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노사협력팀과 총무팀 소속 관리직 직원 20여명은 정문 안쪽에서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측의 신고로 평택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출동했지만, 경찰의 중재조차 사측은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노무팀장은 공장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납품차량이 후문으로 돌아가려 하자, 이를 막고 정문에서 대기하도록 지시했다
상하이차의 쌍용차 기술 강탈사건 공판이 진행 중이다. 우리가 이 공판을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명맥하다. 바로 우리사회를 절망과 분노로 몰고 간 “쌍용차 사태”의 핵심 원인, 진실이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인욱)는 9일 항소심에서 작년 정리해고에 반발해 77일 옥쇄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전 한상균 지부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노조 임원이었던 한일동 전 사무장, 김선영 전 수석부지부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노조 실장,부장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조합원은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해 모두 석방되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와 쌍용자동차 제2의 졸속매각 저지 대책위원회 주최로 ‘쌍용자동차 2009년 합의이행, 구속자 석방 해고자 복직 실현, 졸속매각을 반대하는 86인 선언’ 기자회견이 5일 오전 10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남편과 아버지가 구속되어 있었던 지난 1년,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지난 달 30일 쌍용자동차지부 한상균 전 지부장 부인 장영희 씨(46세)와 한일동 전 사무국장의 부인 전은희 씨(45세)를 만났다. 장 씨는 오늘 아이들과 함께 한상균 지부장 특별면회를 다녀온 뒤였다.
개별로 흩어져 있는 무급휴직자들은 회사의 협박과 탄압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투쟁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도 가질 수 없었다. 그렇게 희망이 잿빛으로 변해가는 1년이었다.
이영호 쌍용차정리해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싸울 땐 하나로 뭉쳐 싸워야 한다. 투쟁해서 반드시 공장으로 가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평택민주단체연대회의 강상원 씨는 “투쟁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한다. 구속노동자 노동자가 공장으로 가는 그날까지 힘차게 투쟁하자”고 했다.
새벽 2시 반.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하루가 시작된다. 300여부의 신문은 3시간을 꼬박 돌려야한다. 5살, 3살 두 아이를 챙겨 아침 8시까지 어린이집에 맡기고 곧장 병원으로 향한다. 작년 파업 때 다친 손가락은 지금도 계속 통원치료 중이다.
“자기가 파업을 지휘하는 거예요.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 노트북이 뜯지도 않은 게 몇 박스고, 여기에 망원경도 사 두고.”파업 직후 조합원들을 괴롭혔던 것 중 하나는, 후회였다. 그때 우리가 이렇게 했다면 이기지 않았을까. 그때 우리가 이런 방법을 썼다면 지지 않았을 텐데. 그들은 끊임없이 77일을 되돌리고 자책했다. 쓰라린 기억이 그를 일 년이나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정문은 출입카드를 찍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으며, 관리자가 들어갈 때면 경비용역 직원이 경례 자세를 취했다. 공장 앞은 콘크리트를 새로 깔았다. 쌍용차 가족대책위(이하 가대위) 이자영 대표가 잿빛 바닥을 보며 무심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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