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밤을 나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모두 빚지고 대의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도 모두 ‘분노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왜 우리는 상품에만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었는가? 저자에 따르면 그건 우리가 공유지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18세기만 해도 잉글랜드의 들판은 대체로 개방되어 있었고 자작농, 아이들, 여성들이 커머닝commoning을 통해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들뢰즈의 <시네마> 연작 자체도 난해하지만 그 책에 대한 적지 않은 해설서 역시 대부분 난해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씨네마톨로지>는 초보자(?)가 들뢰즈의 영화이론에 접근하는 데 좋은 책이다.
어쩌면 암울한 미래에 대한 묵시록적 예언일지도 모르겠으나, 길게 인용한 엄기호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스스로를 구경거리로 내놓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게 된 우리의 욕망이 빚은 참담한 현실에 대한 반추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면’이 사라진 시대의 귀결은 ‘감시사회’의 문제가 “개인적인 결단”으로밖에 해소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리지 않고 즐기며 혁명적 예수를 발칙한 언어로 경쾌하게 재구성할수 있는 재능이 있는 친구와 동시대를 더불어 예수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자가 되어 어쩌면 십자가형에 처해질만큼 자본과 권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투쟁의 전선을 만들며, 행복하게 살고싶다.
김상봉 교수가 “사회주의 혁명으로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며 피 흘리지 않고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로 ‘노동자 경영권’을 제시했다. 그는 이 ‘노동자 경영권’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략전술로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니체가 제시한 자기 자신의 생으로의 귀환과 자유로운 정신의 탄생은, 결국 삶을 노동에 종속시키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 반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삶의 수탈을 위해 현대 자본주의가 부과하는 노동에 반하여 삶에 종속되는 노동을 한다는 것은, 삶을 그 내부로부터 형태를 만들어내는 작업과 통한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와 레닌은 잘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레닌과 함께 파리코뮌 기념식에 같이 참석한 사이다. 이 미치광이 독재자를 키운 여성 사회주의자 안젤리카는 무솔리니를 사회당 기관지 편집장으로 이끌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비극은 희극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은 재앙이면서 동시에 ‘혁명과 전환의 계기’이다. 이 원전사고를 지역적 사건으로 특수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반자본주의, 환경 문제, 비정규직 철폐, 여성주의 운동 등과 함께 연결되어야 한다. 이제 ‘자본주의 이후’를 모색할 때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마천루와 그리드로 이루어진 세련된 팝아트의 도시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한번쯤은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읽은 후에 뉴욕을 통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새로운 질문 하나쯤은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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