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삼성족벌 이씨 일가 몸통 이건희에 대해 총체적 면죄부 발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삼성족벌 이씨 일가 몸통 이건희에 대해 총체적 면죄부 발부

지난 7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민병훈 부장판사)는 경영권 불법승계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한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하고, 차명주식 거래를 통한 조세포탈 혐의는 일부만 유죄로 판단했다. 삼성 지배주주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계열회사들에게 천문학적 손해를 가하고, 막대한 규모의 차명계좌 운용을 통해 금융거래질서를 위반함과 동시에, 막대한 규모의 세금을 포탈한 이건희 전 회장 등 삼성그룹 경영진의 범죄행위에 대해 사실상 총체적인 면죄부를 발부한 재판부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재벌총수 일가의 범죄에 대한 봐주기 판결들을 통해 사법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던 사법부는 드디어 한국의 재벌총수 일가가 치외법권 지대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이는 법원 스스로가 한국의 사법부가 더 이상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삼성족벌은 ‘반국가 단체’이다 삼성재벌의 비자금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서린 돈이다. 삼성SDI에서 하루에 17시간, 한 달 518시간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고용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이젠텍분회, 아직도 끝나지 않은 투쟁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이젠텍분회, 아직도 끝나지 않은 투쟁

8월 11일 이른 아침, 경기도 평택시 모곡동의 (주)이젠텍 1공장 앞에는 3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해고무효소송의 승소를 장담하며 승리를 낙관하고 있는 평택안성지역노조의 MAT지회, 경기금속지역지회 임원들, 평택안성지구협 임원들, 이들은 3년간 파업투쟁을 승리로 마감하고 현장으로 복귀하는 금속노조 경기금속지역지회 이젠텍분회 조합원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다. 하지만 투쟁 1083일 만에 현장으로 돌아가는 이젠텍분회 조합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3년간 함께 투쟁했지만 현장으로 같이 돌아가지 못하는 해고자들 때문이다. 2005년 설립된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이젠텍분회는 설립초기 관리자 5명의 이름으로 신고 된 유령노조 때문에 복수노조 시비에 휘말려 단 한차례의 교섭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이젠텍 자본은 복수노조를 핑계로 단체교섭을 거부하면서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고, 용역경비와 사무관리직을 동원하여 폭행을 가하는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였다. 하지만 2006년 3월 16일, 평택지원이 <단체교섭응낙가처분>소송에서 “산업별노조와 기업별노조의 병존 시에는 복수노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사측은 성실하게 교섭할 의무가 있다”라는 판결을 했으며, “계속적인 교섭 불응 시에는 1일 30만원의 돈을 노동조합에 지급하라”고 명령하며 사측의 성실교섭을 촉구하였다. 법원의 성실교섭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젠텍 자본은 공공연하게 강제이행금은 줄 수 있어도 교섭은 하지 않는다고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노동자의 연대와 대의를 위해 투쟁에 나서야 한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노동자의 연대와 대의를 위해 투쟁에 나서야 한다

방송통신위원장의 선임으로부터 시작한 이명박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의 핵은 24시간 뉴스전문채널인 YTN 사장의 낙하산 인사, KBS 사장에 대한 해임, MBC PD수첩에 대한 탄압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장악과 통제는 어느 정권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언론의 비판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직접적인 프로그램의 편성에 대한 개입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이명박정부에 들어서는 언론사 사장의 권력측근으로의 교체와 프로그램에 대한 고발과 PD들에 대한 수사라는 직접개입의 방식으로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YTN의 투쟁에서부터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방송 본연의 임무라고 할 수 있는 ‘공정성과 계급성’을 실현하는 과정으로서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물론 많은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의 방송은 아직 형식적인 보도의 공정성에서조차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특히 언론의 ‘계급성’을 말한다는 것은 너무나 먼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투쟁에서는 미래 우리사회의 운영원리를 담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투쟁은 조금의 개량을 획득하는데 멈추거나 타협하게 되기 때문이다. 언론의 계급성이라고 한다면 우리사회의 모순이 어디에서부터 발생하고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제국주의 대결과 전쟁의 시대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제국주의 대결과 전쟁의 시대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8월 8일, 그루지야에서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날의 전쟁은 그루지야 내에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던 남오세티아에 대한 그루자야의 무력사용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루지야의 공격은 러시아의 개입을 몰고 왔다. 한편 친러적 남오세티아는 주민 상당수가 러시아 국적을 보유하고 있기에 이것이 러시아의 개입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루지야의 군사행동에 러시아가 개입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루지야의 친미적 행보 때문이었다. 그루지야 국민들은 2004년 부패한 정권을 몰아낸 소위 ‘장미혁명’을 통해 사카쉬빌리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승냥이 몰아낸 데에 범이 들어와 앉은 것이 되었다. 미국에서 거주하며 변호사노릇을 했던 사카쉬빌리는 친미적 성향을 들어내면서 러시아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고, 이라크에 군대파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하는 등의 행보를 취하였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은 자국 국경지역 구 소련 국가들의 친미적 정권 수립에 대한 경고라는 성격을 띠는 것이다. 그리고 그루지야-러시아 전쟁으로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였다. 미국의 유일지배가 가고 제국주의 대결의 시대가 온다 그루지야-러시아 전쟁은 단지 국가 간 소규모 분쟁이라고 할 수 없는 국제정치 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 세계질서는 미국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좌지우지해왔다. 냉전이 끝나고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청백리 황희 정승의 분배주의 경제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청백리 황희 정승의 분배주의 경제관

‘일자리 창출’이라는 말은 이제 선거 때 으레 등장하는 붙박이 공약으로 자리를 잡았다. 중앙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국토를 마구 파헤치는 개발 사업을 할 때에는 ‘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이라는 명분을 꼭 내세운다. 근래 ‘한반도 대운하’ 추진 논리에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말이 슬그머니 끼어든 바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고용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실업(失業)에 대한 공포가 모든 경제인구의 심리에 스며있다는 뜻이다. 노동을 할 생각도 있고 또 그럴 능력도 있지만, 그 능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상태를 실업이라 한다. 이러한 실업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규명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마르크스와 케인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산업예비군(産業豫備軍: reserve army)이론으로 실업이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토지, 건물, 기계 등과 같은 고정자본(불변자본)의 비율은 높아지는 반면 노동력에 지급되는 임금 등 가변자본의 비율은 줄어드는데, 이에 따라 잉여노동인구가 발생한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실업군(失業群)을 산업예비군이라고 칭하며, 인건비를 낮추어 더 높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가의 욕망이 결국은 산업예비군을 낳는다는 주장을 폈다. 한편 마르크스가 죽은 해에 태어난 케인즈는 ‘유효수요’라는 개념으로 실업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화폐이자율이 높고 소비가 줄어들면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역사속의 사민주의 (2)] 독일에서 벌어진 사민주의자들에 의한 노동자 도살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역사속의 사민주의 (2)] 독일에서 벌어진 사민주의자들에 의한 노동자 도살

시리즈 순서 1) 개관 – 역사의 범죄자 혹은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민주의자들의 역사 2) 학살의 역사 – 독일에서 벌어진 사민주의자들에 의한 노동자 도살 3) 이중대의 역사 4) 식민지 문제 5) 여성문제 6)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7) 사회적 분업과 직접 민주주의 8) 산별노조 사민주의자들, 혹은 사회주의를 말하지만 사민주의자들에 불과한 자들 앞에서 누군가 혁명과 봉기의 역사를 말하면 한여름 난로가에 앉아 있는 표정을 짓는다. 이 뼛속 깊은 곳까지 혁명이라는 말에 알레르기를 가진 자들의 머릿속에 혁명은 혼란과 무례함, 죽음과 파괴의 장일뿐이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부르주아들 눈앞에서는 고개도 못 쳐들 것 같은 이 위인들이 노동자와 혁명가를 학살하는 데는 단호하고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독일혁명의 좌절 에버트와 샤이데만은 1918년 당시에도 세계최대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던, 독일사민당의 지도자들이었다. 1918년에는 전세계 사회주의자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독일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했다. 혁명적 노동자, 병사들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평의회를 구성했으며, 평의회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대통령궁으로 들여앉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고, 그들의 권좌가 시작되자 혁명은 뒷걸음치고 종국에는 파멸의 길을 갔다. 1917년 혁명으로 세워진 러시아 소비에트 정권의 퇴보와 타락을 가지고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 반이명박에서 반자본으로 촛불민심을 진화시키자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 반이명박에서 반자본으로 촛불민심을 진화시키자

7월5일 대규모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정국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7일에 이명박정권은 3명의 장관만을 교체하는 소폭개각을 실시했다. 6월10일 최대 촛불시위를 앞두고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내각이 총사퇴한 후, 내각개편 문제를 한 달 가까이 끌다가 나온 결론이다. 촛불이 더 이상 겁나지 않는가 보다. 그리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8일 국회 개원을 합의했다. 반면에 시청광장에서 단식농성 중이었던 종교인들은 일주일 만에 자진해산했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집중집회만 주최하겠다고 발표했다. 거리의 정치가 위축되고 정치권으로 정국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6월28,9일의 대중은 차벽을 넘기 위해 줄로 끌어당기고 소방호스로 물대포를 쏘아대며, 분노를 저항으로 표출시키고 자발적인 행동과 연대를 창조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 만에 촛불시위는 퇴보하고 말았다. 귀를 막은 이명박정권에게는 전혀 힘을 쓸 수 없음을 대중 스스로 인식했던 거리행진이 다시 반복되었다. 그리고 7월5일 시청광장으로 모여든 거대한 대중은 주체측의 방기로 인해 방향을 잃고 표류해야 했다. 표출되지 못하는 분노와 억압된 자발성은 결국 사그라지고 만다. 이것이 지금 거리의 정치가 위축되고 있는 이유이다. 촛불시위의 긍정점과 한계, 중간계급적 성격 지난 5월2일 여중고생이 중심이 된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 광장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 광장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촛불에 마비된 국회 촛불집회 기간동안 대의제는 작동을 멈추었다. 야당은 등원을 거부했다. 수구정당들의 의원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회는 촛불로 불붙은 압도적 다수의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으로 해서, 그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흔히 의회로 대표되는 대의제는 대표들이 선출되자마자 모순이 시작된다. 선출할 때 투표자들의 정치적 정서와 선출된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간의 간극이 투표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2008년 5월과 6월처럼 대중들의 정치적 정서가 급격히 변한 시기에 이런 부조화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2/3를 점하고 있는 수구보수 의원들과 이명박에 대해 고작 7%만이 지지를 표했던 정치적 정서의 극단적인 대비는 대의정치 자체를 마비시킨다. 이러한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해 논의된 장치인 소환제 등은 사실상 하자가 있는 대표를 끌어내리는데 이용될 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직접민주주의 장치라고 할 국민투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국민투표를 끌어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 쉽게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의원내각제의 경우, 이러한 모순이 극대화 될 경우,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그래서 의원내각제는 그런 면에서 부르주아의 정치적 지배를 보다 유연한 형태로 지속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 기회주의를 극복하고 한미FTA 반대투쟁을 다시 시작하자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 기회주의를 극복하고 한미FTA 반대투쟁을 다시 시작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지난 6월19일의 특별기자회견에서 자기 입으로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한미FTA 사이의 불가분한 관계를 폭로했다. 이대통령은 “한미FTA 비준이야말로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지름길의 하나라고 판단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한미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이런 절호의 기회(한미FTA)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조속한 한미FTA 성사를 위해 국민의 먹거리 안전은 염두에 두지 않고 졸속 쇠고기 협상을 했다는 의혹과 불만에 맞서, 하루라도 빨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이대통령은 수시로 경제위기상황임을 강조하며, “경제에 부정적”인 촛불시위의 중단과 경제살리기를 위한 국민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이대통령이 국면전환을 위해 경제위기론과 한미FTA 조속 비준론, 국민통합론을 공세적으로 펴는데, 이에 대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진보정당, 민주노총 등의 대응을 보면, 기존의 광우병 위험과 보호체계의 미비에 대한 선동만 반복할 뿐이다. 이대통령은 한미FTA만 발효되면 34만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GDP(국내총생산)도 10년간 6%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농업․서비스부문 완전개방으로 인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실업과 무한경쟁의 고통으로 내몰리고, 국제경쟁력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노동구조조정이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 촛불집회에서 운동권들은 왜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했는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 촛불집회에서 운동권들은 왜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했는가?

광우병 정국-촛불집회의 성격을 무엇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 중층적인 성격들이 혼재되어있기 때문이다. ‘범민주개혁-노빠 프레임’이 될수도 있고, ‘신자유주의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누적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라고도 볼 수 있고, ‘새로운 정치문화, 생활정치의 시작’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 한국정치를 흔들고 있는 이 상황은 남은 이명박정권의 임기인 4년반의 정치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 정국에서 소위 운동권이라 불리우는 좌파, 사회운동 세력들이 얼마나 대중들과 상호소통을 잘하여 자신들의 정치를 확산시키느냐에 있다. 주변에서 촛불집회를 바라본 몇 운동권들의 말은 공히 다 “발언 하나하나가 재미있다, 재기발랄하다” 등의 표현으로 촛불집회문화에 대한 호감, 혹은 문화적 충격을 이야기한다.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그 오랜 기간 동안 운동권에서 부지불식간에 운동짬밥먹은 이들만이 마이크를 독점하면서 집회를 오염시켜왔다는 것, 그래서 그동안 시민들의 분출하는 언로를 억압해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게 운동권이 분출하는 대중의 언로를 막아왔으니 실제 집회에서도 광우병 쇠고기, 한미FTA ‘괴담’의 원조 생산자들인 운동권이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운동권들이 민주주의와 집회시위의 사회학에 대해 조금 더 안다고 해서, 대중이 그들의 주장을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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