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감 제로. 우연한 5분입니다.
우연한 5분
쌀쌀한 늦가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길거리 옷가게나 레코드점에서 문득 흘러나오는 노래에 문득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었나요? 그런 순간의 감정들은 뭐라 말로 표현되거나 기억되지 못하고, 찰나의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지곤 하지요.
옳고 그름보다는 내 지갑에 들고날 일에 더 편협해지고, 승리보다는 패배가 더 익숙해지는 요즘. 가끔은 특별히 거대하지도 작지도 않은, 생의 순간순간에 사라져버릴 단 한곡의 노래에 위안을 받고는 합니다.
그런 소소한 감정들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주제도 없고, 형식도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또는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문득 귀에 들어온 노래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 방송 : 매주 금요일 14:30
- 연출 : 조정민
- 기술 : 김지희
- 웹제작 : 정서
- 구성 : 올빼미 (IT노동자)
- 목소리 : 변정필
우연한 5분 4회 방송 대본 보기루시드 폴 - 사람이었네
지금 듣고 계신 곡은 1988년 칸느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
『정복자 펠레』의 테마곡입니다. 이 영화는 19세기 고향을 떠나 덴마크로 이주한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죠. 그리고 마틴 엔더슨의 자서전적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화된 스톤농장에서의 어린 시절 외에도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펠레가 청년기, 덴마크의 항구도시 코펜하겐에서 공장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노조지도자로 성장하는 내용이 그려집니다. 왠지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 같지 않나요? 요새 우리 주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그리 생소한 존재는 아니니까요. 우연한 5분 네 번째 시간. 오늘은 이주노동자를 다룬 저작물들 중, 꽤 오래됐지만 손꼽힐만한 책 한 권을 더 소개시켜드릴까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미술비평가인 존버거와 사진작가 장모르가 공저한 『제7의 인간』(A Seventh Man)이라는 책인데요. 이 책은 1970년대 당시, 유럽이민자들의 매우 특별한 경험을 다루고 있는, 매우 독특한 형식의 저작물입니다. 『제7의 인간』에서 존버거는 소수자에 대한 시혜적 시선을 걷어내는 대신,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운명처럼 느껴지는 그 비극이.. 사실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애쓰지도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부로 내뱉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감과 공포심이 단순히 국가나 민족에 대한 편협한 애증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노.사 모두에게 일관적으로 관철되는 공공연한 배제전략이라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이런 착취의 역사를 이주노동자의 주관적인 꿈과 현실속에서 재구성해낸 작가의 역량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장모르가 주로 작업한 사진들 덕분이 아닐까 하는데요. 사진이라는 것이 한 장 한장 낱장으로 있을 땐, 사물의 주관성과 시간성을 탈각시키고 마치 화석화되고 변형된 이미지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사진들을 보신다면, 의미없이 나열된 낱장의 사진들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속에서 숨죽여 말하고 있는 것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한 장 한장의 사진 마다, 이주노동자의 흔들리는 눈망울들 속에서, 꿈 ․ 희망 ․ 두려움, 그리고 거세된 추억과 상실된 자아가 서로 얽혀 뿜어내는 강렬하고 다양한 역사들을 읽어낼 수 있게 되실 겁니다. 혹여, 주변의 이주노동자들 대해 말과 피부색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 주범이라는 왜곡된 편견으로... 그들을 범죄시하거나 두려워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꼭 권해드립니다. 세기와 대륙을 뛰어 넘는, 동일한 역사의 반복을 경험하신다면. 아마도 당신이 밀어냈던 그들의 눈 빛 속에서, 저마다 꿈꾸는 희망과 그리고 인내의 시간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의 감내하는 억압이, 사실은 우리가 매일매일 겪어내는 억압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들려드릴 노래는 루시드폴 최근 앨범에서 골랐습니다. 이 곡은, 스위스 로잔 시내에 있는 어느 카페트 가게 앞에서 “이란에서 어린 소녀가 저 카페트를 하나 짜면 얼마를 받는지 아느냐?”며 이란 친구와 주고받은 짧지만 가슴 아픈 질문으로부터 탄생되었다고 하네요. 루시드 폴, 최근 발매된 3집앨범 ‘국경의 밤’에 수록된 ‘사람이었네’ 듣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