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감 제로. 우연한 5분입니다.
우연한 5분
쌀쌀한 늦가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길거리 옷가게나 레코드점에서 문득 흘러나오는 노래에 문득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었나요? 그런 순간의 감정들은 뭐라 말로 표현되거나 기억되지 못하고, 찰나의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지곤 하지요.
옳고 그름보다는 내 지갑에 들고날 일에 더 편협해지고, 승리보다는 패배가 더 익숙해지는 요즘. 가끔은 특별히 거대하지도 작지도 않은, 생의 순간순간에 사라져버릴 단 한곡의 노래에 위안을 받고는 합니다.
그런 소소한 감정들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주제도 없고, 형식도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또는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문득 귀에 들어온 노래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 방송 : 매주 금요일 14:30
- 연출 : 조정민
- 기술 : 김지희
- 웹제작 : 정서
- 구성 : 올빼미 (IT노동자)
- 목소리 : 변정필
우연한 5분 25회 방송 대본 보기김민기 - 봉우리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20대말경이고 50세가 다 되어 죽을 때까지 수정을 계속했다고 하죠. 사마천은 한무제의 끊임없는 죽음의 협박 속에서도 일평생 <사기>를 완성합니다.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싯구절 속에는 이 시인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끊임없이 희망을 도려내어 버리는 아픔의 연속 속에서 배수의진을 치듯이 절망을 짊어짐으로써만 걸음을 내딛던 고통과 절망에 대한 비극적 확인. 그리고 그에 대한 결연한 의지. 그렇게 [토지]가 완성되었습니다. 지난주 광우병규탄 촛불시위, 조류독감등 전국을 뒤흔든 무수히 중요한 사건속에서도, 저의 눈길을 끈 것은 단연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부고였습니다. 뭐 그리 대단한 문학적 소양 때문은 결코 아니랍니다. 젊은 시절, [토지]를 같이 읽고, 문학회집을 같이 만들던, 제 청춘의 전부였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러나, 이제 외로운 산자락, 한 줌의 재가 되어 묻힌 한 친구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세상과 이별 했던, 유독 따갑던 5월에 박경리 선생의 부음을 다시 맞이하는것이 참으로 묘한 인연처럼 느껴졌다고 할까요. 지난 5월5일, 박경리 선생이 절망과 고독으로부터 해방되던 그 날, 어쩌면 이 시대 근대성의 종언이자, 잊혀진 제 청춘의 마지막 마침표가 되었던 그 날. 문득 아무 이유 없이 김민기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온마음을 다해 그리워 하지만, 결국 도망치는 것 밖에 해주지 못한, 한 친구와 같이 듣겠습니다. 김민기의 봉우리 띄워드리며 우연한 5분 25회 인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