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또는 여성)의 적은 남자이다.”라는 주장을 종종 접하게 된다. 여성이슈를 다룬 인터넷 뉴스의 댓글들을 살펴보면 여성은 남성의 적으로서 ‘김치년’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지칭되거나 ‘3일에 한 번씩 매를 맞아야 하는’(줄여서 ‘삼일한’) 짐승과도 같은 존재로 격하되기 일쑤이다.
가사노동이 여성의 타고난 “본성”으로 이해되는 한,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가사노동의 분담도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남녀가 서로의 가사노동을 분담하면서 자신들의 가사노동이 자본에 의해서 착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자 개개인의 지적인 능력이나 과학적 지식은 평범한 개개인의 지적능력이나 과학적 지식보다 훌륭할지 모르지만, 다중은 소통을 통해 혁신함으로써 더 뛰어난 지성을 구축할 수 있고 더 뛰어난 지식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떼 지성’이다.
90년대를 회상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삐삐로 소통하던 20년 전의 이야기는 매우 인간적이고 포근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94학번인 필자가 경험한 90년대 중반의 캠퍼스는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에 ‘위험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책 <위험한 언어>는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넘어 모든 사람의 직접 소통을 추구한 에스페란토가 왜 ‘위험한’ 언어로 취급당해 왔는지 그 역사를 다루었다.
피곤한 세상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한 이야기까지 신경 써야 하니 말이다. 연방준비은행 총재인 버냉키라는 사람의 ‘양적완화’에 대한 몇 마디가 세계 곳곳의 증시에 영향을 미치고 태평양 건너 한반도에서 대출과 카드빚에 기대어 살고 있는 나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는 레닌이 \'국가와 혁명\'을 쓰던 100여 년 전과 다른 운명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에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구하기 위해 각 나라의 주권, 인민의 민주적 권리가 대놓고 무시당하고 있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는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적 금융 거품을 일으켜 부채를 확대하면서 위기를 은폐해왔으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뒤엔 부채를 줄이기 위해 부채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공유지를 관념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담론들에 맞서 저자가 제시하는 동물혼은 ‘인류의 양가적이고 갈등적인 본능을 인정한다. 저자는 인지적 생산의 정치적 공간이 (단순히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경쟁적임을 강조한다.
본론부터 얘기하면 너무 어렵고 장황하다. 지극히 상식 수준의 말을 이렇게 길고 현란하게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현장과 현실의 삶과 생활에는 젬병인 80년대 지식인 혁명가들의 현학적 글이 너무 많다. 더 정확히는 그들의 글은 개수는 적지만 이 책에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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