진보넷, 참세상에 내 글을 싣는 이유도 있습니다. 피해자 ‘최지영’의 ‘개인적인’ 피해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여성 활동가가 운동사회 성폭력, 가부장제, 권위주위, 엘리트주의에 얼마나 무참하게 짓밟혔는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여성, 반성폭력운동을 고민하는 주체로서 내

6.25 : ‘통일내전’은 없다.

6.25 : ‘통일내전’은 없다.

6.25 : ‘통일내전’은 없다. 1. ‘6.25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이제껏 여러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통칭)’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대부분의 주장에서 전쟁세력들, 즉 그 전쟁행위를 결정하고 실행했던 당사자들, 즉 한반도의 두 국가와 그들을 지원한 냉전의 맹주들의 주관적 진술이나 그들에 대한 호교적 논리들이 충분히 제거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주장들이 ‘친남적 혹은 친북적’이거나 ‘친미적 혹은 친소적’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무의미한 차이로 생각한다. 전쟁당사국 국가권력들과 그 지원/동맹국가들의 공식적 견해는 물론이고, 나아가 이를테면 미국 내부에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주장된 ‘수정주의적 연구들’ 또한 ‘한국전쟁’의 피해자이자 그 전후질서의 희생자인 ‘한반도 민중들’의 시점에서는 대단한 변별성을 지닌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한반도 국가(들)의 입장이 아니라 한반도 민중들의 입장에서, 즉 ‘전쟁세력의 입장이 아닌 전쟁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그 전쟁을 다시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문외한’인 내가 할 수 있을 법 한 일은 아니고, 진보적 역사연구자들이 그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에 더 가깝다. “전쟁세력으로서 한반도 국가권력들(과 그 지원세력들)의 입장이 아닌, 전쟁의 피해자로서 한반도 민중의 입장”이라는 문구를 써놓은 다음 우리가 일차적으로 깨달을

6월 30일 서울지역 한미FTA 하루교육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6월 30일 서울지역 한미FTA 하루교육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불타는 저항의 기록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불타는 저항의 기록

21세기 제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전지구적 자본의 공세 속에서, 스스로 그 내부로부터 민주주의적 과정과 절차를 짓밟는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불타는 저항의 기록들이 끊임없이 행해져야 하고 이렇게 기록된 이야기들이 널리 퍼져야 한다. 지배(유를 위한) 기록과 선별적 유포 및 전승에 대항하는 대항기억의 기록작업들은 보다 민주적이고 해방적인 세상을 지금 여기서 일구는 투쟁들의 소중한 일부분이다. 21세기 제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전지구적 자본의 공세 속에서, 스스로 그 내부로부터 민주주의적 과정과 절차를 짓밟는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불타는 저항의 기록들이 끊임없이 행해져야 하고 이렇게 기록된 이야기들이 널리 퍼져야 한다. 지배(유를 위한) 기록과 선별적 유포 및 전승에 대항하는 대항기억의 기록작업들은 보다 민주적이고 해방적인 세상을 지금 여기서 일구는 투쟁들의 소중한 일부분이다. 미쳐가는 대한민국, 불타는 저항의 기록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미쳐 가는 대한민국, 불타는 저항의 기록 16인의 독립영화 감독들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공동 작업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를 기다리던 차에 드디어 보았다. 지금 여기 대한남국에서 벌어져 온 일들을 찬찬하면서도 유머와 재치를 섞어서 긴장감있게

기사 5,804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