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의 시즌이다. 국민의힘은 7월, 더불어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예고하고 있다. 시점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내용에 있어서도 보다 많은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여당 전당대회다. 현직 대통령의 통치 방식 변화 가능성과 차기 권력의 부상 여부 등이 주요 쟁점이 되고 있기에 그렇다. 반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앞으로 치를 전당대회는 이재명 대표의 연임 여부 정도로 쟁점이 좁혀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양대 정당은 규모나 정책적 측면에서 포괄정당(catch-all party)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치학 교과서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요 정당 모델이, 간부정당(carde party)에서 대중정당(mass party)으로, 이게 다시 포괄정당으로 변화해온 측면이 있다고 돼있다(물론 이러한 서술은 다소 거칠게 정리한 것이다). 여기서 대중정당과 포괄정당의 차이는 구성원 또는 특정 계층의 이익을 어떻게 대변하느냐에 있다. 대중정당은 그 정당을 지지하는 구체적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지만, 포괄정당은 보편적 중도적 지향을 가지면서 선거전문가 정당의 형태를 띈다. 따라서 포괄정당에서는 경향적으로 정당의 정치적 구심력, 즉 정당일체감이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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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양대 정당이 이러한 정의에 충실하다면 전당대회 역시 그러한 정당적 성격에 알맞는 방식으로 치러져야 할 것이다. 가령 양대 정당이 갖는 성격의 핵심이 포괄정당이라면 이 정당의 지도부를 선출하는 주요 쟁점은 어떻게 지지층을 확장하고 중도층 공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그런데 양대 정당의 전당대회는 이런 쟁점을 둘러싼 경쟁을 중심으로 치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전당대회의 쟁점만 보자면 지지층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라는 대중정당의 모델에 가깝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시기상 더 빨리 쟁점화가 시작된 여당의 전당대회부터 짚어보자. 지지층 확장이나 중도 공략의 메시지를 그나마 들고 나온 것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으로 볼 수 있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에 대해 특검법을 자체 발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일단 ‘특검 필요 사안’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은 그동안 요지부동이었던 대통령실과 여당의 입장에서 한 발 나아간 것인데, 이는 보수층 내부에서도 특검을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여론이 존재한다는 점 등을 고려한 걸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한동훈 전 위원장은 수평정 당정관계를 수립하겠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해준 지지층 연합을 복원하겠다는 등의 주장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했는데 이 역시 지지층 확장과 중도 공략에 방점이 찍힌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동훈 전 위원장이 이러한 행보가 불러올 갈등을 일정 수위 이상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의 특검법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선을 긋는 게 첫번째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역시 정당하다며 지지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두번째다. 특검 필요 사안이라고 본 것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주장에 대해 “앞장서서 그런 무책임한 정치 공세를 막아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게 세번째다.
한동훈 전 위원장이 정치적으로 모순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일련의 행보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의힘 당원 및 지지층의 요구가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총선 패배를 통해 보수적 유권자들은 윤석열 대통령만 무작정 믿고 가는 것은 필패라는 걸 깨달았다. 총선 이후 태도를 봤을 때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은 변화하기 어렵고 남은 임기가 줄어 들수록 국정 운영에서 드러나는 문제의 심각성도 정도를 더해갈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당하려면 최소한 여당이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적이거나 차기 리더십을 보장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최근의 ‘어대한’ 분위기는 이에 힘입은 것이다. 마침 총선을 거치면서 윤석열-한동훈 갈등 관계가 부각된 게 한동훈 전 위원장에겐 득이 된 셈이다.
그런데 보수적 유권자층의 고민은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 갈등이 커지면 정권재창출 가능성은 줄어든다. 가령 여당 내 갈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김영삼-이회창 관계는 상대당 소속인 김대중 집권으로 귀결됐다. 반면 어느 시점 신사협정을 맺은 듯 갈등이 관리 국면으로 들어갔던 이명박-박근혜 관계는 정권재창출 성공으로 이어졌다. 갈등이 불가피하더라도 끝까지 가면 안 된다. 더군다나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는 리스크가 더 크다. 국회 내 확고한 대수를 점한 범야권이 ‘탄핵’을 예사로 거론하는 상황인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배우자 문제 등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다. 박근혜 정권의 교훈은 ‘탄핵’이 ‘궤멸’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여당이 금도를 지키지 않으면 보수정치는 다시 2017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의 양다리(?) 행보는 당원 및 지지층의 이런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지지층 확장도 일단 대표가 돼야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그러니까 지지층 확장과 중도 공략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말아야 한다. 시금석은 해병대원 순직사건에 대한 특검 제안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향한 어떤 현실적 가능성을 만들어 내느냐에 있다. 그런데 한동훈 전 위원장의 주장은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앞서 보수적 유권자층이 가진 양쪽의 우려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다 보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한동훈 전 위원장이 자신만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대법원장 등 제3자가 추천하는 특검’ 주장은 엄밀히 말해 새로운 게 아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중심이 돼 추진하는 범야권의 특검법 중 특검 추천권을 ‘독소조항’으로 규정하는 것인데, 이는 지난 국회에서 여야 간 특검 공방에서도 제기 되었던 문제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특검 추천권 문제를 ‘선수가 심판을 지명하는’ 등의 문제로 설명하는데, 이는 대통령실의 거부권 행사 논리와도 동일한 것이다.
그 당시에도 지적된 문제지만 이러한 주장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 않다. 역대 특검의 후보자 추천 주체를 보면 대한변협이나 대법원장이 추천한 전례가 있다. 야당이 추천권을 행사한 경우는 2012년의 이명박 내곡동 사저 특검, 2016년 국정농단 특검, 2018년 드루킹 특검 등인데, 전부 대통령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한 것이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의 경우 지난 입법청문회를 통해서도 상기된 바이지만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연루 의혹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특검의 경우 야당(대통령이 소속되지 않은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가 각 1인씩 추천)이 추천권을 행사하는 게 이례적이지 않다. ‘독소조항’론자들은 야당의 추천권 행사가 위헌적이라는 논리도 제기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미 국정농단 특검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특검 추천권은 국회가 입법 재량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라고 했다. 야당의 추천권 행사는 위헌이라고 볼 수 없는 거다.
오히려 한동훈 전 위원장이 언급하는 대로 ‘선수가 심판을 지명한다’는 등의 논리에 따를 경우 누구도 특검을 추천하거나 선택할 수 없게 된다. 같은 논리를 대법원장이 추천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대면 ‘심판이 선수를 지명하는’ 셈이 된다. 대한변협에 추천권을 줘도 마찬가지다. 대한변협은 변호사들의 모임이다. 결국은 대한변협 소속의 변호사가 피의자를 변호하게 될 텐데, 이 역시 ‘선수가 심판을 지명하는’ 셈이 되는 것 아닌가? 어떤 경우든 마지막에는 추천된 후보 중 대통령이 특검을 선택한다는 점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결국 누가 특검을 추천해도 문제가 되는 이러한 난국이라면, 애초에 ‘선수가 심판을 지명한다’는 관점 자체가 틀렸다고 봐야 한다. 수사 대상인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수사 주체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오히려 한동훈 전 위원장이 ‘선수가 심판을 지명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대통령도 아닌 공정한 결정을 담보할 수 있는 제3자가 특검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해병대원 순직 사건에 대한 특검을 진실을 밝히기 위한 방법론적 수단이 아니라 오직 여야 간 공방의 관점으로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사안은 ‘게임’이고 여기에 참가하는 ‘선수’가 여당, 제1야당, 대통령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적 다툼은 그조차도 오직 사고실험의 차원에만 존재한다. 전당대회라는 틀을 벗어나서 보면 한동훈발 특검 논쟁의 허망함은 더 분명해진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국회의원이 아니므로 자신만의 특검법안 관철을 위해서는 대표가 되어 당론으로 이를 추진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등이 상정하는 국회 일정은 7월 4일까지인 6월 임시국회 중에 특검법안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있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고려하면 이후는 국회 재의결 국면이 된다.
결국 한동훈 전 위원장이 대표가 되기 전까지는 더불어민주당 등이 추진하는 특검법에 찬성하느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찬성하느냐, 국회로 되돌아 온 특검법 처리에 찬성하느냐 등에 대해서만 답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쟁점들에 대한 한동훈 전 위원장의 답은 정해져있다. 더불어민주당 등의 특검법에 반대하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는 찬성하고, 재의결에는 반대하는 거다. 이러면 모처럼의 특검 구상이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한동훈 전 위원장의 구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법안이 재의결 되기 전 대표가 돼 새로운 특검법안을 발의해 처리하자고 범야권에 제안하면서 협상의 문을 여는 것이고, 이를 대표가 되기 이전에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108명 중 8명이 이탈하지 않으면 재의결 할 수 없다는 조건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이 경우, 범야권이 제안을 수용하면 한동훈표 특검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을텐데, 대통령실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또다른 변수가 된다. 대통령실이 설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앞서 보수적 유권자층이 우려하는 바가 현실이 돼 필연적으로 정권 내 분열이 지지층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적으로 매우 다루기 어려운 변수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 가장 확률 높은 시나리오는 한동훈표 특검론이 전당대회용 수단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한동훈 전 위원장 측은 ‘더불어민주당이 못 받을 안’이라고 생각하고 던지는 측면이 클 것이다. 범야권을 겨냥한 이재명-조국 심판론에 더해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특검 법안에 대한 반대 논리를 형성해 ‘상대에 대한 반대’를 강화하면서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을 향해서는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으로 결집의 명분을 제공하고자 하는 건데, 얘기가 좀 복잡해졌을 뿐 이건 전형적인 지지자가 원하는 바를 관철하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역으로 얘기하면 이 조건은 해병대원 순직 사건의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 입장에선 또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못 받을 안’이라는 전제가 바뀌면 계산법이 전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재의결 국면에서 한동훈 대표가 실제 탄생하고 특검 추천권만을 바꾸는 형태의 제안이 이뤄진다면? 그때 가서는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걸 염두에 둔 나름의 정치적 ‘빌드-업’도 이뤄져야 한다.
물론 여기서도 변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의향일 것이다. 지지층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정권을 자중지란의 상황으로 만드는 것보다 ‘한동훈의 공’을 만드는 걸 더 경계한다면, 8월에 이재명 대표의 연임을 결정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래저래, 우리는 서두에 잠시 살펴봤던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정당 모델로는 제대로 설명이 안 되는 정치와 매번 직면할 수밖에 없는 신세인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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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