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7호]식민지 민중의 고혈을 짜는데 빨대를 들이댄 사민주의자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7호]식민지 민중의 고혈을 짜는데 빨대를 들이댄 사민주의자들

시리즈 순서 1) 개관 – 역사의 범죄자 혹은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민주의자들의 역사 2) 학살의 역사 – 독일에서 벌어진 사민주의자들에 의한 노동자 도살 3) 이중대의 역사 4) 식민지 민중의 고혈을 짜는데 빨대를 들이댄 사민주의자들 5) 여성문제 6)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7) 사회적 분업과 직접 민주주의 8) 산별노조 초기 사회주의자,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사민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맑스주의자들은 20세기에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각국이 제국주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사실상 유럽 식민주의자들과 정치적으로 대립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오히려 제국주의 단계로 접어든 식민지 본국의 노동자들의 경제적 번영에 힘을 쏟으면서, 식민지에서 신음하고 있는 제 3세계 민중의 고통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었다. 형식뿐이었던 식민지 반대 1900년 제 2인터내셔널 파리대회는 영국 제국주의가 백인 정착민들이 세운 공화국을 공격한 보어전쟁(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중에 개최됐는데, 대회에서 보어전쟁을 대회의제에서는 물론이고, 어느 하나 입에 올린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선구자들이 유럽인들의 식민정책을 고발하는 출판물을 쏟아내고 있었고, 맑스주의가 사회주의 정당에서 점점 더 보급되면서, 맑스주의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인간해방의 정신이 사회주의자들에게 인식되었다. 이러한 자각은 사회주의정당 내부에서 식민지 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7호]그의 콧물감기가 러시아를 구했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7호]그의 콧물감기가 러시아를 구했다?

지치지 않은 정복자 나폴레옹. 그는 1769년 프랑스의 식민지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통치에 협력한 아버지 덕분에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유학하여 병사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그는 지독한 사투리 때문에 본토 귀족자제들로부터 ‘코르시카의 촌놈’이라고 놀림을 당하며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졸업 때 성적은 58명 중 42등. 하지만 지독한 피해의식 때문에 출세욕만큼은 단연 1등이었다. 나폴레옹이 사관학교를 마치고 포병장교로 근무하던 1789년에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바스티유 감옥이 시민의 손에 점령되었다. 당시 스무 살의 나폴레옹은 그런 역사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혁명 대열에 끼어들지 않았다. 1792년 8월, 국왕 루이 16세가 시민의 손에 끌려 다니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도 나폴레옹은 ‘천민의 자식들’이니 ‘머저리 같은 놈’이니 하며 시민과 국왕을 싸잡아 비아냥거렸다. 그러던 나폴레옹이 1793년에는 당시 집권자로 공포정치의 대명사가 된 로베스피에르에게 접근하여 혁명 정부의 장교가 된다. 그리고 왕당파의 반란을 격파한 공로로 스물다섯 나이에 이탈리아 원정군 포병 사령관이 되었다. 부르주아 세력 등에 업고 황제 자리에 도전 그러나 1794년 7월, 로베스피에르 일파가 제거되고 의회가 권력을 장악하는 바람에 나폴레옹은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장교의 지위를 박탈당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미국발 세계공황과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건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미국발 세계공황과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건설

이미 수년전부터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예측되던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여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확대되고 있다. 9월 15일 미국의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에 인수되었다. 9월 29일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법안이 미 하원에서 통과되었지만 금융위기는 진정되고,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 등 전세계로 확대되고 있으며, 달러를 확보하려는 외국자본의 철수로 한국에서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실물, 생산위기로 옮겨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연일 국내외 언론에 실리고 있지만 이미 현실은 금융위기+실물, 생산위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극소수의 자본가들과 그 선전가들만이 직감적으로 인정할 뿐, 절대다수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과잉생산, 과잉자본 공황의 한 발현일 뿐이다. 금융위기가 천문학적인 구제금융투입 결정에도 불구하고 진정되지 않고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실물경제, 생산이 이미 깊숙이 과잉생산, 과잉자본공황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 거품’으로 불리듯이 현재의 거품은, 2001년 IT공황이 확대되어 미국경제가 경착륙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린스펀이 취한 정책에 의해 조장되었다. 당시 그린스펀은 IT부분에서의 과잉투자에 의해 초래된 공황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속적으로 금리인하조치를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맑스주의 위기론과 신자유주의 금융위기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맑스주의 위기론과 신자유주의 금융위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충격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와 공황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85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이 미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과연 안정될 것인지, 금융시장의 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발전하는 건 아닌지 금융시장에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그러나 당면한 위기와 공황을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도대체 어떤 위기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맑스주의 위기론에 입각한 여러 논자들조차 위기의 원인과 성격을 혼란스럽게 말하기 때문이다. 맑스의 주기적 과잉생산공황 우선 맑스가 위기를 말할 때, 그것은 10년마다 찾아오는 주기적 과잉생산위기(=주기적 과잉생산공황) 또는 주기적 과잉축적위기를 지칭하였다. 이미 <공산당선언>에서 맑스는 이 위기가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라는 것, 세계적 규모에서 발생하는 위기라는 것, 그리고 근대적 생산력과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의 모순의 표현이라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그런 점에서 체제적 위기와의 관련을 포착하였다. 즉 맑스에게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는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의 표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이행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위기였다. 이 점이 위기에 관한 맑스의 관점을 반성, 변화시킨 지점이었다. 맑스는 전자의 관점에서 사회혁명은 새로운 위기의 결과로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공황관이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나쁜 자본주의는 가고, 좋은 자본주의여 오라?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나쁜 자본주의는 가고, 좋은 자본주의여 오라?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그 원인과 대안에 관한 논평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메이저언론과 소위 진보인사들에게서 자주 거론되는 말이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실패’이다. 금융위기가 발발한 주간인 9월19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라는 활자가 크게 찍혔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대형 투자은행들의 무절제한 수익극대화에서 비롯”됐고, 이어서 관련기사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은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시장에 적절한 규제를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한겨레는 9월23일, 25일, 27일 세 차례에 걸친 특집에서 “자본의 배분을 담당하는 금융까지 시장원리에 내맡기면서 과도한 금융자본의 팽창을 가져왔”고, 이것이 “금융위기의 씨앗을 잉태했다”며,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를 주장했다. 한편 이러한 종류의 논평들에서 자주 인용되는 경제학자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인데, 그는 “자유시장과 금융자유화의 이데올로기는 끝났다”며, 금융시장 “규제시스템의 전면적인 재설계”를 제안하고 있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란 한 마디로, 현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이 주도한 금융의 자유화 및 세계화에 힘입은, 고삐 풀린 금융의 과대성장과 폭주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이 주도하는 ‘나쁜’ 자본주의 대신, 적절하게 통제됨으로써 금융이 실물경제의 보조역할에 충실하게 되는 ‘좋은’ 자본주의가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를 미국식 금융모델의 한계로 호도하여 현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이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이다

케인즈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대체되었나? 심각한 경제상황에 직면하여 각종 언론들과 학자들은 미국중심의 금융질서, 신자유주의가 이제 몰락한 것이라는 주장을 마구 쏟아내고 있으며, ‘국가’의 복귀를 요청하고 있다. 10년 전 IMF 위기를 맞으며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던 시절과 비교하면 천지차이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위기이기 때문에 국가 중심의 케인즈주의가 복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현재 위기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대안이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여전히 케인즈주의의 시대였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를 대립적인 것으로, 자본주의의 서로 다른 단계로 파악하지만, 실제로 신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는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말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는 통화주의에 밀려난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상 21세기 들어서까지 세계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방법은 케인즈주의의 발상이었다.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즈가 주장한 것은 과잉생산공황 시 발생하는 수요와 공급의 차이를 인위적인 수요확대로 저지한다는 발상이다. 케인즈는 이 인위적 수요확대의 방식으로 재정, 금융정책을 제안하였다. 1970년대 심화된 위기로 케인즈주의의 한계가 드러나자, 통화주의자들은 금리인상 등을 통한 긴축정책을 주장하였다. 실제로 통화주의자의 정책은 1979년 당시 연준 의장인 폴 볼커에 의해서 실행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2MB의 감세정책, 부동산경기 진작책은 한국경제와 민생을 나락으로 이끌 것이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2MB의 감세정책, 부동산경기 진작책은 한국경제와 민생을 나락으로 이끌 것이다

경제위기 돌파구를 찾기 위한 2MB의 소용없는 몸부림 9월 초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은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지만 위기는 아니다”라며 현실로 다가온 위기를 애써 부인했다. 하지만 뒤이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거세지자 정부 역시 어쩔 수 없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경제활성화를 목표로 정부가 빼어 든 대표적인 카드는 향후 5년 동안 26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정책과 대규모 주택공급,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통한 부동산경기 진작책이다. 정부가 발표한 2008년 세제개편안은 소득세, 법인세, 부동산세 등의 대대적 감면을 포함한 것으로 -종합소득세율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2% 인하 -법인세율 3~5% 인하 -양도소득세 고가주택 기준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완화 -상속·증여세율 인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감세를 통해 투자와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며 감세가 전체 국민의 팍팍한 삶에 조금이라도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감세의 혜택은 대부분 고소득자와 대기업에게 집중되어 있다. 게다가 요동치는 경제상황에 맞서 안정적인 현금자산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팽배한 현 시기에 감세로 혜택을 본 사람들과 기업들이 곧바로 절감된 세금을 투자에 사용할 리 없다. 결국 세입감소로 인해 빈곤·취약계층에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경제위기, 국민연금기금 5조2천억원 손실 누구의 책임인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경제위기, 국민연금기금 5조2천억원 손실 누구의 책임인가?

1929년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의 최대 위기인 미국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시장에 대한 규제철폐와 감세로 대표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비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자본주의의 최대의 약점인 경기변동과 주기적 공황에 따른 삶의 파탄을 막기 위해 고안된 공적 연기금이 국내외 주식 등에 투자했다가, 국민연금 5조2천억원, 고용·산재보험 3천4백억원의 거액의 적자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와 대안을 모색하는 중요한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불안한 고용과 암울한 미래 자본주의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경쟁에 의하여 산업을 발전시키는 장점이 있으나 필연적으로 생산의 무정부성에 의해 과잉생산을 하게 되고, 그 과잉생산을 폭력적으로 정리하는 공황을 주기적으로 겪는다. 이러한 불안정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보완하는 제도로, 고용안정과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이해에 따라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은 점차 축소되거나 폐지되어 왔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광풍은 극심한 변화에서 사회안전망으로 작용하여야 할 마지막 수단인 국민연금, 산재·고용보험마저도 그야말로 투기의 장에 끌어들여 파탄을 내고 있는 중이다. IMF이후 우리사회는 국가경쟁력 확보라는 미명하에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노동유연화를 지상목표로 구조조정,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만평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만평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공장/직장위원회 운동의 역사적 경험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공장/직장위원회 운동의 역사적 경험

역사적으로 노동조합과 병행하여 등장한 작업장, 혹은 기업단위 노동자들의 조직은 영국에서는 직장위원운동,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공장평의회, 프랑스에서는 공장위원회, 러시아 혁명 당시의 공장위원회 등이 있다. 공장평의회가 1차대전 직후, 기존국가의 해체과정에서 등장했고, 혁명적 에너지의 분출이었다면, 영국의 직장위원운동(숍 스튜어트)이나 프랑스의 공장위원회는 노동조합운동의 부분, 혹은 보완적 장치가 특정한 시기에 급진화의 길을 갔던 것으로 구별된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들은 공히 노동조합운동과의 긴장을 초래했고, 그 속에서 노동운동의 다채로운 실천이 전개되었다. 그런 긴장은 기존의 노동조합이 변화된 상황에서 제 역할을 못하거나, 혹은 산별노조의 질서가 현장노동자의 욕구와 이해를 대변하는데 한계에 봉착하는 등과 같은 모순에서 비롯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운동이 계급운동의 폭발적인 성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벌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이러한 작업장단위의 노동자 조직이 하나의 제도로서 정착되었다. 영국에서처럼 산별노조질서에서 단위노조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거나, 프랑스처럼 8개이상의 민주노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현장단위의 단결의 수단, 혹은 교섭창구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 극복을 내세웠으나 너무 빨리 주변화되었던 영국의 직장위원 운동 영국의 직장위원운동은 1930년대에 들어서 그 빛을 발했는데, 이는 당시가 대공황시기라는 것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직장위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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