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아 영표야, 잘있어라. 형님간다.”

어젯저녁 세찬 빗속에서 밀고 밀리는 한미FTA반대 집회를 마치고 시청 앞 지하철역을 내려서는데 뒤따라오던 분이 그렇게 말했다. 옆을 쳐다보니 시청 지하철역에는 지성과 영표가 갑자기 튀어나올것같은 실물크기 사진이 있었다.

“지성아 영표아, 잘있어라. 형님간다.”

그분들은 농민같아 보였는데 집회를 마치고 다시 내려가는 길인가 보다.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모두 비에 흠뻑 젖었다. 그렇지 않아도 비에 젖은 몸들인데 경찰은 물대포를 쏘아댔고 며칠전 신라호텔앞에서처럼 몇번을 밀고 밀렸다. 솔직히 기동대가 방패를 앞세우며 갑자기 쳐들어올땐 너무 무서워 나는 뒤로 물러설 생각만 하고있는데 다행히 옆에 서있던 조준호 민주노총위원장이 여유롭게 앞서나갔다. 방송차에서는 기동대병력이 몇명안되니 모두들 제자리를 지키라고 방송을 해댔다. 같은 한미FTA반대 교육공대위 박유리씨가 방송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대단한 친구이다. 그렇게 우리 시위대는 밀고밀리며 빗속에서 청와대 근처라도 가기위해 교보주차장으로,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서린동 작은 골목골목을 누비며 경복궁역을 향해 갔지만 가던 길이 막혀 되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길’은 우비를 걸친 우리 시위대에게는 ‘길’이 아닌 막다른 골목일뿐이었다.

광화문 네거리, 딱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며칠 버티면 될 것 같은데….다음부터는 오늘처럼 우왕좌왕 밀리지 말고 빗속이든 뭐든 광화문 사거리 그 자리에 깔고 앉아 협상이 끝나는 날까지 주먹밥먹으며 주저앉는 길밖엔 없어 보였다. 시위대와 함께 망연히 교보 앞 계단에 앉아있던 오종렬, 정광훈 대표에게 그렇게 말하니 정광훈대표 역시 ‘솥걸고 밥해먹으며 이자리에 주저앉아 몇 날 며칠하는수밖에 없다. 농민은 그것이 가능한데 노동자파업이 여러 날이 어려운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어젯 저녁 서린동 골목골목을 누빌때, 골목안 빼곡히 들어찬 작은 식당의 더 작은 주방에서는 교보쪽으로 갈수록 돼지고기굽는 냄새, 골목안에는 생선굽는냄새 더 깊은 곳에서는 밀전병을 굽는냄새가 났는데 고기굽는 냄새는 역겨웠지만 밀전병냄새앞에서는 여성시위대원들이 한마디씩했다.

“밀전병먹고싶다.”

나도 속으로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면 식구들과 밀전병을 해먹어야지.’

결국 오늘 아침 밥반찬으로 난데없는 밀전병을 받아든 식구들은 의아해하다가 사연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바빠서 아무도 먹지못하고 각자 학교로, 일터로 뛰어나갔다.

아는 사람별로없이 홀홀단신으로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는 것은 내게 늘 부담이다. 나는 거친 몸싸움이 있는 집회가 끝난후 서로의 노고를 위로할 그런 집단이 있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부럽다. 노동자, 농민, 교사….늘 집회를 앞두고는 ‘ 꼭가야하나’ 망설이다가 혼자하는 출발도 늦고, 집회장에는 대부분 늦게 도착한다. 어제도 세찬비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몇번이나했다. 그러다가 이런 빗속에서 나라도 안가면 어쩌나, 나혼자 힘은 없지만 우리가 서로서로 그렇게 힘이 되어 뭉쳐 표현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입장을 대변해주나하는 심정으로 가서 늦게까지 골목을 헤매며 있었다.

한미FTA협상이 체결되면 어제 광화문에 모인 이들을 포함해, 행진대오를 무심히 버스속에서 바라보던 모든 사람, 서둘러 시위대옆을 지나는 행인,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통속에 삶을 이어갈 것이다.

‘지성아 영표야, 잘있어라. 형님간다.’

농민들이 다시 그렇게 맑게 밝게 말할 여유가 생길것인가? 거의 불가능할것이다. 늘 ‘지금이 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막다른 최악과 나락은 언제나 더 더 더 준비되어 있었다.

어젠 우린 그렇게 밀렸고 나는 그렇게 외로웠지만 오늘은 또 다시 새롭게 시작이다. (200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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