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에서는 미국의 시민단체 ‘하우스 더 홈리스’가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조사는 홈리스가 경찰의 단속을 받는 과정에서 어떤 위법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는지, 경찰의 치안활동이 홈리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텍사스주 오스틴시의 홈리스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2015년에도 같은 내용의 조사가 실시된 바 있는데, 당시 ‘하우스 더 홈리스’의 한 관계자는 조사결과를 두고 ‘끔찍하다’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이번 결과를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도 그는 다시 한 번 ‘끔찍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조사결과를 소개하기에 앞서, 미리 말씀드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앉기-눕기 금지조례(또는 금지법)’라는 법령을 채택하는 도시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 법령은 공공장소에서 앉거나 눕는 행위를 경범죄로 간주하여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설문조사가 이루어진 오스틴시 역시 ‘앉기-눕기 금지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이 조례에 따르면, 오스틴시의 경찰은 공공장소에 앉거나 누워 있는 사람에게 그런 행위를 하지 말 것을 경고해야 합니다. 경고 이후 30분이 지나면 최대 500불(약 56만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만약 벌금을 내지 못한다면? 감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우스 더 홈리스’의 이번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이 요상한 조례가 어떤 문제를 만들고 있는지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제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경찰이 당신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고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60%가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아마 이 도시의 많은 경찰관들은 홈리스를 ‘보호해야할 시민’이 아닌 ‘쫓아내야 할 범죄자’로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다음의 결과는 더욱 놀랍습니다. “너무 아파서, 혹은 장애가 있어서 전혀 움직일 수 없는데도 ‘앉거나 누워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벌금 딱지를 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무려 44%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한 것입니다. 아니,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은 못 줄망정 처벌을 하겠다고 하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찰의 본분이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단지 경찰관 개개인의 문제 또는 경찰 조직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런 ‘묻지마 처벌’의 근거를 제공한 것은 오스틴 시정부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식의 조치들이 홈리스의 삶에 초래하는 심각한 결과입니다. “공공장소에서 눕거나 앉는 행위 등 경범죄 위반으로 인해 부과된 벌금 때문에 집이나 직업을 얻는데 방해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37%의 홈리스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홈리스를 전과자로 만드는 조치는 그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우스 더 홈리스’에서 활동하는 팻 하트먼이라는 사람은 “홈리스를 지원하는 정부사업에서조차 전과 기록이 있는 사람은 기피대상”이라고 지적하며, 정작 ‘앉아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쪽은 정부라고 강조했습니다. 자기(정부)가 나서서 홈리스를 전과자로 만들어놓고는, 전과자이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셈이니까 말입니다. 말하자면, 정부는 가난한 시민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져버린 채, 가만히 앉아서 구경이나 하겠다는 입장인 것이지요.
차라리 벼룩의 간이나 빼먹을 것이지...
아직 조금 더 남았습니다. 조사 대상자의 29%는 경찰에게 신분증을 제출한 뒤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신분증이 없으면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다시 신분증을 만들려면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홈리스에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독자 분들께서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한편, 물품을 압수당하게 됐을 때, 나중에 물건을 되찾는데 필요한 서류를 경찰이 발급해 주지 않거나 지인의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았던 경우도 36%나 되었습니다. 정말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설마 한국도?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내용은 저 바다 건너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한국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요? 불행히도 아주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꽤 예전부터 지적되어 온 불심검문이나 경범죄처벌법 개정(구걸행위 처벌규정 신설)과 같은 문제들도 그렇지만, 최근 제정되었거나 제정 중에 있는 각종 조례들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가령,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서울로 7017 이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 등은 공공장소에서 악취를 풍기거나 눕는 행위 등을 경범죄 위반으로 간주하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언론에서는 연일 ‘묻지마 범죄’를 다루며 은근슬쩍 ‘노숙자’란 표현을 끼워 넣고 있는 실정입니다. ‘묻지마 처벌’도 그렇게 열심히 다뤘으면 좋을 것을. 어쩜 이렇게 다른 나라의 나쁜 점만 집중적으로 닮아 가고 있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