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기획에 균열을 내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용인하는 ‘마춤법’의 세계에 응답해 보고자 하는 이들, 더불어 목격자가 되는 마법에 걸릴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아서 프랭크의 책, 『몸의 증언』을 권한다.
한국 사회 일각에는 산업 노동자와 그 조직을 낡은 ‘꼰대’로 조롱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자본과 언어>는 신세대 지식 서비스 노동자를 위한 것처럼 읽힐 우려가 있고 실제로 그런 징후가 보인다. 그렇지만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그렇지 않다.
이번 진보평론의 특집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외에 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과 실천들로 채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차별과 성폭력은 노동자조직과 운동조직에 내재한 평등에 기초한 열린 민주주의 원리를 근저부터 훼손한다. 노동자문화의 일부인 성차별과 성폭력을 정면에서 대면해야 한다.
도시를 읽는다는 표현에 우리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한 것 같다. 여전히 그게 뭔지는 잘 모른다 해도 \'도시 읽기\'라는 말이 들어간 책도 꽤 나온 만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인 건 분명하다. 그럼 도시 듣기는 어떨까?
현실은 결국 힘과 권력이 본질적이다. 문제는 그러한 힘과 권력이 불가역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자유주의 정권들의 무책임한 역사인식과 과도한 관대함은 결국 또 하나의 역사적 범죄로 기록되고 있다.
수신확인을 했으나 답장을 보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책을 읽고 나니 돌아보고 생각할 것이 많아서였다. ‘차별’이라는 주제는 무척 무거워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차별은 일상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것의 전지구적 확산에 따라 새로운 국가들이 계속해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뉴스에 등장하지만, 그 대응방식은 늘 변함이 없다. 신용 긴축과 내핍조치라는 방식은 금융위기라는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처럼 늘 따라왔다.
이처럼 아름다운 민주화의 모습 이면은 추한 것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광주와 87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이 두 정권이 했던 것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벌거벗은 자본의 착취와 폭력을 수용하고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강변하면서.
죽음을 향해가는 도시’를 이야기하는 이 책조차도 나에겐 그러했다. 그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도시 사이로 되돌아오는 거리를 발견하는 그의 밝은 감각 때문일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그가 과제로 말하는 또 다른 ‘거리’ 형성의 과정들을 밝히는 것, 그리고 그러한 거리를 구축하는 일은 역시 그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의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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