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호 열사의 어머니 전인숙 씨가 충북 영동병원에 마련된 아들의 빈소를 찾은 건 3월 3일이었다. 전 씨는 아들의 영정사진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가여워하다가, 그렇게 모질 게 가는 자식이 어디 있냐며 원망도 했다.
경찰이 서울 모터쇼에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던 현대기아차 노동자 7명을 연행했다. 연행 과정에서 노동자 1명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Be The Reds! 티셔츠가 부끄럽지 않았던 2002년. 뜨거운 여름을 달궜던 붉은 악마의 열기는 겨울이 와도 식을 줄 몰랐다. 월드컵 때 미처 분출하지 못했던 애국심은 대선판에서 뜨겁게 타올랐으니. 이회창과 노무현의 박빙 승부는 마치 한국 대 스페인전의 승부차기 순간처럼 심장을 바운스하게 만들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렇지만 왠지 새로워 보인다. 정권교체라는 네 글자가 주는 힘이다. “잊혀 지죠. 시간이 지나면.” 참여정부 시절, 동료를 잃은 어느 노동자가 말했다. 촛불을 타고 온 문재인 바람은 그만큼 위협적이다. ‘노무현의 남자’라는 꼬리표뿐이던 그가, 4년 재수 끝에 ‘젠틀 재인’으로 돌아왔다.
순회투쟁에 참가한 동지들은 전국의 투쟁사업장 동지들로, 박근혜 게이트로 달아오른 퇴진투쟁 이전부터 거리에서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며 투쟁했던 이들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거리에 남아있을 동지들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파면됐지만 구체제의 위력은 여전하다.
파업 11차를 맞은 유센로지스틱스코리아 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를 찾아 파업 후 벌어지는 불법 대체인력투입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해 교묘히 벌어지고 있는 대체 인력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3년 1월 9일 새벽. 그는 아내와 딸의 배웅을 받으며 여느 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검은색 프린스를 단조공장 쿨링타워 화단 옆에 세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닐곱 개의 담배를 태웠다. 전화를 만지작거리다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배가압류로 6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했을 때 도와줬던 사람이었다. 아내에게 건넨 마지막 생활비 45만원도 그가 건넨 돈이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동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 말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어떤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트렁크를 열고 휘발유 한 통을 꺼냈다. 차가운 휘발유를 몸에 끼얹었다. 그리고는 불을 붙였다.
“역사를 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정치인을 믿을 이유가 없지요.” 10여 년 전 85호 크레인으로 식사를 날랐던 한 노동자가 말했다. 진보란 무엇인가. <워커스>는 10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가 노동자, 농민을 만났다.
시민사회단체가 LG유플러스 고객센터 LB휴넷 대표를 상대로 현장실습생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고발했다. LB휴넷은 1월 23일 전북 전주시 아중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홍수연 씨가 일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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