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청소년에게 AI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교육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관한 교육용 콘텐츠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AI에 관한 이론적인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내용이거나, 기술을 ‘활용’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독일의 비영리조직 택티컬테크(Tactical Tech)에서 청소년을 참여자로 하는 AI 교육 가이드북 <어디서나, 항상>(Everywhere, all the time)을 발간해 이를 소개한다. 이 가이드북은 AI에 관한 이론을 전달하기보다는 워크숍, 체험, 전시 등의 방식으로 청소년 참여자가 직접 활동에 참여하며 학습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는 점, 기술을 단순히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디지털 기술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자극하고 청소년 스스로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교재들과 차별화된다.
가이드북 표지 이미지
#누가 만들었나
택티컬테크(Tactical Tech)는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둔 국제 비영리조직이다. 디지털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탐구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활동을 20년째 하고 있는 조직이다. 이번 가이드북 <어디서나, 항상>(Everywhere, all the time)은 택티컬테크의 청소년 중심 전시회 프로젝트인 ‘미래가 원하는 것’(What the Future Wants)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미래가 원하는 것' 프로젝트 홈페이지 이미지
택티컬테크는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유럽스쿨넷, 국제도서관협회(IFLA), 세이브더칠드런과 공동으로 패키지를 제작했다. 이 패키지에는 PDF 파일로 된 가이드북 뿐만 아니라 각 주제별 포스터 이미지, 활동지(활동카드) 등 교육 진행을 위한 각종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다. 택티컬테크는 지난 2023년 봄과 여름에 걸쳐 독일, 스페인, 체코, 케냐, 브라질 등 전 세계 20여개국 출신의 청소년 300여명, 그리고 교사 100여명과 함께 공동으로 참여형 워크숍을 진행했다. 가이드북과 각종 자료들은 이 워크숍을 기반으로 나올 수 있었다.
#누가 이용할 수 있나
이 가이드북에서 목표로 하는 주요 교육 참여자는 13~19세 사이의 청소년이다. 이 연령대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AI 교육을 하고자 하는 교사, 사서, 그리고 누구든지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책에서는 AI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가이드북의 안내를 따라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꼭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 교육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꼭 교육을 위한 가이드북으로서가 아니라 AI 관련 교육을 위한 주요 주제, 그 주제들에 대한 관점을 세우는 교양 도서로서도 참고할 만하다.
#AI 관련 어떤 주제를 다루나
가이드북 <어디서나, 항상>(Everywhere, all the time)에서는 AI에 관한 여섯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각 주제마다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포스터 이미지와 활동이 짝을 이루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먼저 ‘주목 경제에서의 게임’ 주제와 관련해 간단히 개요를 설명한다. 소비자의 주목을 끌기 위해 각종 전략이 활용되는 시대에 게임 산업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게임시스템이 개인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이다. 활동으로는 참여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에서 설득력 있는 디자인을 하나 이상 발견하도록 한다거나, 참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의 캐릭터를 그려보도록 하는 것 등이 제시된다.
나머지 주제들도 살펴보면, ‘기술과 우리의 관계’ 주제에서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고립, 괴롭힘, 감시, 통제, 불평등을 다루고,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s, LLM)의 작동 방식’ 주제에서는 ChatGPT 등 LLM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일상생활의 알고리즘’ 주제에서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나아가서 사회에 해를 끼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인터넷 산업과 자원’ 주제에서는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엄청난 양의 물과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아래 이미지) 기후위기와도 연결한다. 마지막으로 ‘기술 이면의 보이지 않는 노동’ 주제에서는 디지털 및 AI 기반 기술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수십억 명의 노동력이 투여되고 있으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착취 당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주제에 이어지는 활동으로는 노동자로서 나의 권리는 무엇인지 노동법의 관련 내용을 찾아보는 것 등이 제시된다.
‘인터넷 산업과 자원’, <어디서나, 항상>(Everywhere, all the time) 가이드북 중에서
가이드북에서는 이런 식으로 50분짜리 수업을 위해 교사가 어떻게 개요를 제시하고, 참여자들이 포스터 이미지와 활동카드를 활용해 토론과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상세한 가이드라인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다만 포스터 이미지와 활동카드 자원은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지는 않으며 메일로 자료 제공을 요청해야 한다.
#워크숍은 어떻게 운영할 수 있나
이 프로젝트에서는 AI 관련 주제를 가지고 청소년들과 함께 진행해볼 수 있는 워크숍 프로그램 가이드도 제시하고 있는데, 한 예로 <기술은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가> 워크숍 진행 개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워크숍은 총 150분 간 진행되는데 오프닝에서는 AI 환경에 대한 참여자들의 의견을 나누면서 활동을 시작한다. “나는 매일 AI에 노출되어 있다”, “AI는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AI는 우리보다 우리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한다”, “개인은 AI 기술을 재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AI 기술은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 같은 질문에 얼마나 동의, 혹은 동의하지 않는지 의견을 제시해보는 것이다. 이때 자리에 앉아서 말이나 글로 의견을 제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워크숍 공간 바닥이나 벽면에 테이프로 표지판을 붙이거나 벽에 거는 방식으로 '완전히 동의함'에서부터 '전혀 동의하지 않음'까지 표시해두고 학생들이 움직이게 한다. 이 질문들에 정답은 없고 학생들이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게 하기 위함이다.
워밍업 토론에 이어지는 본론 토론에서는 학생들에게 활동 카드가 주어지는데 가까운 미래인 2030년에 친구들은 모두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가정하고 내가 친구들에게 AI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설정을 제시한다. 이 활동은 역할극 형태로 진행되고, 마지막에는 진행된 활동에 대해 성찰을 하며 마무리한다.
워크숍 <기술은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가> 활동 가이드 중에서
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는 워크숍 진행을 위한 시나리오를 시간대별로 굉장히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활동을 마무리하며 결과물 사진을 찍을 때 참여자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고 뒷배경에 사람의 모습은 흐리게 처리하라고 안내한다.
#정리하며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굉장히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터 사이즈와 두께, 자르는 방법, 풀 컬러 필요 여부까지 매우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가이드북에는 각 주제마다 관련된 추가 자료를 볼 수 있는 링크도 포함되어 있다.
가이드북 <어디서나, 항상>(Everywhere, all the time)은 영어로 쓰여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포스터와 활동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고, 단순히 기술 활용 교육을 넘어서서 청소년 스스로 디지털 세상과 적극적인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의 교육이라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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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은 2012년 마을미디어 시범 사업 때부터 2023년 사업 종료 때까지 미디액트에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사업 담당 실무자로 일했다. 지금은 잠깐 현업에서 벗어나 평생 교육 관점으로 공동체 미디어 활동을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