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감 제로. 우연한 5분입니다.
우연한 5분
쌀쌀한 늦가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길거리 옷가게나 레코드점에서 문득 흘러나오는 노래에 문득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었나요? 그런 순간의 감정들은 뭐라 말로 표현되거나 기억되지 못하고, 찰나의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지곤 하지요.
옳고 그름보다는 내 지갑에 들고날 일에 더 편협해지고, 승리보다는 패배가 더 익숙해지는 요즘. 가끔은 특별히 거대하지도 작지도 않은, 생의 순간순간에 사라져버릴 단 한곡의 노래에 위안을 받고는 합니다.
그런 소소한 감정들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주제도 없고, 형식도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또는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문득 귀에 들어온 노래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 방송 : 매주 금요일 14:30
- 연출 : 조정민
- 기술 : 김지희
- 웹제작 : 정서
- 구성 : 올빼미 (IT노동자)
- 목소리 : 변정필
우연한 5분 5회 방송 대본 보기T.Rex - Ride a White Swan (Billy Elliot OST)
우연한 5분. 다섯 번째 시간.
지금 흐르는 곡은 영화 Billy Elliot OST 중 T.Rex의 Cosmic Dancer입니다. 그리고 지난주, 무한도전 Shall We Dance 3부작 마지막 편의 엔딩곡이기도 하죠. 지난주 무한도전 편을 재밌게 또는 감동적으로 보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그건 아마도 여섯 멤버의 도전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어떤 경험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겠죠.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씩은 견뎌내야 하는 인생의 관문들이 있기 마련인데요. 예를 들어, 대학입학시험 1교시 5분전의 그 초조함이나 시험을 망친 것을 직감한 체, 차가운 날씨에도 그 시간까지 교문 앞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니 앞에서, 괜실히 눈물이 울컥해서 화를 냈던 기억 같은 것들이 순간 오버랩된 것이겠지요. 영화 Billy Elliot에서 Billy가 왕립발레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러 가던 그 날도 그랬습니다. 화려한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위압적인 시험관들 앞에서, 과거와 미래가 빛의 속도로 충돌하여 소용돌이치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서 뻣뻣해지는 근육과 극한에 다다른 것 같은 심장박동을 이겨낸 몸사위와 홀로 방안에서 학교입학승인서를 가슴에 품고 울음을 터트리던 장면은 아주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70년대 극우파 대처의 집권 이 후, 무자비하게 집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직격탄을 맞은 가난한 탄광촌 노동자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영국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발했던 대규모 노조와 대처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인데요. 반면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계급사회의 억압으로부터 여성, 동성애,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자아가 발견된 시기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소비문화가 유럽에 자리매김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속에서, 비틀즈 해체 이 후 70년대 영국음악은 T.Rex, 마크볼란등이 주도한 글램락이라는 이름의 펑크락이 유행을 합니다. 전투적 노조의 핵심 맴버였던 Billy 형이 집에서 빗자루를 듣고 T.Rex의 I Love To Boogie를 흔들어대는 모습에서는, 대처에 전투적으로 저항하는 한편으로 소비문화와 결부되어 "나의 세대(The me decade)"가 풍미하던 당시의 영국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영화 Biily Elliot는 아주 리얼리티가 풍부한 작품이죠. 신자유주의를 저지하려는 전통적인 노동운동계급과 다양한 삶에 대한 대중들의 자기 발견의 욕망이 어우러진 당시 시대적 상황이 30년을 건너뛴 요즈음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으니까요. 차이가 있다면 영국에는 Billy Elliot이 있고, 우리에겐 무한도전이 있다. 뭐 이 정도랄까요? ^^ 요새 제 주변에, "재밌는거라곤 무한도전 밖에 없다"고 많은 분들이 투덜거리시던데요. 음 그건 어쩌면 생동감을 상실하고 점차 보수화된 사회로 이끌려가고 있는 것에 대한, 우울한 자가 진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쩌면,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안에 안주하려는 나약함에 대한 자기 변명은 아닐까요? 오늘 마지막으로 들려드릴 노래 역시 영화 Billy Elliot OST에서 골랐습니다. T.Rex의 화려한 비상을 알렸던 곡이기도 하죠. Ride a White Swan 듣겠습니다. |