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책

[낡은책] “운명…. 그 이름 아래서 만이 사람은 죽을 수 있다.”

[낡은책] “운명…. 그 이름 아래서 만이 사람은 죽을 수 있다.”

이병주는 몽양의 좌절은 이 나라 지식인의 좌절이며 몽양과 더불어 상정해 볼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의 말살이라고 개탄했다. <관부연락선>의 맨 마지막 문장은 좌절한 지식인의 울분을 최상의 표현으로 마무리한다. “운명.... 그 이름 아래서 만이 사람은 죽을 수 있다.”

[낡은책] 70년대 여성노동자의 삶

[낡은책] 70년대 여성노동자의 삶

저자가 1976년 한국노총 화학노조 산하의 대일화학 B포장반에서 당시 냉면 한 그릇 값 470원도 안되는 일당 400원을 받을 때, 바로 그 화학노조의 기획실장을 맡았던 사람은 얼마 전까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을 지냈다.

[낡은책] 우리 논쟁 수준이 얼마나 천박했던가

[낡은책] 우리 논쟁 수준이 얼마나 천박했던가

이 책에는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있기 하지만 우리의 논쟁 수준이 얼마나 천박했는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4권의 주제인 ‘사회’는 해방 이후 최초의 한국사회구성체론(사구체)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사구체 논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김부식의 고려 시대가 최초였겠지만.

[낡은책] “멍한 상태로 세상에 걸어나온 한국”

[낡은책] “멍한 상태로 세상에 걸어나온 한국”

1895년 청일전쟁으로 폐허가 된 평양을 본적이 있는가. 1895년 1월 패배한 동학혁명의 주인공 김개남의 목을 끌고 다니며 시체의 입에 흙을 집어넣는 서울 시민들의 꼴을 본적이 있는가. 지독한 근시에 병약했던 순종의 세자 때 얼굴을 본적이 있는가.

[낡은책] 유학가 한겨레쯤에 허접 글이나 쓰는 것들이 정희성을 알리오

[낡은책] 유학가 한겨레쯤에 허접 글이나 쓰는 것들이 정희성을 알리오

<저문강~>에 나오는 또 다른 노동시 ‘들리는 말로는’ 역시 정희성답다. 이 시는 부산 사하구 괴정동이 무대다. 70년대 항구도시 부산의 여성노동자의 삶을 그린다. “시골서 올라와 이 막벌이판에서 보세공장 실밥마냥 떠돌면서” 살았던 여성노동자.

[낡은책] 레닌은 언론인이다

[낡은책] 레닌은 언론인이다

우리는 레닌을 혁명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레닌은 언론인이다. 부르주아로 태어나 무정부주의 혁명가로 죽어간 신채호도 가는 곳마다 신문을 만든 언론인이다. 베트남의 호 아저씨도 1942년 장개석의 감옥에 투옥돼 13개월 동안 무려 18개 교도소를 옮겨 다니면서도 글을 썼던 언론인이다.

[낡은책] 허구화된 제도, 희극화한 선거, 무기력한 의회

[낡은책] 허구화된 제도, 희극화한 선거, 무기력한 의회

<민주주의의 자살>은 70년대에 나와 1980년에 한국어로 번역된 낡은 책이다. 홍 씨가 극찬했던 바로 끌로드 줄리앙이 썼다. 저자 끌로드 줄리앙은 1925년에 태어나 미국 노틀담 대학을 나와 <르몽드> 외신부장을 거쳐 이 책을 쓸 당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이었다.

[낡은책] 그들은 조선일보가 정론지였다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낡은책] 그들은 조선일보가 정론지였다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이 책이 나온 93년을 기준으로 32명의 조선투위 구성원들의 행적은 대충 아래와 같다. 기업으로 간 사람이 12명(37.5%)으로 가장 많았다. 12명 가운데 절반인 6명은 재벌기업에 들어갔다. 다음으론 다른 언론사로 옮긴 사람이 9명이었다. 한겨레가 3명, 한경 2명, 문화일보 2명으로 모두들 그저 그런 보수언론에 몸담고 있었다. 매우 특별한 직업으로 옮긴이는 집권 민자당 국회의원과 유흥업중앙회 사무총장이 있었다.

[낡은책] 조봉암 사법살인과 진보당의 실체 (2)

[낡은책] 조봉암 사법살인과 진보당의 실체 (2)

1958년으로 옮겨와 죽산을 죽으로 내몬 ‘진보당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이 책 제1부 ‘정치공작 그 수수께끼’와 3부 ‘사신의 그림자’, 4부 ‘형장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을 간추려 소개한다.

[낡은책] 변절 지식인 조봉암과 비극의 뿌리 조선공산당

[낡은책] 변절 지식인 조봉암과 비극의 뿌리 조선공산당

죽산은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사회주의 사상으로 흘러 조선공산당 창당의 산파 역할을 했다. 조봉암은 1920년대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이자 지도자였다. 그 때문에 7년의 옥고도 치렀다. 죽산은 8.15와 함께 공산주의를 청산했다. 그는 공산당과 대결해 싸웠고 건국에 헌신했다. 그는 초대 농림장관이었고 2대 국회부의장이었다. 50년대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박사와 대결했다. 죽산은 50년대 이 나라 진보세력을 대표했다. 따라서 보수진영에겐 위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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