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

고공농성 7일, 지상으로…

고공농성 7일, 지상으로…

2일 오후 5시 10분, 4명의 고공농성자들이 지상을 밟았다. 이들이 50미터 상공 타워크레인에 오르던 과정처럼 이들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과정 역시 험난했다.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험난했던 고공농성자들의 지상 밟기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험난했던 고공농성자들의 지상 밟기

완전 저희 목표에는 못 미치는 결과 속에 내려 와서 죄송합니다. 이미 각오는 했기에 떨리는 것 없는데, 다만 추운 데 있다가 내려와서 몸이 확 달아 오르네요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고공농성 7일, 4명 비정규직 노동자 지상으로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고공농성 7일, 4명 비정규직 노동자 지상으로

고공농성을 통해 “민주노총 총파업의 목표가 ‘비정규개악안 유보가 아닌 철회와 비정규직권리입법쟁취’임을 대내화하는 성과... 26일 비정규노조 최초의 정치총파업 실현과 고공농성의 성과를 안고 다시 한 번 전면 총파업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것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민주노총 결의대회 후 고공농성 지지 행진, 격렬한 몸싸움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민주노총 결의대회 후 고공농성 지지 행진, 격렬한 몸싸움

고공농성 4일차로 접어든 29일, 민주노총의 국회방청 투쟁 및 간부상경 결의대회가 끝난 오후 5시 30분 전국비정규연대회의, 전노투 등을 위시한 500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고공농성장이 보이는 국회 동문 건너편으로 집결했다. 이 자리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민주노총의 즉각적인 재파업 돌입’을 강력히 촉구하고 고공농성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경찰과 한동안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딱 한걸음만 더 가보고 싶습니다” 강성신 현대자동차민투위 의장은 “총연맹의 깃발이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다. 항상 투쟁을 앞두고 내부에 적은 지도부들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26, 29일 정말 맘먹고 싸움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도부는 6시간 부분파업이라는 말도 안되는 결정을 내렸다”며 지난 26일 부분파업으로의 선회에 대해 강력히 바판했다. 이어 강성신 의장은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것이냐. 반드시 유실된 총파업의 동력을 바로 세워 내자“라고 말하고 ”동지들과 울산에서도 이 투쟁을 힘있게 조직하겠다“고 약속했다. “무기력하게 내려오기 위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어 조성웅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은 “저 사지에 우리 동지들을 올려놓고 이미 우리는 판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고 “저 동지들은 이렇게 무력하게 내려오기 위해

[고공농성 3일]”저 동지들이 총파업의 깃발이다”

[고공농성 3일]”저 동지들이 총파업의 깃발이다”

"저 위의 동지들 단 한 사람이라도 무사히 못 내려오면 내가 죽는다"며 "국회와 악수하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고공농성 지지방문 온 비정규노동자들 연행

고공농성 지지방문 온 비정규노동자들 연행

구권서 시설노조 위원장, 이남신 서울본부 부위원장, 이용식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등 16명이 연행되었다.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속보]비정규직 4명 국회 크레인 고공농성 돌입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속보]비정규직 4명 국회 크레인 고공농성 돌입

<3신: 오후 5시 40분>100여 명의 시위대 고공농성 지지를 위해 국회 진입시도 26일 오후 5시 40분 경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를 끝내고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해방 학생연대, 전해투, 전노투 소속 노동자 등 100여 명의 시위대들이 국회 앞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에 돌입한 노동자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국회 옆 동문 방향으로 진입을 시도 하고 있으나 경찰 병력이 원천봉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위대가 국회 동문으로 향하는 도로를 건너기 위해 진입을 시도하는 도중 시위대들과 이를 막는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잠시 있었고 참석자들은 휴대폰 액정 화면을 열어 연대의 빛을 보냈다. 이에 고공농성자들도 불빛으로 화답했다. 이후 시위대는 자진 해산했다. <2신: 오후 1시 30분>농성장 앞 지지방문 온 비정규 노동자 16명 연행 오후 12시 40분 경부터 타워크레인 조합원을 비롯한 15여 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한 비정규 노동자들을 격력하기 위해 속속 모여들었다. 조합원들은 “위에서 죽을 각오로 농성에 임한 만큼 우리도 이 아래서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며 연대발언을 이어갔다. 한편 농성장인 공사장 옆 동문으로 연대해 오려는 10여 명의 조합원들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실갱이가 벌어졌고, 1시 30분 경

[현장리포트]’무엇이 한 노동자를 35m의 절망 앞에 서게 했는가 ‘

[현장리포트]’무엇이 한 노동자를 35m의 절망 앞에 서게 했는가 ‘

‘김주익 지회장이여…미안합니다…’ 고인이 돌아가시진 3일째, 35m의 고공 크레인 앞에 선 한진 중공업 조합원들은 하늘을 향해 울먹였다. 한진중공업 회사측은 지난 7월 파업 이후에 단 한 차례의 교섭에도 참여하지 않은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에게 ‘법적절차 착수서’를 보내고, 전화협박 을 일삼으며 손배,가압류를 통한 노동조합 압박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고공 크레인 농성 129일째, 한 노동자는 35m의 절망 앞에서 변한 것이 없는 하늘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남은 것이라곤 한달에 80여만원의 월급봉투와 손배, 가압류에 저당잡힌 130일째의 날 그는 마지막으로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그리고 35m 아래의 우리들에게 말했다. 크레인 85호에서 투쟁의 광장을 지키겠노라고, 노동조합의 투쟁이 승리할때까지 내가 머물곳은 단지 이 뿐이라고.. 35m, 크레인 85호, 한 노동자의 절망은 아직도 우리곁에 세워져 있다.

시그네틱스 목숨걸고 2차 한강고공시위

시그네틱스 목숨걸고 2차 한강고공시위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이 지난 5월20일 한강대교 고공시위이후 9일만에 다시 한강 대교 아치 위로 올라갔다. 20일은 한 명이 올라갔지만 이날은 (29일) 네명의 노동자들이 한강 대교 4번과 5번 아치 위에 두 명씩 올라갔다. 이날 아치 위에 올라간 시그 여성 노동자들중 세 명은 모두 아이를 두 세명 키우고 있는 어머니들이었다.

시그네틱스노조한강대교고공농성

시그네틱스노조한강대교고공농성

5월 20일 오후 4시 금속노조 한국 시그네틱스 지회의 이모 조합원이 “시그문제 해결없이 월드컵도 어림없다”는 현수막을 들고 시그네틱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한강대교 고공시위를 진행했다. 고공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한강대교 위에서는 40여명의 시그네틱스 지회 조합원들이 “시그 문제 해결하고 노동탄압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영풍자본 박살내고 파주이전 쟁취하자”, “내가 만든 파주공장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선전전을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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