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그럴 때 평화는 저절로 올 거야

그럴 때 평화는 저절로 올 거야

춘천가는 길 (2004년 9월 16일) 어린이신문에 이어 쓰는 글을 쓰느라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오늘부터 춘천, 시흥, 인천, 임진각, 서울, 청와대로 날마다 옮겨 다니는 일정을 생각하면 미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나서 자고 일어나 원고를 보낸 뒤, 옷가지며 짐가방을 챙기고 나니까 어느 새 기차 시간이 되었다. 순례단원들은 어제 하루를 합정동에 있는 수도원에서 묵고 거기에서 순례단 봉고로 출발을 하는데 나는 다시 합정동으로 되돌아갔다가 그 차를 타고 갈 것 없이 바로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간으로 보아도 그게 훨씬 덜 들고, 힘이 드는 걸로 봐서도 그게 훨씬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차가 타고 싶었다. 그런데 이러다 저러다 보니 어느 새 기차 시간에 삼십 분도 남지 않았다. 짐을 짊어지고 부랴부랴 나가는데 이렇게 늦는 날은 흔하던 택시도 보이지 않는다. 큰길까지 나가서야 택시를 잡아탔다. “청량리역까지 가주세요, 거기 길 건너편 말고 미주 아파트 쪽으로 돌아들어가서 계단 앞까지 들어가 주세요.” 자동차에 달린 시계를 보니 간당간당하다. 그런데 자꾸만 빨간 신호등에 걸린다. 기사 아저씨가 어디를 가느냐고, 무엇하러 가느냐고 하는 걸 물어서 이러이러한

[세계화에 저항하라!] [기고]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세계화에 저항하라!] [기고]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전쟁과 빈곤으로 수억의 민중들이 살해당하고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곧 도래할 '최종적 위기'의 시기, 즉 미국경제의 '좋은 시절'이 끝난 이후에 도래할 시기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운동일 수밖에 없는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대한 반대운동에 박차를 가할 시점이다.

[세계화에 저항하라!] [좌담下] 한국 반전운동,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세계화에 저항하라!] [좌담下] 한국 반전운동,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원영수 : 이번 한국 반전운동의 핵심은 노무현정권 퇴진 운동이었다. 파병반대 투쟁은 방어적, 소극적으로 진행되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불법 점령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되었고, 스페인 철군 등 국제적 반전 여론들이 높아지면서 총체적 위기로 돌입되는 시점에 손길을 내밀었을 때 잡아준 사람이 노무현과 고이즈미였다. 국제 정세에서 보면 가장 반동적인 세력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반전운동이 예각화되지 않고 있지만, 한국 운동에 대해 너희들 뭐하냐고 하면 면목이 없다. 크게 보면 한국에서 반전운동이 대중적인 운동으로 전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반전운동 열심히 해온 것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타격을 명확히 할 시점에 실기했던 점이 문제였다는 점이다. 김선일 씨 죽음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다. 김선일 씨를 그저 ‘무고한 시민’으로 볼 수만은 없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지만, 이라크의 입장에서 보면 제국주의 점령군 시스템의 한 부분이었다. 테러 살인에 정당성을 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명료하지 못한 정치적 태도들이 발목을 잡음으로써 반전 파병반대의 압도적 다수의 여론을 물리력으로 전화시키기 못했다. 노조운동의 경우 노조 간부들은 다른 NGO들과 다를 바 없이 립서비스 수준으로 일관했다. 특히 민주노총의 우파 지도부 출범

[세계화에 저항하라!] [좌담上] 세계 반전운동, 반세계화운동 만나 급진화

[세계화에 저항하라!] [좌담上] 세계 반전운동, 반세계화운동 만나 급진화

‘세계화에 저항하라’ 두 번째, ‘미 제국주의와 반제, 반전 운동<2>’는 두 반전활동가의 좌담으로 꾸몄다. 평소 반전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는 원영수 노동자의힘 기관지위원장과 최일붕 다함께 운영위원을 초청, 9월 14일 미디어참세상 사무실에서 약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했다. 국제 반전운동과 한국 반전운동으로 크게 나누었으며, 세계 지역별 반전운동의 역사와 경험, 최근 세계 반전운동과 한국 반전운동의 상태와 이후 과제 및 전망에 대해 이야기나누었다. 좌담은 각론 곳곳에서 쟁점이 형성되는 등 긴장감있게 진행되었다. 최일붕 : 1차대전까지 반전운동 활발했으나 스탈린주의 때문에 반전운동과 이후 냉전 초기까지는 강력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반전운동의 큰 흐름으로는 단연코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이 핵심이다. 베트남 반전운동은 승리했다. 미국은 베트남 증후군으로 두려움을 갖고 있다가 80년대 그레나다, 89년 파나마, 91년 걸프전쟁을 벌이면서 조금씩 베트남 증후군을 극복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은 처음부터 강력하게 일어났다. 원영수 :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스탈린주의로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2차대전 때에도 작은 규모의 반전운동들이 있었고 50년대 냉전체제 하의 반핵평화운동 역시 넓은 의미의 반전운동이었다. 후르시초프 등장 이후

이 엄마 가슴을 시커멓게 태우게 한

이 엄마 가슴을 시커멓게 태우게 한

자꾸만 먹는 것 생각 (2004년 9월 14일) 여수에서 두 밤을 자고 공주로 떠나는 길, 아쉽긴 하지만 김진영 선생님을 비롯한 몇 분 선생님들은 20일에 서울에서 있을 전범 민중재판 발기인 총회에 꼭 올라오시겠다고 약속을 했다. 순례 기간 들은 말 가운데 무엇보다 가장 힘이 된 말. 여수에서 공주, 그 길 또한 만만치 않다. 일찍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아침을 서둘러 단원들이 묵고 있는 쪽으로 갔다. 단원들은 이틀을 머무는 동안 계속 여수의 순례 프로그램을 준비한 모임의 한 분이 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들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서둘렀는지 수사님과 내가 짐을 챙겨 그 식당으로 갔을 때 단원들은 아직 아침 식사를 하기 전이었다. 상에 둘러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밥을 들고 오는 건 식당 부엌이 아니라 바깥으로 난 문이었다. 동화읽는 어른 모임 선생님 한 분이 밥솥에 반찬 보따리를 들고 들어왔다. 아아, 아침은 이렇게 집에서 지어서 가지고 왔구나. 신부님이 묵은 김치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지난겨울에 묻은 독에서 김치를 퍼왔다고 했다. 일부러 상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데, 그런 소리만으로도 입에

정부의 개방정책, 위험수위 넘었다

정부의 개방정책, 위험수위 넘었다

교육, 의료, 문화영역의 주체들이 정부의 무분별한 ‘서비스 부문의 개방화/시장화’에 맞선 공동투쟁을 선언했다. 손지희 범국민교육연대 정책실장은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공성 영역에 무분별한 정부의 정책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오늘 이 자리는 정부정책의 반대를 선언함과 함께 공동투쟁을 결의하는 자리이다. 그 시작의 의미로 공동기자회견을 갖는다”라며 기자회견이 갖는 의의를 밝혔다. 정부 정책 이대론 안 된다 원영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교육과 의료, 문화는 공공의 권리이며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중의 권리는 지켜져야 하며 공공영역에 기업의 이윤논리가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원영만 위원장은 “현 정부는 공교육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비율을 높이며 스크린쿼터와 문화주권을 지키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했다. 그럼에도 공약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시장화와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날 기자 회견에서는 연대의 의미로 기자회견문을 교차낭독했다. 천문호 건강세상을위한약사회 대표는 “시장화 도입의 문제는 민간의료보험의 도입과 건강 서비스 평등권의 침해 문제로 구분될 수 있다”며 “민간의료보험 도입으로 인해 우리 나라 의료 철학이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의 건강보장의 원리가 깨지고 자본의 논리에 의한 건강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사회화와노동] 9.11 이후 3년,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회화와노동] 9.11 이후 3년,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9.11 이후 3년, 세계는 더 불안해졌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공격사건 이후 미국은 미국민들의 공포에 기반하여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했으나, 그것은 9.11과는 별 상관이 없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었다. 또한 국제적인 반테러전선을 세운다는 명분 하에 미국의 동지가 될 것인지 아닌지를 세계에 강요하여 군사행동에 나서게 하였다. 각 국에서는 경쟁적으로 ‘대테러법’이 제정되었다. 미국 국내에서는 ‘애국법’을 제정하고 ‘국토안보부’를 만든 결과, 반테러와 안보를 빌미로 광범위한 인권침해 행위가 합법화되었다. 공항의 안전검색이나 출입국 심사도 대폭 강화되어 아랍·아시아계 등 외국인에 대한 감시와 차별이 심해졌고, 무장한 경찰들의 검문검색은 미국 전체를 거대한 경찰 감시국가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미국의 15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이라는 직책과 테러 관련 정보 총괄, 대테러 정책조정을 담당할 대테러센터까지 신설하기로 하였다. 군사전략 측면에서는 ‘선제공격론’을 채택하여 세계 어디든 공격할 수 있다는 협박을 선포하였다. 미국의 이 모든 행위는 전례없이 세계적 무질서와 극단적 폭력을 증가시켰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스페인, 체첸, 러시아 등에서 ‘자살폭탄 공격’, ‘인질극’, ‘보복공습’, ‘참수’ 등으로 상징되는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시는 “아프가니스탄과

바그다드의 하늘

바그다드의 하늘

여수, 전쟁반대 이야기 (2004.09.12) 여수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여름 바그다드 함락으로 이라크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국으로 전쟁 이야기를 하러 다니던 때 처음 다녀갔다. 그 때는 함께 다니는 팀도 없었고 혼자 손수 운전을 해서 다녔는데 지금보다 일정이 더 빡빡해서 열심히 자동차를 몰고 다음 장소로 움직여도 강연 시간에 늦곤 했다. 여수에도 늦어 도착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세 시간 가까운 이야기, 이야기 한 번 하고 나면 몸에 기운이 다 빠지곤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따로 자리를 마련해준 분들하고 밥 한 끼 하지 못하고 다음 도시로 이동. 그 때는 그렇게 전쟁 이야기를 가지고 몇 시간 다녀갈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왔다. 이번에도 그 때처럼 전국으로 도는 길에 들른 길이고, 그 때처럼 전쟁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 지난번과 다르다면 이번에는 밥을 먹지 않는 몸으로 왔다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식구들과 같이 왔다는 것. 여수 바다도 참 예쁘다고 하던데 바다가 보고 싶었다. 조금 시간이 한가하다면 바다에 나가봤으면 했다. 몸 뿐 아니라 머리도, 마음도 쉬게 하면서 한

[문화사회] [폐지! 국보법] (1) 폐지가 ‘국가안보’ 이다.

[문화사회] [폐지! 국보법] (1) 폐지가 ‘국가안보’ 이다.

편집자 주>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와 필요, 그리고 폐지 이후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또한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개정론’, ‘형법보완론’과 ‘대체입법론’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다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넘어 모든 자유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괜찮은 사회’에 대한 모습을 그려볼 것입니다. 이번 기획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향한 뜨거운 열기에 보탬이 되는 기획이었으면 합니다. 1. <국가보안법> 폐지가 ‘국가안보’ 이다. 2. 국가보안법, 그 침탈의 역사 3. 형법 보완과 대체 입법 논의 4.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문화사회를 말하자. 사진 : 자유민주주의수호비상시국선언의 모습(출처:독립신문) 수구반동으로의 회귀와 국가전복을 동시에 선동하는 과격한 깃발이 광장 한 복판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펄럭인다. 민주적 질서를 뒤엎는 군부 쿠데타를 통해 민주적 질서를 회복하자는 말장난이 아무런 제재없이 공적 매체에 실린다. 이에 대한 호응으로 ‘군부쿠데타가 안 되는 5가지 이유’가 친절히 설명된다. 국가안보와 직접적 연관을 맺는 군의 보고는 허위로 이뤄진다. 총을 못쓰게 할까 그랬다는 변명은 철없음을 넘어 슬프다. 현역 장성들은 서슴이 없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풍경’이다. 국가의 보안이 연일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국가를 뒤엎자는데도 어느 매체 하나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가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전쟁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가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전쟁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얇은 비옷을 걸치긴 했지만 우산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짐 가방이며 옷이 추적추적 젖었다. 하루 이틀 볼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고 하는 거라면야 그깟 비 좀 맞는 게 문제도 아니겠지만 계속 움직여 다녀야 하니 이 비는 그리 반갑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몸이 괜찮다, 좋다고야 말하곤 하지만 그런 말이야 크게 아프지 않다는 뜻이지 기운이 없다. 오히려 평소처럼 그대로 기운이 있다고 하면 그게 이상한 말이다. 그래서 아쉬웠다. 절 안을 잘 둘러보고 싶었는데, 절 뿐 아니라 절 둘레 마을과 산도 천천히 거닐고 싶었는데 그런 것을 못했다. 나중에는 우산을 빌려 쓰고 나가도 머리와 어깨 정도만 겨우 가릴 뿐 바람 섞인 비에 온 몸이 다 젖을 정도였다. 우리는 함양에서 아침 일찍 떠나 실상사로 왔다. 다 젖은 채로 짐을 풀어 놓고 바로 큰 법당으로 옮겨 실상사에 있는 작은 학교 아이들을 만났다.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오전 공부만 있는데 그 가운데 세 시간 동안 우리 순례단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기사 9,785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