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신문

[현장신문] 31호 3면] 한라공조 2002년 임투를 마무리하며

[현장신문] 31호 3면] 한라공조 2002년 임투를 마무리하며

한라공조 2002년 임투를 마무리하며 한라공조 역사상 2002년 임투는 47일간이라는 긴 투쟁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이 긴 투쟁과정속에서 가장 많은 전술을 구사하였고, 사측의 투쟁 무력화 전술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 만큼 아쉬움과 부족함도 곳곳에 베어있는 투쟁이었다. 이번 임투에서 노조는 기본급 15만원 인상과 가족수당 통상급화를 요구하였다. 7월 5일 21차 교섭을 마지막으로 사측이 제시한 최종안은 기본급 93,000원, 100% 정액인상이었고, 특별호봉승급 22,500원, 제수당 1,000원, 가족수당 통상급화, 그리고 타결격려금 1인당 80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번 임투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임금인상안이 아니라 임투기간에 전개한 노조의 태업전술에 대한 사측의 무노동무임금 처리 건이었다. 이 문제로 인해 6월 18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2표차이로 부결이 났고, 이에 투쟁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7월 5일 사측은 태업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철회 요구에 대해 일축을 하며, 보상차원으로 월드컵 한국경기날과 조합원 총회일자만 유급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측의 임금인상안과 태업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철회 건을 가지고 7월 6일 찬반투표를 부친 결과 55.6%의 찬성으로 가결되어 임투는 마무리되었다. 유례가 없는 태업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을 분쇄하지 않으면 이후 노동조합의 쟁의권과 현장 통제권을 약화시킬 수

[현장신문] 31호 3면] 주장

[현장신문] 31호 3면] 주장

천인공노할 미군놈들 떠나라

[현장신문] 31호 4면]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4)

[현장신문] 31호 4면]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4)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4) 부도에 따른 만도 자본의 공격적인 노무관리는 더욱 노골화되고 노동조합과의 합의 없는 희망퇴직 모집 등 회사는 조합원을 거리로 내몰기 위한 것이라면 극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높아지는 투쟁의 강도 그리고 임금협상 파업 98년 5,1절을 기점으로 노, 사는 사실상 대화 단절에 들어간다. 회사는 노동조합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고 노동조합은 5월7일 임금인상과 관련한 전면파업에 돌입한다. 그러나 전면파업 2일차인 8일 노동조합이 가장 염려하였던 일이 발생하고 만다. 계속되는 임금체불로 인해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한 문막 지부의 최돈균조합원이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최돈균조합원의 자살은 노동조합의 투쟁에 기름을 부어놓은 결과로 이어지고 노동조합은 체불된 임금을 즉각 지급 할 것을 요구하고 계속 전면파업을 지속한다. 이에 매각문제에 노심초사하던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체불된 4월 임금을 지급하고 또한 체불된 상여금 중 50%를 먼저 지급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12일 전면파업을 종료한다. 하지만 체불된 임금을 계속 요구하는 노동조합에 의해서 임금협상을 지속된다. 한편 노동조합은 그룹사 위원장들에게 부도에 따른 회장과의 면담을 추진하게 되고 위원장들과 간부들은 6월 16일 정몽원 회장과의 간담회를 갖기 위해 그룹 본사를 찾아가는데 간담회는 정몽원 회장의 무성의로

[현장신문] 31호 4면] 살아가는 이야기

[현장신문] 31호 4면] 살아가는 이야기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생각

[현장신문] 30호 1면] 2002 상반기 투쟁을 평가한다

[현장신문] 30호 1면] 2002 상반기 투쟁을 평가한다

2002 상반기 투쟁을 평가한다 상반기 투쟁의 내용과 목표는 무엇인가 2002 상반기 투쟁을 평가하기에 앞서 상반기 투쟁 내용과 목표부터 확인하자. ①특별상여금 쟁취 ②아웃소싱 저지 ③임투 및 기본협약 ④원상회복과 정몽원씨 관련 투쟁으로 정리될 수 있다. 앞의 4가지 투쟁 목표 외에 도드라지지는 않았지만 투쟁을 통한 ‘노동조합 조직력 강화’가 상반기 투쟁의 목표로 평가의 대상이다. 사측이 전면적으로 제기하면서 촉발된 아웃소싱 저지 투쟁은 상반기 투쟁을 내내 관통하였기에 아웃소싱 투쟁을 중심으로 상반기 평가를 한다. 상반기 투쟁의 주요 경과 – 1월 ‘특별상여금’ 요구 – 사측의 전면적인 아웃소싱 요구 – 잔업거부 투쟁후 유연전술로 전환 – ‘주식소각’ 및 ’정몽원씨 한라건설에 주식고가 매각’ – 3월 6일 특별상여금 합의 – 3월 8일 대의원대회 : 임금요구안과 보충협약(고용요구)안 심의 의결 – 문막 GMT라인 합의 – 정몽원씨 관련 1인 시위 – 정몽원씨 구속 – ‘아웃소싱’과 관련한 사측과의 지리한 공방 – 5월 22일 부분파업 돌입 – 5월 27일 전면파업 – 5월 29일 아웃소싱 철회에서 최소화로 전환, 22시 사측에 최소화 기준안 전달 – 5월 30일 사측 임금안

[현장신문] 30호 2면] 현장에서

[현장신문] 30호 2면] 현장에서

현장에서 평택지회 생일,결혼선물 감감 무소식 회사가 해마다 지급되어야 할 생일과 결혼기념 선물을 이유없이 지급하지 않고있어 조합원들이 의아해 하고있다. 올해도 벌써 반이 흘러가고 있는데도 이유없이 지급하지 않고 있는 선물에 대해서 회사의 설명도 없어 조합원들은 회사가 은근슬쩍 선물지급을 하지 않으려 하는게 아닌가 하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난 임,단투때 노동조합이 약속하였던 투쟁이탈자 처리문제에 노동조합의 입장이 아직 발표되지 않아 조합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뙤약뼡에서 얼굴을 검게 그을리며 투쟁하고 서울상경 투쟁때에는 대다수의 조합원들이 비를 흠뻑 맞으며 승리를 위해서 열심히 투쟁 하였는데 이탈자 문제에 대해서 조합이 소극적으로 나가자 조합원들이 무척 분노하고 있다. 많은 조합원들은 조합이 약속한대로 조치를 해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막지회 아웃소싱 합의사항도 아닌 설비가 아웃소싱 설비라니 2002년 임투가 아웃소싱 최소화로 끝나고 대상라인에 대한 아웃소싱이 준비중이다. 고용협상시 합의된 대로 문막지회에는 27명이 아웃소싱 대상자이다. 그러나 초기에 사측이 제시하였던 아웃소싱 계획에도 없고 합의 사항에도 없는 설비를 아웃소싱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조향 3부의 모구역에서 벌어지고 일이지만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조합 차원의 확실한 진위 확인과 대응이

[현장신문] 30호 3면] 경주지부, 대전충북지부 임투 평가

[현장신문] 30호 3면] 경주지부, 대전충북지부 임투 평가

경주지부 임투 평가 경주지부 집단교섭의 성과와 한계 2002년 임투는 조직력강화와 금속노조 강화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의 집단교섭이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서 성과와 한계 그리고 반성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평가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이다. 2002년 집단교섭은 2001년 집단교섭에 비해 후퇴한 듯한 인상이 짙다. 2001년 경주지부는 집단교섭 전략지부로 선정되어 많은 어려움과 논란을 통해 산별노조의 발전적 계기를 만들었었다. 그러나 2002년에는 각 지회의 현안문제와 특성을 토로하며 한발 물러서려는 인상이 짙게 배어 있었다. 지난 2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작년 집단교섭의 경험은 불완전하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추후 집단교섭을 더 잘할 수 있는 튼튼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라고 평가를 했지만 임투의 시작을 알리는 3월 임시 대의원대회에서부터 미진한 모습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2년 경주지부의 집단교섭은 기본협약, 지부활동보장(5명의 추가전임 요구)과 임금요구안을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였다. 본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되었던 지부 중심의 단일한 교섭군의 원칙이 무너지며 교섭군을 3개로 편성하고 교섭위원 수를 사업장 단협에 명시되어 있는 인원이 아닌 반(30여명)으로 줄여 교섭위원을 선출했다. 교섭의 원활함을 위해서 교섭비용의 문제도 거론되었다. 자본이 알아서 할 문제를 노동조합이

[현장신문] 30호 4면]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3)

[현장신문] 30호 4면]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3)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3 97년은 한국의 역사상 가장 침울하고 굴욕적인 한 해로 기록된다. 외세의 자본에 의해 이 나라는 철저히 유린되고 짖밟힌다. 96년 말부터 불어닥친 IMF는 국민들의 생명줄을 조이면서 목숨을 담보로 이 나라의 모든것을 내놓을것을 강요한다. 국가기간산업은 물론 은행과 일반 기업까지 모조리 강탈해가는 구조조정을 할 것을 외세 자본들은 요구한다. 자동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아자동차 조합원들의 대량해고로 시작된 정리해고는 현대자동차를 지나서 만도기계에 와서 그 절정을 향한다. 만도자본의 부도와 노동조합의 투쟁 97년 11월에 들어서자 만도는 현장에 끊임없이 부도 소문이 퍼지고 조합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에 안절부절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첫 징후는 11월 27일에 사무관리직에 대한 임금 체불로 시작된다. 설마했던 부도는 12월 6일 사상유례없는 흑자부도라는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흑자부도의 가장 큰 원인은 한라그룹간의 지급보증인데 한라중공업의 부도를 막기위해서 만도기계, 한라건설 등 계열기업에서 지급보증을 하였다가 한라그룹 전체가 부도가 나는 부도덕한 경영형태에 의한 부도인 것이다. 한편 노동조합은 이러한 회사의 부도에 대해서 신속하고 강력하게 투쟁할것을 결의하고 12월12일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비대위로 전환하고 한라그룹 전체 노조 차원의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의 잘못으로

[현장신문] 30호 4면] 살아가는 이야기

[현장신문] 30호 4면] 살아가는 이야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생각하며 ...

[현장신문] 29호 4면]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2)

[현장신문] 29호 4면]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2)

만도노동조합의 역사(12) 사측의 끊임없는 노동조합 탄압과 민주노총의 총파업 96년의 임금, 보충협약은 사측의 무식한 노동조합 탄압으로 인해서 무려 26명의 고소, 고발자를 양산하고 이 중에 3명의 동지를 구속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되가는 듯 했다. 하지만 회사는 안양공장에서 가장 파렴치한 방법을 동원해서 또 한명의 동지를 채어가는 폭거를 저지른다. 앞서 세명의 동지가 구속된 것을 안양의 모신문사가 취재를 하기 위해서 기자를 보내자 총무부의 부장이 경비실장을 동원하여 힘으로 기자의 출입을 저지한다. 이 과정에서 간부들이 총무부로 항의를 하고 기자의 출입을 요구하자 불리함을 느낀 나머지 언론취재의 자유를 총무부장의 진두지휘하에 막는 야만적인 행동을 자행한다. 기자를 데리고 노동조합으로 들어가던 간부들을 경비실장이 두들겨 패고 간부들의 옷을 찢어버리는 등의 실력행사로 노동조합을 통제하려 들었다. 당시 안양지부의 조직부장이던 김종일은 회사의 이러한 노동조합의 탄압에 거세게 항의하며 경비실장과 몸싸움을 하던 중 회사의 탄압으로 구속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 이렇듯 회사는 노동조합에 대한 끝없는 탄압을 자행하였고 노동조합은 현장에 대한 탄압에 맞서 투쟁으로 정면돌파하여 노동조합의 강화를 위해 몸을 바친 한해로 기록된다. 96,97 노동법 총파업 한편 96년 12월 26일 새벽 6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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