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상상나누기] 사소한 프로젝트에 관한 짧은 보고서

[상상나누기] 사소한 프로젝트에 관한 짧은 보고서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10월2호 후일담 ① 사소한 <이음책방> 프로젝트에 관한 짧은 보고서 전규찬 (미디어문화센터 소장) 한참 동안 버렸던 대학로에 요즘 나는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많게는 세 번이나 들락거린다. 우선 일요일에 한번. 북한산 산책을 대충 마치면 수유에서 버스를 타고 슬슬 대학로로 나들이 나간다. 혜화동 성당 근처 필리핀 노상시장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사먹고 빈둥댄다. 자발적으로 이방인이, 잠정적으로 ‘외국인’이 된다. 사람과 사물이 뒤섞인 세계에서 벤야민이 말한 ‘자신에게만 돌리고 있는 얼굴’을 재미나게 인식한다. 그러고 나면 길 건너 성대 앞 지하 책방 <풀무질>로 걸음을 옮긴다. 매주 책 한권을 꼭 사겠다는 로컬 소비의 자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운동권 출신이면서 현재도 맹렬하게 운동 중인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위해서다. 이 시대에 사회과학 책방을 운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또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를 들어본다. 혼자 편안하게 책을 읽기도 한다. 그 다음은 수요일 저녁 7시. 대학로 건너 <나다> 가는 골목에 숨어있는 또 다른 책방으로 갈 때다. <이음책방>이라는 곳이다. 약간의 문화주의적인 감수성을 가진 분이라면 이 곳을 기억하거나 들어 봤으리라. 예쁜 곳이다. 음악도

[상상나누기] 동상이몽

[상상나누기] 동상이몽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10월2호 밥보다 문화 동상이몽 맹기돈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지금의 우리 사회는 가히 아이돌 그룹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비단 아이돌 그룹뿐만이 아니라 연예계의 이슈 하나하나가 뉴스거리가 되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여러 가지 맥락에서 아이돌 그룹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연예인들의 소소한 일상이 전파를 타고 우리에게 배달되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한국 대중문화지형도를 살펴보는데 유용하다. 단순히 아이돌 그룹은 청소년들만 좋아하는 것이고, 연예인을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상품으로 치부하기엔 그들이 가진 우리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우리 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아이돌 그룹 2PM의 박재범 사태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태에 대해서 애국주의적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근대 지식인들은 민족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함으로써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담론의 차원으로나마 실현할 수 있었지만 그 반대의 효과는 확연하다. 민족이라는 상상의 산물 뒤에 숨어서 발현되는 무의식에 대한 의문을 품어야 한다. 이 글은 2PM 박재범의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이야기하려 함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마녀사냥식의 공격을

[상상나누기] 여전히 우리는…

[상상나누기] 여전히 우리는…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10월2호 일상의 순간

[상상나누기] [노랑색끈]꼰대 출입금지 공간! 교육공동체 나다에 문을 열다

[상상나누기] [노랑색끈]꼰대 출입금지 공간! 교육공동체 나다에 문을 열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2호 기획기사 [주황색끈]꼰대 출입금지 공간! 교육공동체 나다에 문을 열다 정소연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활동가) “나다” ① [동사] 내가 세상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말. 스스로 생각하여 뚜렷한 입장을 가지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다. 나는 나다! ② [대명사] 나 와 다른 사람들, 그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커다란 주체. ③ [명사] 나(裸)?다(多). 자신에게 씌워진 가면과 사회의 숨겨진 부조리를 모두 벗겨내는 행위. ④ 나 는~이 다 . 주어와 술어 사이에 무수하게 채워질 가능성을 이 세상 모든 청소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교육공동체 나다! 홍대 앞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공간에 위치한 교육공동체 나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 맨 꼭대기에 있는 교육공동체 나다는 2000년 12월 성남에서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 나다로 문을 열어 2004년 청소년은 삶의, 교육의 주체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확인시키고자 교육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2007년 보다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옮겨 2009년 서교동 독립공간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독립된 공간을 꾸리게 되며 나다는 청소년들이 직접 운영하며 놀고 일하고 공부하는 공간. 자치와 공동체를 함께 고민하게

[상상나누기]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의 증언

[상상나누기]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의 증언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월 2호 특집기사 ③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의 증언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 “엄청 시끄럽고 분진 가루도 뿌옇게 날려요. 천식에, 난청에 더구나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니 다리가 퉁퉁 붓고…. 기타 몸체를 다듬는 기계가 있거든요. 손에 잡고 하는 건데 그게 진동이 심해서, 오래 쓰면 손바닥에 티눈이 생겨요. 너무 아프죠. 수술을 해야 하는데 산재로 인정도 안 해 주더라고요. 기타를 만드는 공정들이 쭉 있는데, 앞 공정이 끝나지 않으면 뒤 공정을 진행할 수가 없는 식이거든요. 그걸 못 이으면 8시 출근인데 6시 반에도 그냥 나오라고 해요. 아침부터 아무런 수당 없이 그냥 일하는 거죠. 그리고 밤에 일이 남으면 그대로 연장 근무를 하는 거고. 어떠한 수당도 없어요.” “관리자들이 아침에 출근하면 여성 노동자들에게 첫인사로 엉덩이를 툭툭 치고 지나가요. 예쁜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회식 가자 막 그러면서 치근거리는데 미운 여성 노동자들한테는 먼저 지쳐 떨어져나가게끔 괴롭히는 경우가 많아요. ‘돌림빵’이라는 게 있어요. 공장이 다섯 개가 있는데 한 공장에서 일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다른 공장으로 배치해

[상상나누기] [SEEN AND NOT SEEN] 아니면 [제발 좀 그래라….]

[상상나누기] [SEEN AND NOT SEEN] 아니면 [제발 좀 그래라….]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2호 특집기사 ② [SEEN AND NOT SEEN] 아니면 [제발 좀 그래라….] 김성균 (다큐멘터리 감독) 글을 쓰는 나는 한때 상업영화 스탭을 한 적이 있었다…. 소위 ‘막내’급의, 허드렛일을 하는 수준의 스탭이었다. 이후에도 비디오 촬영으로 먹고 살면서 비교적 ‘영상’이라는 매체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근근이 살아간(지금도 그러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 번도 소니(Sony)나 파나소닉(Panasonic) 캠코더가, 아리플렉스(Arriflex) 카메라나 조명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음악을 좋아하고 항상 즐겨 듣지만 아이팟(iPod)이 어떤 제조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조 새트리아니(Joe Striani)가 어떤 기타를 사용하는지, 그가 연주하는 아이바네즈(Ibanez) 기타가 어떤 곳에서 어떤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지 알 턱이 없었다. 물론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세상에서 세상사에 무관심해지기 쉬운 게 사실이기는 하다. ‘콜트(Cort)’라는 단어를 검색엔진에서 한글로 치면 보통은 총기류에 관한 사이트가 먼저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기타를 치는 사람들에게 콜트는 정말 각별한 브랜드였다. 쉬운 말로 해서, 돈 없는 인디 뮤지션에게 콜트는 ‘싸면서도 질 좋은’ 국산 브랜드였고

[상상나누기]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삶의 노래를 돌려주고 싶습니다

[상상나누기]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삶의 노래를 돌려주고 싶습니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 2호 특집기사 ①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삶의 노래를 돌려주고 싶습니다 이원재 (문화연대 활동가, 콜트/콜텍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문화노동자들cortaction.tistory.com) 여기 기타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 창문 하나 없는, 먼지가 가득 쌓인 공장 안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뿜어낼 기타를 위해 노동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손과 땀, 열정과 기술로 만들어진 기타를 통해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으로 기타 회사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고, 그 회사의 사장은 한국에서 120번째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거리로 내 몰렸다는 소식과 마주쳤습니다. 자신들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했다는 이유, 최소한의 살아 숨 쉴 수 있는 노동환경을 요구했다는 이유,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극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거리로 내 몰렸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또 하나의 가족”이라며 기타 노동자들을 독려하던 사장은 갑자기 얼굴색을 바꾸고 멀쩡한 공장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사장은 해외에 공장을 새로 열었고, 가족같이 일했던 노동자들에게는 무시와 모멸 그리고 탄압으로

[상상나누기] 모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라디오가 말해주었다

[상상나누기] 모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라디오가 말해주었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1호 후일담 ③ 모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라디오가 말해주었다 난다(모난라디오 DJ) 모난라디오를 처음 만난 건 청소년인권활동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모난라디오는. 아니, 모난라디오 뿐만이 아니라 실은 지금 이러한 청소년인권활동을 통해 만난 건 수도 없이 많다. “활동”이라는 걸 처음 겪게 된 작년, 그러니까 2008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던 시간 중 하나일 것이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활동을 만나든, 어떤 매체를 접하든, 모든 것이 다 새로운 것이었으므로 이리저리 휘둥그레. 모난라디오는 그런 새로운 것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도 할 수 있을 법한 때, 함께 활동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던 문화연대와 청소년활동가 친구들과 만들게 된 또 다른 활동이다. 그럼에도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아직도 실은 ‘휘둥그레’상태이기 때문에, 모난라디오는 활동에 있어서도, 내 일상에 있어서도, 어떤 ‘방향’으로 갈 건지 계속 물어온다. 모났다. 모난라디오는. 사실 다 ‘모난’ 성격이어서 ‘모난라디오’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모난라디오를 만나고서야, 내가 ‘모난’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났다는 건, 주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을 포함한다. 일명 비주류. 그런데다 우리는 그 ‘모남’에 ‘저항’을 곁들였다.

[상상나누기]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상상나누기]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1호 후일담 ②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문화사회연구소 오픈세미나 담/론 후기 최미경 (문화사회연구소 간사) 9월 25일 문화사회연구소에서는 지행네크워크의 불량청년(?)중 한 명인 ‘오창은’, 문화연대 미디어 문화센터 운영위원 ‘이광석’, 연구공간 수유+너머 ‘정정훈’ 님을 초대하여 오픈세미나 담/론을 진행하였다. 오픈세미나는 책의 집필자를 초빙하여 진행하는 대중 토론회이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대안담론을 구성하고자 하는 세미나이다. 책 제목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를 보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난 순응주의자인가’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에 떠오르는 질문은 ‘그럼 순응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거지?’였다. 내가 ‘순응주의자’라면 어떤 처지와 관습에 순응하고 있는 것일까? 또는 ‘순응주의자’가 아니라면, 내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바꾸어가려 하고 있는가 또 더 나아가 시장과 국가권력에서 벗어나려는 실천을 하고 있는가? 머리로는 ‘자본과 경쟁의 논리에 포섭당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소비와 권력을 욕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정의하는 순응주의자는 -과잉 소비와 유력자(majority)의 권력을 욕망하는 사람-말없이 순종하고 규칙에 복종하는 산업형 인간, 군대형 인간-자본주의 국가체제에 기반을 두고 지식과

[상상나누기]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사회, 그 이후

[상상나누기]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사회, 그 이후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1호 후일담 ①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사회, 그 이후” – 문화연대 10주년 기념 토론회 후기 김소이(문화연대 자원활동가) 올해 9월, 10살을 맞이한 문화연대를 위해 안과 밖으로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기리려는 노력들이 있어왔다. 23일에 열린 토론회는 이러한 노력들 중 하나로서 문화연대라는 단체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자라온 궤적을 돌아보고 앞으로 자라면서 염두 해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 했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이동연 공동소장이 앞서 말한 문화연대의 궤적에 대해서, 그리고 문화연대 강내희 공동대표가 문화운동의 방향에 대해 발제했다. 사회는 문화연대 원용진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그 외에 토론자로는 Lab 39 큐레이터인 김강, 성공회대 교수 김창남,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명숙,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박원석, 연세대학교 교수 조한혜정이 참여해 주었다. 첫 번째 발제에서는 문화연대의 출범부터 함께 해온 이동연 소장이 문화연대가 ‘닺을 올’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연대기를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동연 소장은 문화정책 감시활동과 감성의 정치를 추구했던 초창기 1999년에서 2000년까지의 ‘제 1기’, 문화운동이 대중적인 소통을 위해 나아갔던 2001년에서 2004년까지의 ‘제 2기’, 비로소 문화연대가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의 적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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