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많아 영토가 비옥하고, 기후가 좋아 유일하게 농사가 되고, 사람 손때가 타지 않는 지역으로 마을 곳곳이 자연의 보고이기도 하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유네스코는 강정해안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했고, 이에 따라 ‘절대보전지역’, ‘생태계보전지역’,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한 평생 이 지역에 뿌리내리면서 살아왔다. 특히 주민들은 중덕 삼거리를 지나 펼쳐지는 구럼비 해안을 품고 살았다. 구럼비 해안은 바다 앞으로 펼쳐져 있는 수많은 돌덩이가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신기한 해안이다. 주민들에게 ‘기’를 준다는 구럼비와 그 주변은 생존의 터전이자, 상징적인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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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일 새벽, 주민들의 구럼비 해안에 펜스와 철조망이 둘러쳐졌다. 경찰과 해군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에 따른 것이었다. 주민들의 삶이자, 방문객들의 쉼터였던 구럼비 해안은 그렇게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곳으로 묶여버렸다. 당연히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강정마을주민 홍동표(54)씨는 “구럼비 해안과 이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겠다는 사람들한테 마을과 평화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구럼비에서 보낸 54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해군기지 생기면 지역 발전? 그런 줄로만 알았지”
홍동표 씨는 54년 평생 강정마을에서 살았다. 구럼비 해안에서 헤엄치고, 마을의 깨끗한 흙을 밟았다. 홍 씨가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강정마을에 갖는 애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4년 전, 이곳에 제주해군기지건설 사업이 추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구럼비가 회색콘크리트로 덮이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여기서 태어나 54년을 여기서 살았어. 어릴 때 놀이가 뭐가 있겠어. 매일 구럼비 해안 물가로 나가서 헤엄도 치고, 고기도 낚고... 어른이 돼서도 구럼비 해안은 그냥 일상의 터전이니까.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지.
근데 해군기지가 들어오면서 여기가 콘크리트로 덮인데. 구럼비 해안는 절대보존 지역이야. 도 조례에도 나와 있어. 어장도 풍부하고 희귀종들이 서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야. 우리도 구럼비에서 더 살고 싶고, 내 아이들이랑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물려주고 싶어. 근데 콘크리트가 덮이면 여기서 끝이야. 주민들이 싫다는데, 왜 일방적으로 마을을 망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답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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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동표 씨는 54년 평생 강정마을에서 살았다. |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발표된 직후인 2007년, 18명의 주민들이 해군기지건설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홍 씨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게 기지 건설 반대운동에 뛰어든 시간만 4년 반이다.
“2007년 초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했을 때 제주도나 해군이나 전혀 주민들의 의사를 묻지 않았어. 이 지역 주민들 자체도 해군기지가 뭔지 그런 것도 잘 몰랐고. 여론 조사도 한 번 안 해서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몰랐지. 대신 해군이 해군기지의 장밋빛 상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다녔어. 해군기지가 생기면 학교도 들어서고 지역도 발전된다고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들은 그런 줄로만 알았지.
그 와중에 마을에서 몇몇이 ‘이건 아니다. 위미랑 화순을 거쳐 강정으로 기지 선정이 됐는데, 위미와 화순 지역 사람들도 문제의식을 느껴 싸워온 것 아니냐’ 그렇게 의견이 모아졌어. 그래서 18명의 주민들이 모여 해군기지 문제점을 찾아보고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다녔어. 그리고 마을 총회를 해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했는데 당시 마을회장이 주민총회를 안하는 거야. 법정 싸움까지 갔지. 마을총회 개최를 법원에서 판단한 것은 우리가 최초일거야. 어쨌든 총회를 열어 마을 주민투표를 했는데, 투표결과 94%가 해군기지에 반대했어. 그렇게 시작 된 거야. 이 싸움이.”
4.3 항쟁의 아픈 상처를 육지경찰이 다시 건드려
“그걸 사람들이 왜 생각을 안 해주냐고. 그 아픔을”
1948년 4월 3일.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이 민중항쟁을 일으켰다. 미 군정과 경찰들은 이들을 무력진압 했고, 공식통계로만 약 3만 명의 도민들이 학살됐다. 95%의 불타 없어진 마을을 재건하며 제주도민들은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정착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50여 년 동안 뼈아픈 상처를 위로해 왔던 ‘평화’의 염원은 지난 2일,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4.3항쟁 이후 처음으로, 육지경찰 600명이 진압을 위해 제주도 강정마을에 들이닥쳤다. 그 날 새벽, 경찰의 기습적인 병력 투입으로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과 활동가 등 38명이 연행됐다. 부상자도 속출했으며, 구럼비 해안에는 펜스와 철조망이 들어섰다.
“4.3항쟁 때 강정마을은 서귀포시에서 제일 많이 주민들이 학살된 곳이야. 그 만큼 사람들이 상처가 많아. 강정마을 뿐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다 상처가 있어. 그 상처를 육지경찰들이 다시 건드린 거야. 제주 4.3항쟁은 피 흘림의 역사야. 아무 이유 없이 주민들을 산으로 끌고 가 죽이고 그랬으니까.
제주도에 또 다시 육지경찰이 투입됐다는 것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데. 육지 경찰들이 그 때 동네 밭에 사람 잡아다가 공개처형하고, 마을 사람들은 다른 마을에 숨어살다 또 죽고. 근데 이번에 육지경찰이 또 들어와서 마구잡이로 연행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마을사람들이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알아? 그걸 사람들이 왜 생각을 안 해주냐고 그 아픔을.”
강정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 역시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제주해군기지가 50년 동안 제주도민들이 만들어놓은 평화의 섬을 해칠까봐 불안한 것이다.
“해군이 해군기지건설을 ‘관광’이라고 허울 좋게 말하지?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그 말에 현혹됐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순수했던 주민들도 지난 4년 반 동안 공부 많이 했어. 해군기지도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으면서 추진 된 거야. 해군기지가 중국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이상, 미국은 당연히 나설 거고. 기지 건설되면 미군들은 SOFA협정 내세우며 여길 마음대로 사용할걸?
뿐만 아니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시작으로, 제주도 곳곳에 연쇄적으로 계속 군사기지가 설치될 꺼야. 도민들이 그렇게 원했던 ‘평화의 섬’이 군사기지화 되는 거지. 지금도 모술포 쪽에 일본이 사람들 땅을 강제로 빼앗아 만든 비행장이 있어. 해방되면서 그걸 국방부가 가져갔는데, 국방부에서 호시탐탐 그 곳을 공군비행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 해군기지 들어서면 그쪽도 시간문제지.”
경찰병력이 침탈하자 분노하는 마을 주민들. 서귀포 경찰서장이 망루에서 농성중인 고권일 대책위원장이 내려오면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방송하자 마을 주민들이 '거짓말 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주민들은 지난 4년반동안 정부에 속아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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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병력이 침탈하자 분노하는 마을 주민들. 서귀포 경찰서장이 망루에서 농성중인 고권일 대책위원장이 내려오면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방송하자 마을 주민들이 '거짓말 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주민들은 지난 4년반동안 정부에 속아왔다고 했다. |
4년 만에 깨진 마을공동체...왜 우리 마을을 이렇게 만들었냐
“같이 자란 고종사촌형이랑 3~4년 전부터 말을 안 해”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강정마을 공동체는 산산조각이 났다. ‘찬성’ 주민들과 ‘반대’ 주민들이 둘로 나뉘었다. 마을 토박이 주민들이 대다수인 만큼, 평생을 함께 지내왔던 주민들이었지만 기지건설문제가 이어진 4년 반 동안 둘로 나뉜 마을은 좀처럼 합쳐지지 못했다.
구럼비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주보고 있는 슈퍼마켓도 둘로 나뉘었다. 태극기를 꽂은 슈퍼마켓은 기지 찬성 입장 주민이 운영하는 곳이고, 반대편은 반대 입장 주민이 운영하는 곳이다. 찬성 입장 주민들은 찬성입장 주민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앞 평상에 내내 모여 있고, 반대 입장 주민들은 중덕삼거리, 제주도민의 삶의 한 부분인 돌담 무덤 부근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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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어. 우리 마을 자체가 원래 공동체가 잘 형성된 곳이야. 근데 이 문제로 갈라져서 싸우기 시작한 이후 마을 분위기가 형편없어.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지만, 어촌계와 해녀를 중심으로 찬성하는 주민도 있거든. 가족들 중에도 찬반 의견이 갈라져 싸우는 집도 있다니까. 그런 집은 집안 경조사도 서로 상관 안하고 지내기도 해.
나 같은 경우도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고종사촌형이랑 3~4년 전부터 말을 안 해. 고종사촌형은 기지 건설에 찬성하거든. 그리고 농사도 같이 짓고 정말 다정했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어. 그 친구와도 지금 아는 척도 안 해. 한 마을에 살면서. 마을사람들 모두 그런 상황이니 참 고역이지. 식당이나 슈퍼도 찬성 반대에 따라 가는 곳이 나뉘어져 있어. 서로 좋게 살던 동네가 왜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됐는지...”
해군이 기지건설을 추진하며 주민들에게 내세웠던 것은 ‘지역경제 발전’이었다. 이를 내세워 주민들을 포섭했고, 기지 건설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을 기대하는 주민들도 있다. 하지만 4년 반 동안 싸워왔던 반대 주민들은 이것의 허위를 알고 있다.
“00 리조트 들어온다고 했을 때도 마을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어. 거기가 노른자 땅이거든. 리조트가 들어오면 관광객 소비도 늘고 일자리도 창출된다고 해서 결국 만들어졌지. 근데 정작 만들어져도 지역 발전은 하나도 없어. 처음에는 리조트에 우리 마을 사람들이 채용되기도 했는데 2~3년 지나고 나니 리조트 직원들이 이곳으로 파견되면서 지역주민 일자리는 없어졌어. 리조트 청소하는 아주머니만 몇 명 있을 뿐이야. 좋은 경관만 빼앗긴 꼴이 됐지.
기지 건설도 지역 경제가 발전되고 학교도 많이 만들어지고 그런다잖아. 다 거짓말이야. 내가 이 싸움 시작하면서부터 전국에 기지가 들어선 곳을 다 다녀봤어. 근데 왜 그 지역들이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낙후 하냐고. 진해 해군기지의 경우, 마산이나 창원이랑 경제적 차이가 7배야. 그리고 거기 근무하는 군인들은 자녀들을 마산이나 창원 쪽으로 보내. 학교가 많이 생길 일이 없는 거지. 오히려 종속적인 지역관계만 만들어질 뿐이야.”
굳이 지역경제가 발전하지 않아도, 좋은 물과 기후, 땅을 터전 삼아 여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강정마을. 때문에 주민들은 ‘그냥 우리를 살던 대로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요구한다. 국가에 의해 삶의 터전이 망가지고, 생활 방식이 변화하고,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다.
“물이 없는 곳으로 유명한 것이 제주도인데, 유일하게 강정마을은 가는 곳마다 물이 있어. 그래서 사람들이 ‘제1강정’이라고 불렀어. 그리고 제주도는 화산재로 토양이 만들어져서 농사가 안 돼. 근데 강정은 흙이 좋아 밭농사도 된단 말이야. 물도 좋고 땅도 좋고 기후도 좋아 여기에서 나오는 모든 농산물은 최고야. 공판장 가도 찾을 수가 없다니까. 우리는 이 자체로도 경쟁력이 있는 마을이야.
요즘 외부세력이 어쩌구 그러잖아. 진짜 외부세력은 아무 문제없는 마을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해군과 삼성, 대림이야. 이제 우리 좀 그냥 이렇게 살게 내버려뒀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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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기지가 건설될 예정인 곳 습지에는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다양한 생물종이 산다(위). 평화의 상징이 된 구럼비에 못 들어가는 주민들은 가슴이 먹먹하다며 한숨만 쉰다. 제발, 그냥 살게 내버려 두라고...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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