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감 제로. 우연한 5분입니다.
우연한 5분
쌀쌀한 늦가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길거리 옷가게나 레코드점에서 문득 흘러나오는 노래에 문득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었나요? 그런 순간의 감정들은 뭐라 말로 표현되거나 기억되지 못하고, 찰나의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지곤 하지요.
옳고 그름보다는 내 지갑에 들고날 일에 더 편협해지고, 승리보다는 패배가 더 익숙해지는 요즘. 가끔은 특별히 거대하지도 작지도 않은, 생의 순간순간에 사라져버릴 단 한곡의 노래에 위안을 받고는 합니다.
그런 소소한 감정들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주제도 없고, 형식도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또는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문득 귀에 들어온 노래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 방송 : 매주 금요일 14:30
- 연출 : 조정민
- 기술 : 김지희
- 웹제작 : 정서
- 구성 : 올빼미 (IT노동자)
- 목소리 : 변정필
우연한 5분 9회 방송 대본 보기김광석 - 불행아
2008년 첫번째 휴일이었던 지난 일요일. 그 날은 故 김광석의 기일이기도 했습니다.
제 주변에 나이 좀 오래 되시고, 성격 까칠하신 분이 계신데요. 어느 날 그 분 말씀이, 자기는 군대 입대 1주일 전에 김광석을 정말로 처음 들었답니다. 근데 그게 하필이면 '이등병의 편지'였던 거죠. 그날 혼자 방에서 애꿎은 김광석 욕을 하며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등병의 편지'가 그토록 애절했던 이유를 알 것 같더군요. 군대라는 곳이 국가의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구속되어야만 하는 많은 개인들의 운명적인 통과의례이기도 하고, 동시에 분단이라는 모순된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사회적 체험이 숙명적으로 맞물린 곳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점들이 김광석의 노래가 가진 힘이 아닐까 합니다. 아니 사실 그런 힘은 김광석만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까칠하다는 그 분 이야기를 또 하자면, 제대 후에 집회가 있었는데 비가 오더랍니다. 으슬으슬한 맘에 동아리방으로 몰래 도망갔는데, 마침 후배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졸업을 앞두고 방황하던 마음에 왠지 울컥하더랍니다. 누구 노래냐 했더니, 이런 또~ '김광석'이더랍니다. 바로 오늘 그 분을 위해 띄워드릴 곡인데요. 김광석 하면, 어떤 분들은 '메아리', '새벽', '노찾사' 시절에 즐겨 불렀다던 '타는 목마름으로'를 가장 먼저 떠올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한때 대학가에 저항문화가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민중가요에는 흔히 말하는 진군가 풍의 단순한 노래가 많이 불리우기는 했지만, 체제 밖으로 밀려난 대다수 저항하는 사람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적셔주고 달래주던 노래들이 사실 더 많이 불리웠습니다. 70년대 대표적인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그러했고, 지금 들려드릴 김광석의 노래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래들은 70년대부터 본격화된 한국 포크음악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김광석을 김민기 이후 한국의 저항적 포크음악의 계보를 있는 정통 적자라고 하는 거겠죠. 오늘 들려드릴 곡은, 1974년 김의철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이 노래는 사전 심의을 피하기 위해 제목을 '저 하늘의 구름따라'로 변경되어 발표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곡의 원제목은 오히려 '불행아'가 맞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노찾사의 95년 앨범에도 다시 불리우기도 했는데요. 김광석이 불렀던 많은 노래들이 사실은 이런 전통적인 포크음악들이었습니다. 그의 앨범 중 다시부르기 앨범이 가장 명반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노찾사에서 동물원으로, 그리고 다시 대학로 소극장의 주인공으로 변모했던 그를 이해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사람들은 그를 가객이라 부릅니다. 그건 단순히 소극장 1000회 공연에 대한 기념비적인 헌사만은 아닐 겁니다. 그가 부른 노래가 실은 그의 노래가 아니라, 세상과 맞닿아뜨리면 누구든 헤쳐가야 할 할 삶의 혼란함과 세상에서 밀려나 울타리 밖에서 절박하게 싸워야만 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달래주던. 작은 골방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불리워졌던 그런 노래를 같이 부르던 사람이었기 때문이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