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피해자 목소리는 무시, 정진후는 미화?

성폭력 피해자 "정진후, 나와의 약속 철저하게 저버렸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통합진보당 개방형 비례대표로 결정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에 대한 미화 소지의 발언을 했다. 최근 진중권 동양대학 교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정진후 전 위원장의 공천 철회를 요구하자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것이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 대표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 측이 (2차 가해자들에 대한) 재징계를 요구해서 대의원 대회에서 다루게 됐는데 피해자 측이 낸 안건이 그대로 통과되지 못했다”며 “정진후 전 위원장은 당시 조직의 토론을 거쳐 규정에 따라 처리했지만, 피해자의 고통이 확인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 그 고통을 최선을 다해 치유하지 못한 조직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당시 대의원들에게 ‘내가 위원장으로서 잘 처리를 못 했으니 스스로 경고조치를 받겠다’ 이렇게 자청했던 분”이라고 해명했다.

성폭력 피해자 쪽의 입장을 적극 반박하려는 취지지만 정진후 전 위원장을 ‘스스로 경고조치를 자청한 분’으로 묘사해 성폭력 사건 해결 책임자를 미화한 꼴이 됐다.

이정희 대표는 이어 정 전 위원장을 ‘스스로 아파하고, 노력한 분’이라 규정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규약과 규정에 의한 의안처리가 피해자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없고 또 그 고통을 극복시키지 못했던 점을 스스로 아파하면서 또 노력했던 분이라 공직에 부족했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며 “당시 완전한 해결책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실제 얼마만큼 함께 부족함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인가, 아니면 방치했던 사람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판단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대표는 “이미 비례후보 선정 당시에 앞으로 충분히 극복해 나가면서 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저희 진보진영의 책임도 함께 질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비례후보 철회 계획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정진후 전 위원장, 2차 가해자 살려주는 결정에 큰 책임”

반면 ‘민주노총 김모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이정희 대표가 언급한 2009년 8월 29일 전교조 59차 대의원대회에서 정진후 전 위원장이 발의한 안건은 오히려 2차 가해자들을 살리는 내용이었다고 반박했다. 또 성폭력 사건 미해결의 가장 큰 책임자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을 지목하고 있다.

피해자는 최근 발간을 앞둔 성폭력 사건 백서에 들어갈 글을 통해 “정진후 전 위원장이 대의원대회에서 발의한 안건 및 제안 취지 설명은 나의 요구사항은 전혀 반영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2차 가해자들을 살리는 내용이었다. 나와의 약속을 철저하게 저버렸다”며 “정진후 위원장에게 농락당한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 나는 자학을 했다. 죽으라고. 죽어야 한다고. 바보같이 또 속았다고...”라며 당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피해자가 이렇게 정진후 전 위원장을 파렴치한 수준으로 묘사한 이유는 정 전 위원장이 56차 대의원대회 전인 2009년 8월 25일 피해자와 독대를 요구한 자리에서 한 약속 때문이다.

피해자는 “이날 정 전 위원장이 진정으로 잘 해보겠다고 말을 해 성폭력 재심위원회를 재구성해서 재논의 해 달라고 했고, 가해자 3인의 자숙 기간 3년과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정 전 위원장은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믿어달라’고 했다. 오늘 나눈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래야 제대로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위원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고 당시 독대 상황을 전했다.

피해자는 비밀로 해달라는 약속을 지켰지만, 정 전위원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당시 대의원 대회 결정 과정을 지켜보던 심정을 백서에 썼다.

피해자는 백서에서 “잠을 자지 않고 대의원대회 진행 상황을 들으면서 밤을 보냈다”며 “나는 죽을 때까지 정진후 위원장의 그 간교함을 용서치 않으련다. 정진후 위원장의 비인간적인 행태를...”이라고 적었다.

피해자 대리인인 황미선 교사는 “이정희 대표가 정진후 위원장이 대의원대회에서 9시간 넘는 시간 동안 안건을 처리한 것은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하는데 전교조 내부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당시 대의원 대회는 정진후 위원장의 이중성과 피해자에게 보여준 권모술수를 보여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황미선 대리인은 “정 전 위원장이 56차 대의원대회에 낸 안건은 ‘이러이러해서 피해자 중심주의로 결정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대의원들에게 판단을 해달라는 식의 안건을 낸 것”이라며 “전교조의 특정 의견그룹이 대의원 대회를 장악하고 있는데 그렇게 안건을 내는 것은 피해자의 입장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책임은 대의원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제가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9시간 동안 토론이 이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유현경 피해자 지지모임 활동가는 “정진후 전 위원장은 이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왜곡하고, 2차 가해가 없는 것처럼 만들어 피해자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 당사자”라며 “통합진보당이 피해자의 의견을 적극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강한 유감이다. 이후 3월 8일 여성의 날 행사 등에서 이 문제를 적극 알려나갈 것”이라고 규탄했다.

한편 진중권 동양대학 교수는 “야권이 야권연대로 유권자들에게 표 달라고 할 최소한의 명분은 임종석, 이화영, 정진후가 지금이라도 자진 사퇴하는 길 밖에 없다”며 재차 정진후 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