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4차 범국민행동이 19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백남기 투쟁본부, 민주노총 등 1503개 시민사회의 연대체인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8시 30분 현재 서울 집회에 65만, 서울 외 지역 35만 등 전국적으로 1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범국민행동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 등 박근혜와 최순실을 향해 여론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슬며시 궁금해집니다. 박근혜는 어떻게 한순간에 버린 카드로 전락한 것일까. 최순실이 권력의 실세이긴 한 걸까. 재벌의 청부사업인 노동개악, 그 시범타인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에 맞선 철도파업은 한 달이 넘었고, 이제 재벌은 강제모금의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짜고 있습니다. 진짜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볼 때입니다.
대내외적 경제상황이 경고등을 켰다는 점에서도 상황이 위중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20년이나 지나버린 1997년 경제위기 사태의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1997년과 2017년의 닮은꼴을 찾고자 한다. 닮은 듯 아닌 듯 보이는 일련의 과정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긴박한 정세를 헤쳐 나가는데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세력이 기획했든, 배후가 누구든, 지금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대부분 상황이 조선일보의 프레임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아니, 조선일보만이 이 국면을 관통하는 거대한 프레임을 갖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를 숨기지도 않고, 수구세력과의 절연을 통한 보수의 재구성, 나아가 ‘보수정권 재창출’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광화문 문화제가 끝나고 10시50분 경 차벽 앞에 있던 경찰병력이 갑자기 차벽 뒤로 빠지면서 상황은 더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시민과 학생들은 경찰 차벽으로 다가가 평화시위 보장하라며 차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때 30여명의 학생들이 차벽 위로 올라갔고, 일부는 차벽을 넘기도 했다
민중총궐기와 박근혜 퇴진 청와대 포위 국민행진을 마친 100만여 명의 참가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를 가졌다. 문화제에는 김민화, 연영석, 전인권, 조PD, 정태춘, 이승환 씨 등 문화예술인과 단체가 출연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노래와 구호를 외쳤다. 100만 참가자는 박수와 촛불, 함성과 박근혜 퇴진 구호로 호응했다.
서울 시청광장에서 청와대 포위 행진을 시작한 시민들은 오후 7시 반경 100만을 이뤘다. 이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최대 규모로 광화문 등 서울 도심은 전국에서 모인 시민으로 마비됐다. 시청광장에서 민중총궐기 대회를 마친 시민들은 오후 5시 15분경부터 행진에 나섰다. ‘청와대 에워싸기 국민대행진’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55만명이 시작해 100만명으로 확대,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성난 민심이 광장에 모였다. 주최 측 추산 65만 명(오후 5시 30분 기준)의 시민이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광장 등에 나왔다. 민중총궐기대회 사상 가장 많은 인파다. 경찰은 16만 명 이상이라고 집계했다.
8,000명이 넘는 시민이 9일 저녁 청계광장에서 0도의 날씨에도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새누리당의 거국중립내각 구성, 야당의 하야 민심 외면으로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촛불로 분출했다.
일주일 차이로 두 개의 재단이 나란히 설립됐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9월부터 청년희망재단 기금 모금의 군불을 지폈고, 재벌 총수들의 기부금 출연 시기도 미르재단보다 빨랐다. 시기적으로 놓고 봤을 때, 박 대통령이 직접 기업 회장과 독대해 모금을 요청했다면, ‘미르재단’ 보다 ‘청년희망재단’일 가능성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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